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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야 Jan 09. 2022

오이향 화장실

조준 못 한 똥 한 덩어리가 양변기 끝에 걸려있다. 물을 내려봐도 여전히 그 자리.


"선생님, 누가 똥을 이상하게 싸놨어요."


"아이고, 선생님이 솔 찾아올게."

"괜찮아요. 우리가 고무장갑 끼고 해결할게요."

재규와 우석이가 장갑을 끼며 비장한 표정을 짓는다.


닦아도 반짝이지 않는 탁한 거울, 누렇게 색 바랜 세면대 위에는 초록색 오이비누가 두 개 놓여있다. 세면대 맞은편에는 대걸레 빠는 수채통이 보인다. 걸레 걸이에 조르륵 걸려있는 대걸레에서는 구정물이 뚝뚝 떨어진다.

"이거 짜서 걸어놓으라고 했는데 맨날 대충 헹궈서 거는 사람 누구냐?"

재규가 뿔난 표정으로 대걸레를 다시 내려 걸레 짤순이에 넣고 레버를 당겨 물을 짠다. 검은 물줄기가 하수구를 향해 내려간다.

"재규야, 우리 변기부터 닦자."

우석이가 호스를 길게 늘어뜨려 변기 앞으로 가지고 가 호스 앞부분을 꾹 눌러 똥에 조준한다. 얇은 물줄기가 화살처럼 그 위에 꽂히자 버티기 한 판이 시작됐다.

"재규야, 물 좀 더 세게 틀어봐!"

"알았어. 최대로 간다."

쏴~

좁은 호수를 빠져나가느라 용을 쓰던 물줄기가 똥 위에 쏟아지자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변기 안으로 스륵 떠내려 간다.

"오~ 이우석"

문제의 그 변기를 해결하고, 나머지 두 칸도 구석구석 청소하기 시작하는 재규와 우석이.

"선생님, 오늘은 화장실에서 향기가 날 거예요."


"향기?"

"오이 향기요. 우석이랑 저랑 향기나라고 비누로 변기 닦았거든요. 향이 많이 안 나서 비누 하나 다 썼어요."

"녀석들, 대단하다. 정말 오이향이 나네."

"네. 좀 멋지죠?"

"응, 많이 멋지다. 우리 재규랑 우석이. 이렇게 향기 나는 화장실을 만들다니."

우석이와 재규의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웃자 아이들도 따라 웃는다.

"교실로 가자. 선생님이 맛있는 간식 줄게. 친구들한테는 비밀~."

"오예~ 내가 이 맛에 화장실 청소한다니까."

재규의 너스레에 우석이는 씩 미소만 짓는다.


우리 반 청소 구역은 2층 화장실. 요즘은 화장실이나 복도는 대부분 용역을 써서 청소하는데 그때만 해도 학급별로 청소구역을 맡아 청소를 했다.

모두들 꺼려하던 화장실 청소를 맡아서 하겠다고 나선 재규와 우석이.


덕분에 2층 화장실에서는 항상 오이향이 났다.


지금은 결혼해서 가정을 꾸렸을 나이.

녀석들의 화장실에서는 어떤 향기가 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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