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개구짐은 면면히 흐를 것인가

by 캐리소



새벽, 아들 방에서 기침소리가 들린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아들 방으로 가서 이마를 짚어본다.

열이 있고 온몸이 뜨거운 채로 끙끙 앓는다.

오한이 나는지 이불을 둘둘 말아 온몸을 감싸고 있다.


아들이 아프다.


아침저녁엔 쌀쌀하고 한낮의 더운 날씨가 체온의 리듬을 깨뜨리는 데다 마스크를 벗기 시작하면서 여기저기 독감이며 감기로 호흡기 환자가 늘어난 이유다.

아들 반에 감기 환자가 몇 명 있다고 하더니 친구들한테 옮았나 보다.

밤새 열도 나고 기침 때문에 괴로워 잠을 설쳤단다.


엄마를 깨우지 않고 혼자 끙끙 앓았다고 생각하니 짠하다.

밥은 싫다고 해서 부드러운 오트밀을 조금 먹인 후 해열 진통제를 챙겨 주고 병원에 데려갔다.

병원에 가는 도중에 잠깐 살짝 열이 떨어진 아들이 그 틈을 타서 가느다랗게 개구쟁이 눈을 만든다.

이 녀석 또 시작이다!!


"엄마 뱃살, 투실한 허벅지가 넘나 좋아!" 하며 살 타령을 한다.

이제 좀 살만 한가 보네. 엄마 살공격을 시작하는 거 보니까! 했더니 헤헤 웃는다.

엄마 살은 너무 퐁신하고 유혹적이라 주머니에 갖고 다니고 싶다고 해서 변태 소리를 그만두지 않으면 신고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아플 땐 조용하니 좋더구먼, 열이 내린 그 짧은 찰나에 엄마 살 드립을 날리는 불타는 놀림 열망을 다시 한번 실감한다.


이내 또 열이 나는지 내 어깨에 뜨끈한 머리를 기댄다.

아, 그냥 엄마 놀려도 되니까 아프지만 말라고 할까.

그렇게 말하면 진짜로 귀 아프게 살 타령을 들어야 할 것 같아서 조용히 침을 삼킨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나도 어린 시절 친구들이 꺅꺅거리는 게 재밌어서 자꾸 간지럼을 태웠다.

지금의 아들처럼 눈을 가늘게 만든 내가 의뭉스럽게 열 손가락을 꼬물거리며 다가가면 친구들은 지레 목을 움츠리고 어깨를 동그랗게 말고서 괴성을 지른다.


더 이상은 안 당한다며 복수를 하겠다고 친구가 내게 간지럼을 태우려고 다가온다.

그러나 되려 꿈쩍도 하지 않는 내 모습에 아이들은 제풀에 지쳐서 그만두곤 했다.

그런것까지도 아들은 나를 닮았다. 집요하게 놀려 먹는 거.


외모까지 엄마를 닮았다고 투덜거린다.

네모난 턱, 찢어진 눈, 입이 짧은 것까지도.

그럴 때마다 없던 자존감이 고개를 불쑥 쳐들어 대꾸한다.

네모난 게 어때서? 강해 보이고 좋지!

눈이 작아서? 표정을 들키지 않으니 좋지!

입 짧은 거? 너무 많이 먹는 것보다 가벼우니 좋지! 한다.

근데 엄만 왜 뚱녀야? 뚱녀라니!!

엄마가 글래머라서 부러워하는 친구가 얼마나 많았는데.(확인 불가하니 마구 뱉을 수 있다) 어릴 때 친구들에게 짓궂게 군 대가를 아들의 놀림으로 돌려받고 있구나!


자업자득이다. (속으로 내린 결론)


사실 아들처럼 빼빼한 말라깽이가 된다면 살드립을 듣지 않아도 될 텐데 그것도 쉽지 않으니 내 처지가 진퇴양난이다.

그런데 정작 큰일인 건 장난기 많은 게 나와 아들에게서 끝날 것 같지 않다.


후덜덜하게도 둘째 손자에게서 우리 둘의 특성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큰 딸과 친척들은 이구동성으로 나와 아들, 둘째 손자가 판박이처럼 닮았다고 한다.

우리 셋이?

사실 아들도 둘째 손자도 얼굴이 작고 귀여운 상이라 닮았다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나쁘진 않은데...

짓궂고 장난치기 좋아하는 걸 닮으면 그 애를 키우는 딸이 고생스러울 것 같아서 살짝 걱정된다.



둘째 손자의 빙글빙글 웃는 모습이 영락없이 우리가 장난을 시작할 때의 드르릉거리는 시작점을 닮았다.

제 엄마에게 자기 생각을 똑 부러지게 말하며 고집을 세우는 걸 보면 내심 미안한 마음이 손톱 거스러미처럼 일어난다.


꼭 어릴 때 내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손자의 짓궂음과 장난기의 시발점이 나란 걸 들키기 싫은 이유다.


근데 그 씨앗이 정말 나뿐일까?


떠올려 보면 우리 엄마도 장난꾸러기 기질이 다분했다.

기분 좋을 때면 데헷! 하고 웃는다든지,

길을 걷다가 '나 혼자 산다'에 나오는

이주승처럼 축지법 깨발랄 걸음으로 걷는다든지,

철길을 걸어 다니며 강아지풀을 좌라락 훑는다든지 하는 것들이 그렇다.

유머와 위트의 귀여운 할머니였던 울 엄마가 진정한 짓궂음과 장난의 원조였다는 걸 생각해 내곤 잠시 웃는다.


그런데 이 짓궂음은 아무래도 우성 유전자인가 보다.


쉽게 멈추지 않을 것 같으니 말이다.




이 글은 2023년 5월에 쓴 글을 재구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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