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그러데이션으로

부드럽게 감는

by 캐리소

작년 명절 끝이었다.

시댁에서 달랑 하루를 보내고 집에 돌아와 긴긴 연휴를 딸들과 놀며 보냈다.

큰애와는 영상통화로 얼굴을 보고 손자들과도 즐거운 인사를 나눴다.

다음날은 종일 빈둥거렸다.

이럴 땐 연휴를 통째로 도둑맞은 기분이다.

하루가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고 별로 한 일도 없는데 어둑어둑 땅거미가 지는 걸 보면 은근히 뒤가 저리고 마음이 급해진다.




오랜만에 집에 다니러 온 둘째가 식당을 예약했단다. 단둘이 갔다. 아빠를 두고 둘이 나오는 경우는 쇼핑할 거리가 있다거나 긴히 할 이야기가 있는 경우다.

식사를 하며 이런저런 스몰토크를 나눈다.

자기 친구들 이야기며 직장에서의 힘든 이야기 끝에 조용히 휴대폰을 뒤지더니 사진 하나를 보여준다.


얼굴이 동그랗고 눈매가 부리부리한 청년이다.


남자 친구야


놀랐다!

왜?

첫째도 일찍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해서 이젠 아이들의 엄마가 되었는데...

왜 둘째에겐 남자친구가 생기면 안 되나?


그냥

왠지 낯설었던 것 같다.

둘째가 새로운 환경에 들어가면 나도 둘째를 생각하는 내 마음의 방을 새로 새워야 하니까.


이제 갓 서른이 된 둘째에게 남자친구가 생겼다는 말을 듣고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뜻밖의 이야기에 놀란 마음을 들킬까 봐 꾹꾹 눌렀다.

그냥 둘째가 하는 이야기를 듣기만 했다.

첫째 때도 그랬지만 이젠 점점 더 해줄 말이 없어지는 기분이다.

축하한다고,

잘 됐다고,

앞으로 잘해보라고 해야 하나?

좀 더 신중하라고,

사람을 어떻게 알 수 있느냐고,

그저 끌려가지 말고 네 마음이 하는 이야기를 들으라고 해야 하나?


마음속에선 수백 가지 생각이 얽히지만 겉으로는 짐짓 평온한 척 말없이 리액션을 하거나 묵묵히 들어주는 게 고작이다.


이런 경우 가까운 주변 사람들이 자녀들에게 했다는 말을 들으면 대안 없이 걱정하는 말이나 한정된 경험으로 얼룩진 우려 섞인 조언들뿐이다. 그 말을 전해 들은 나조차도 그 말을 반박하는 대답들만 속으로 나열하게 되는.


청년 시기의 나였더라도 그런 부모들의 걱정과 염려, 공공연한 참견을 듣는다면 과연 진심으로 새겨들었겠나 생각하면...


아니다!


그래선지 나름 거침없는 입담의 소유자인 나도 이젠 말하기보다 그저 듣는 게 편해졌다.

생의 중심에서 변방으로 자리를 옮기고 있다는 실감이 정수리를 흔든다.

점점 입지가 좁아지는 생의 변화를 실감 나게 경험하는 중이다.


아이들이 어릴 때 마음으로는 수긍할 수 없었대도 부모의 말은 절대적이었다.

그러나 아이들이 성인이 되면서 이젠 서서히 서로의 자리가 바뀐다.

지인들의 모임에서 부모가 성인 된 자녀의 눈치를 보고 산다는 말을 듣거나, 어릴 때 든든하게 여겼던 부모가 얼마나 불완전한 사람들이었는지 발견하고 실망했다는 말을 들으면 더 그렇다.

성인이 된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면 언제 자라서 저렇게 똑 부러지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게 되었을까 격세지감을 느낄 때가 있다.


엄마인 내가 아이들을 일방적으로 가르치고 이끄는 수준에서 벗어나 인격 대 인격으로 동등하게 토론을 하고 의견을 나눌 때면 대견하다.


한편으로는 아이들의 인생에서 내가 개입할 수 있는 부분이 점점 적어지고 있다는 점은 조금 아쉽다.

아쉬우면서도 기쁘다.

