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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야 Dec 23. 2021

내 마음 맨 앞 자리

"선생님, 내일이 설이네요. 떡국 먹고 한 살 더 먹어요. 잘 지내시죠? 저는 이제 6학년이에요. 저는 잘 지내고 있어요. 선생님이 많이 생각나고 보고 싶어 메일 보내요. 답장 꼭 해주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세요."


보통의 새해 인사가 담긴 이메일이다.

이 메일을 보낸 사람이 누군지 몰랐다면.


3월 2일.

첫 학교, 첫 제자들을 만나기 위해 출근 준비를 했다.

부임 인사는 뭐라고 해야 하지?

어떤 아이들이 있을까?

 복숭아색 블라우스에 검정 플리츠 치마를 입고 집게핀으로 반머리를 묶어 세상 단정한 출근룩을 완성하고는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시내버스가 20분에 한 대씩 오는 곳이라 혹시 놓칠까 일찌감치 나서서 기다리는데 버스가 늦는다. 시계를 보니 아직 여유는 있다. 편의점 유리에 비친 나를 보며 옷매무새를 만져본다. 아침부터 쿵쿵. 두근거리는 마음이 쉬 진정되지 않는다.


논길을 걸어 횡단보도 앞에 다다르면 학교가 보인다. 자그마한 운동장을 지나 구령대 옆 나무들 사이로 보이는 2층짜리 건물. 우리 교실은 2층 오른쪽 맨 끝이다.


교무실에 들러 인사를 드리고 교실로 올라가 책상 앞에 서 본다. 2학년 아이들이라 책상도 의자도 나즈막하다. 교실 문 옆과 칠판 위에 자리 배치도를 붙여놓고는 아이들 이름을 하나하나 속으로 불러본다.

드르륵.

교실 문이 열리고 아이 하나가 들어온다.

"안녕? 반가워. 너는 이름이 뭐야?"

눈꼬리를 반달 모양으로 접어 웃으며 솔톤으로 목소리를 높여 반갑게 첫인사를 건넸다.

"......"

대강 잘라놓은 밤톨머리에 색 바랜 흰색 티셔츠, 때 낀 슬리퍼를 질질 끌고 들어온 아이의 눈빛에는 반가움과 설렘이 아닌 경계심이 비친다.

"칠판에 붙여 둔 자리표에 이름 쓰여있지? 그 자리에 가서 앉으면 돼."

홱! 등을 돌려 창가 맨 뒤쪽으로 향한 아이는 책상 위에 책가방을 던져놓고는 그 위에 턱을 괴고 앉아 물끄러미 나를 관찰하고 있다.

얼른 자리표에 적힌 이름을 확인해 본다.

나장수(가명).

나장수. 나장수. 속으로 몇 번 이름을 되내어 보는 사이 하나, 둘, 아이들이 들어온다.

"안녕? 만나서 반가워. 친구는 이름이 뭐지?"

동일한 질문을 던져본다.

"안녕하세요. 저는 ㅇㅇㅇ예요."

밝은 목소리가 교실 안에 채워진다.

눈인사를 나누며 이름을 물어보는 사이 비어 있던 자리가 금세 찼다.

올망졸망 기대를 가득 담아 나를 향하는 시선들을 뒤로하고 칠판 위에 큼직하게 내 이름을 써 본다.

"만나서 반가워. 선생님은 너희들과 1년 동안 함께 하면서 가르치게 될 미야 선생님이야. 행복하고 즐거운 교실을 만들어보자. 잘 부탁해."

센스 있는 한 아이의 박수를 시작으로 어느새 아이들 모두 박수를 치며 환영해 주고 있다. 한 아이만 빼고.


"오늘은 첫날이라 출석부 순서대로 자리를 정했는데, 키 작은 친구들이 뒤쪽에 많이 앉았네. 키 번호 정하고 자리를 다시 바꿔보자. 남자아이들부터 한 줄로 서볼까?"


중간쯤 자리 잡고 선 나장수가 또래보다 키도 체구도 한참 작아 자꾸만 앞으로, 앞으로 밀려갔다.  

"야! 밀지 마!"

"너 ㅇㅇ 보다 작으니까 앞으로 가야지!"

"싫은데, 내가 왜?"

"키대로 서는 거잖아. 너 ㅇㅇ 앞으로 가."

"싫어."

실랑이가 벌어졌다.

매서운 눈매로 친구를 노려보는 장수의 눈에 찬 기운이 가득하다.

"장수야. 일단 키에 맞춰서 서 보자. 그래 줄 수 있지?"

"앞에 앉기 싫어요."

"그래. 키 번호만 정하고 앉는 자리는 장수가 원하는 자리에 앉는 걸로 하면 어떨까?"

