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사라질 걸 알지만 마음에 위안을 준다. 결국 사라질 우리네 인생이지만 조화롭게 변화하는 무지개의 그라데이션처럼 그렇게 아름답게 늙어가고 싶다. 그렇게 조화롭게 하루하루 변화하고 싶다.
명절 끝이다. 시댁에서 달랑 하루를 보내고 집에 돌아와 다음날은 종일 빈둥거리다 보니 연휴를 통째로 도둑맞은 기분이다.
하루가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고 별로 한 일도 없는데 어둑어둑 땅거미가 지는 걸 보면 은근히 뒤가 저리고 마음이 급해진다. 시간이 쏜살같다는 말이 점점 실감 난다. 이게 늙어가는 것이겠지. 이렇게 매일 매시간 나이 들고 왠지 그 나이 듦에 쫓기고 있는 것 같다.
이제 갓 서른이 된 둘째에게 느닷없이 남자친구가 생겼다는 말을 듣고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뜻밖의 이야기에 놀란 마음을 들킬까 봐 꾹꾹 누르고 둘째가 하는 이야기를 듣고 또 듣기만 했다.
첫째 때도 그랬지만 이젠 점점 더 해줄 말이 없어지는 기분이다.
축하한다고, 잘 됐다고, 앞으로 잘해보라고 해야 하나?
좀 더 신중하라고, 사람을 어떻게 알 수 있느냐고, 그저 끌려가지 말고 네 마음이 하는 이야기를 들으라는 말을 해야 하나?
결국 말없이 리액션을 하거나 묵묵히 들어주는 게 고작이었다. 이런 경우 가까운 주변 사람들이 성인 자녀들에게 했다는 말을 들으면 대안 없이 걱정하는 말이나 한정된 경험으로 얼룩진 우려 섞인 조언들뿐이다.
그 말을 전해 들은 나조차도 그 말을 반박하는 대답들만 속으로 나열하게 되는.
20대의 나였더라도 그런 부모들의 걱정과 염려, 공공연한 참견을 듣는다면 과연 진심으로 새겨들었겠나 생각하면 자신이 없다. 그래선지 나름 거침없는 입담의 소유자인 나도 이젠 입이 무거워질 필요를 느끼나 보다. 점점 입지가 좁아지는 생의 변화를 실감 나게 경험하는 중이다.
아이들이 어릴 때 마음으로는 수긍할 수 없었대도 부모의 말은 절대적이었다. 그러나 아이들이 성인이 되면 이젠 서서히 서로의 자리가 바뀌는 분위기다.
부모가 슬슬 성인 된 자녀의 눈치를 보고 산다는 말을 듣거나, 어릴 때 든든하게 여겼던 부모가 얼마나 불완전한 남자와 여자인지 발견하고 실망했다는 말을 들으면 더 그렇다.
엄마인 내가 아이들을 일방적으로 가르치고 이끄는 수준에서 벗어나 서로 인격 대 인격으로 동등하게 토론을 하고 의견을 나눌 때면 많이 성장했구나 대견하기도 하다. 그래도 한편으로는 아이들의 인생에서 내가 개입할 수 있는 부분이 점점 적어지고 있다는 점은 조금 아쉽다. 또 이젠 더 이상 내가 책임지지 않아도 되겠다는 후련한 마음이 들 때도 있다. 이렇게 세대가 체인지되는 과정이 개인으로는 처음 겪는 일이라 마음이 복잡하다.
어린이를 지나서 청소년기, 총천연색 청년기를 거치고 중년기를 걷고 있는 이때, 마음은 어느 때보다도 생생하게 이때를 기억하고 싶다.
무지개가 아름다운 이유는 일곱 가지 다채로운 색들이 급격히 단절된 게 아니라 부드러운 그라데이션으로 조화롭게 변화하기 때문이다. 늙는 것도 그랬으면 좋겠다. 갑자기 뒤통수치는 딸아이의 남친 통보같이 급격하고 느닷없이 말고 서서히 예측 가능한 과정이었으면 좋겠다. 그라데이션이 부드럽게 맘을 감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게 말이다.
인생이라는 흐름은 예측 가능성이 희박하지만 늙음은 퍽 자연스러운 모두의 일이라 이런 소망이 지나친 억지는 아니라고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