이젠 나도 아이들도 서로에게서 독립할 수 있다는 것이니까.



변화하고 성장하는 고통을 이겨내겠다는 의지가 없고, 성장하는 아이에게서 배울 의사가 없는 부모는 부지불식간에 노쇠의 길을 택한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아이와 세상은 그런 부모를 저 멀리 뒤에 남겨놓을 것이다. 아이에게서 배운다는 것은 대개의 사람이 의미 있는 노년을 준비하는 데 가장 좋은 기회다.
슬프게도 대부분은 이러한 기회를 잡지 않는다. 주 1)


성장하는 아이들에게 기꺼이 배우는 부모가 되고 싶다.

예전의 내 위치를 고수하며 고집부리고 싶지는 않다.

이렇게 세대가 체인지되는 과정이 처음으로 제대로 가슴을 쿵 두드리는 일이라 마음이 복잡하다.

어린이를 지나서 청소년기, 청년기를 거치고 중년기를 걷고 있는 이때를 실감하며 어느 때보다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싶다.

시간이 쏜살같다는 말이 피부로 다가온다고 해야 할까?


이제 제대로 나답게 늙어가는 일에 방점을 찍을 때가 도래한 것이다.

이렇게 매일 매시간 나이가 들고

왠지 그 나이 듦에 쫓길 때도 있다.

마음의 속도와 몸의 속도가 적절하게 균형을 잡아야 할 것이다.


그녀는 노인들은 연어 같다고 했다. 정신이 계속해서 시간과 기억의 흐름을 거꾸로 거슬러 헤엄친다는 것이다. 왜 그러는지 이유는 모른다. 그냥 그렇게 프로그램이 짜여 있다. 주 2)


늙음이라는 자연현상을 이해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보다는 자신에게 더욱 낯설고 적응하지 못하는 일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


연어와 같은 프로세스를 가진 늙음에게 이젠 돌아가 누울 요람이 필요하게 될 날이 가까워지는 것이다.


그게 그러니까,

갑자기 뒤통수치는 딸아이의 남친 고백같이 급격하고 느닷없이 말고,

서서히 보이는 과정이었으면 좋겠다.

색들이 천천히 스며들며 그러데이션으로 부드럽게 맘을 감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게 말이다.


인생이라는 흐름은 예측 가능성이 희박하지만 늙음은 퍽 자연스러운 모두의 일이라 이런 소망이 지나친 억지는 아니라고 믿고 싶다. 무지개가 아름다운 이유는 일곱 가지 다채로운 색들이 급격히 단절된 게 아니라 부드러운 그러데이션으로 조화롭게 변화하기 때문이다.

늙는 것도 그랬으면 좋겠다


그렇게 조화롭게 하루하루 변화하면 안 되겠니?

늙음아.


나는 제목이 왜 <여덟 가지 인생>이냐고 물었다. 그녀는 어깨를 으쓱하고 아랫입술을 쭉 내밀었다. 별다른 의미는 없어. 그녀가 몸의 언어로 말했다
"우리가 약속했지 않나? 여덟 단어. 그 이유면 족하지 않나?" 그녀가 말하고는 다시 어깨를 으쓱했다. "게다가 난 8이라는 숫자가 좋아. 자네가 3이라는 숫자를 좋아하는 것처럼." 그녀가 내게 장난스러운 미소를 날렸다.
그녀는 또한 중국에서는 8이 부와 재산의 상징이며 그래서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숫자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나는 그 형태가 좋아." 그녀가 말했다.
쭉 이어지는 한 획으로 아름다운 곡선의 고리를 그릴 수 있으니까. 완벽하게 그리면 어디서 시작하고 어디서 끝나는지 알 수 없지."


어디서 시작하고 어디서 끝나는지 알 수 없는 인생이지만, 적어도 직선이 아닌 곡선의 여유를 늙음에게도 입히고 싶다.




주 1) 아직도 가야 할 길] M. 스캇펙 지음.

주 2) 이름 없는 여자의 여덟 가지 인생. 이미리내 장편소설

주 3) 이름 없는 여자의 여덟 가지 인생. 이미리내 장편소설



2023년 3월에 쓴 글을 다시 고쳐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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