 

키 번호 2번 나장수는 원하는 대로 처음 앉았던 창가 맨 끝자리에 앉아 내 마음 맨 앞자리를 차지했다.


다음 날 아침 교실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린다.

탁! 쿵! 탁! 쿵!

"선생님! 장수가 애들 사물함 막 열어요."

쪼르륵 달려와 이르는 ㅇㅇ이 뒤로 여러 명이 함께 서서 장수를 고발한다.

"제 물건 맘대로 막 만져요."

"하지 말라고 하니까 저 밀었어요."

아이들의 고자질에 관심도 없다는 듯 나장수는 교실 뒤쪽 아이들 사물함을 차례로 열고, 닫고, 열고, 닫고를 반복하고 있다.

"장수야. 오늘 수업해야 하니까 이제 자리에 가서 앉자."

어깨를 감싸 안으며 이야기를 하자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쑥 빠져나가 사물함 위로 올라간 장수는 뒷 칠판에 붙여 둔 <내 얼굴 그리기> 작품들을 잡아 뜯어 바닥에 던지기 시작했다.


어떻게 반응해야 하지?

무섭게 소리 지르며 기선제압을 해야 하나?

어르고 달래서 진정시켜야 하나?


멘붕이 왔다.


"그만하고 내려오자. 위험해. 선생님 손 잡고 내려와. ㅇㅇ아 여기 의자 좀 가져다 줄래?"

밟고 내려올 의자를 챙기는 동안 훌쩍 뛰어내린 나장수가 갑자기 교실 밖으로 뛰쳐나간다.


"장수야! 어디가?"


"2반 친구들, 선생님이 장수를 데리고 와야 할 것 같아. 교실에 앉아서 국어책에 나온 이야기 읽으면서 조용히 기다릴 수 있지?"

"네."


"선생님, 장수 벌써 운동장에 나갔어요."

창가에 앉은 ㅇㅇ이가 소리치자 아이들이 우르르 창가로 몰려간다.

"나장수다!"

"막 뛰어간다!"

"2반, 다들 자기 자리에 앉아. 창가 쪽에 매달리면 위험해."

아이들을 진정시키고

교사용 슬리퍼를 신은 채 운동장으로 부리나케 달려 나갔다.

이미 나장수는 정문 앞에 다다르고 있었다. 온 힘을 다해 달려 학교 건너편 논에 뛰어 들어간 장수를 붙잡았다.

"장수야, 도대체 어디를 가는 거야? 지금은 공부시간이잖아."

"공부하기 싫어요."

"아침에 무슨 일 있었어?"

"그냥 싫어요. 다 싫어요."


아이의 손을 잡아끌고 학교로 들어왔다.

중앙현관에 들어서자 장수가 교실에 들어가기 싫다며 바닥에 드러누워 발버둥을 쳤다.

아이를 붙들고 달래 봤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지나가시던 정보부장님이 아이를 붙들어 일으키시고는 묵직한 목소리로 소리치셨다.

"그만!"

결국 장수는 부장님께 붙들려 교실로 들어가 앉혀졌다.

웅성거리는 아이들.

씩씩대며 눈으로 불을 뿜는 장수.


도대체 왜?

무슨 이유일까?

어찌어찌 수업을 끝내고 아이들이 하교한 뒤 작년 장수 담임 선생님을 찾았다. 다른 학교로 전근 가셔서 어렵게 연락처를 구해 연락을 드려 도움을 구했다. 아이를 어떻게 지도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장수의 부모님은 정신지체를 앓고 계시고 부모님의 돌봄이 어려운 가정환경 속에서 나이 터울 있는 누나가 장수를 챙긴다고 했다. 똑똑하고 욕심 많은 아이라 그런 상황과 환경들이 분노로 표출되는 경우가 많다고. 관심받고 싶어서, 사랑받고 싶어서 더 그런 행동을 하는 거라고 말씀해주셨다.


사랑과 관심.

그건 도대체 어떻게 하는 거지?

나는 지금 충분히 관심 갖고, 사랑을 표현하고 있는데 이게 아닌가?

내 방법이 잘못된 건가?

나에게 묻고 또 물어본다.


매일 매 시간이 전쟁.


교실을 뒤집는 장수와 장수를 이르는 아이들.

중재하는 나.


정신도 체력도 모두 무너져버렸다.

온몸이 녹아내릴 듯 열이 끓어 일어날 수가 없었다. 병원에서는 입원해서 치료받아야 한다는데 교실을 비워둘 수 없어 하루 병가를 내고 링거를 맞았다.

눈물이 났다.


교직.

쉬운 게 아니구나.

내가 잘할 수 있을까?


다시 학교로 돌아가 아이와 몸싸움을 하는 것이 두려웠다. 뒹굴며 버티는 아이를 붙들고 진정시키는 매일의 일상이 너무 힘들었다.


마침 교육청에서 정신과 의사 선생님이 오셔서 교사 연수를 하신다고, 참석하라는 공문이 왔다. 다양한 문제 행동을 보이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실례를 들어 분석해주시는 연수였다. 질의응답 시간에 선생님께 장수의 상태에 대해 말씀드리고 어떻게 반응해야 문제 행동을 고칠 수 있을지 문의를 드렸다.


"매일 다른 아이들을 때리고, 책상을 엎고, 바닥에 데굴데굴 구르면서 소리를 지르는데 엄하게 야단을 쳐봐도, 안고 달래 봐도 도무지 변화가 없어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반응하지 마세요!"


"제가 모르는 척해도 아이들이 이르고 얘기하는데 반응 안 하는 게 가능할까요?"

"아이들도 모두 무반응으로 대응해야 합니다. 아이들과 약속하셔서 문제행동을 할 때 모두가 아무 반응을 하지 않고 투명인간처럼 대해야 해요."

"그건 아이를 방관하는 게 아닐까요?"

"문제 행동에 계속해서 반응하게 되면 아이는 관심을 받기 위해 더 그런 행동을 반복하게 됩니다. 문제 행동이 아니어도 너에게 관심이 있어. 너의 좋은 행동에 더 큰 관심을 보일 거야. 이런 걸 아이가 배워야 해요. 바른 행동을 할 때만 적극적으로 반응하시면서 칭찬해주세요. 아마 한 달 안에 변화가 보일 겁니다."


1교시 시작 전 장수에게 각 학년 교실에 돌면서 선생님 사인을 받아오라고 심부름을 보내 놓고, 아이들과 약속을 했다. 의사 선생님 조언대로 장수가 나쁜 행동을 할 때 아무도 반응하지 않기로, 좋은 행동을 하나라도 하면 먼저 발견한 사람이 칭찬해주기로.


사실 아이들에게 무반응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약속한 것을 금방 잊고 이르는 아이들이 있었지만 듣고도 모른 척 넘겼다. 아이들도 나도 차차 아무 반응을 안 하자 장수는 문제 행동을 업그레이드했다.


책상 옆에 걸어둔 책가방을 하나씩 발로 차며 지나가기.

미술 시간에 친구 그림에 검은색 크레파스로 마구 낙서하기.

사물함 열고 안에 있는 물건 꺼내서 바닥에 던지기.

앞에 앉은 친구 옷 가위로 자르기.

수업 시간에 복도에 나가 친구들 실내화 주머니 바닥에 던지기.


장수의 문제 행동에 반응하지 않고 더 재미있게 웃으며 수업에 집중하려 아이들과 나는 참 많이 애썼다.


무반응 처방이 내려진 지 3주에 접어드는 어느 날.

아이들을 하교시킨 후 수업 자료를 준비하고 있는데 교실 문이 스윽 열렸다.


먼발치에 서서 발로 바닥을 툭툭 치며 고개를 푹 숙인 나장수가 서 있다.


"장수야. 들어와. 선생님한테 할 얘기 있어서 왔어?"

"잘못했어요."

작은 목소리.

뭐라고? 잘 못 들었나?

"장수야. 선생님이 잘 못 들었는데, 뭐라고 한 거야?"

"잘못했어요. 이제 나 좀 봐주세요."

"이리 와봐."

장수를 안고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장수야. 선생님은 장수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장수를 생각하고 바라보고 사랑하고 있어. 나쁜 행동으로 선생님 관심을 확인하려고 하면 앞으로도 선생님은 아무 반응 안 할 거야. 대신 장수가 책을 펴고, 바르게 앉고, 선생님과 눈 마주치는 아주 작은 변화에도 온 마음을 다해 칭찬해주고 바라봐줄 거야. 선생님 얘기 무슨 말인지 알겠어?"

"......"

장수가 운다.

나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이후 동화 속 이야기처럼 장수가 착한 어린이로 확 변했다면 좋았겠지만, 현실은 동화와는 많이 다르다.

그래도 전보다 덜 때리고, 전보다 덜 던지고, 전보다 더 눈 마주치며 교실 안에 있는 장수의 성장은 마치 내 성장 같았다.


다른 지역으로 근무지를 옮겨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린 어느 날 메일함에 들어있는 메일 한 통.

발신자 ㅡ 나장수.


잘 지내고 있다고, 선생님이 보고 싶다는 짧은 메일.


"장수야. 안녕?

네 메일을 받고 깜짝 놀랐어."

답장을 쓰며 생각했다.


잘 지내고 있구나.

잘 자라주었구나.

고맙다.

고마워. 나의 첫 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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