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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리소 May 01. 2023

멋쩍음을 벗고 개운함을 입는 방법



온전한 나로 살아가는 일이 과연 가능할까?




아주 오래전부터 나는 어떤 상황에서든 나 자신에게 갇혀있는 기분이 다.

힘들고 어렵고 난감한 처지에 있을 때나, 기쁘고 신나고 쨍하게 즐거울 때조차도 내 안에 갇혀 그 모든 감정을 맘껏 발산하지 못한다.


힘들어도, 신나도 감정의 최적화된 10까지 가지 못하고 늘 6이나 7에 머무르는 미진함.

아쉬움.

그래서 대략 나의 요즘 콘셉트는 시큰둥이다.

마치 언제든 날아오를 수 있는 공작새가 좁은 철망에 갇혀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건 컨디션이 안 좋으면 더 짙어진다.



몽롱한 안갯길.



심전도 검사를 한 적이 있다. 그때 나는 맥박이 다른 사람보다 희미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딴사람에 비해 기운 없고 느리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살았을 거라고 한다. 약한 엄마의 심장과 닮아 있나 보다.

희미한 맥박으로 인한 기운 없고 느린 내 모습.

어디에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단지 맥박 때문이고, 엄마를 닮아 심장이 약한 탓일까?

또 다른 원인이 있을까 싶어 과거로, 내 안으로 깊이 더듬어 본다.


아버지는 말이 없는 분이었다. 아버지 자신이 의도하지 않았다고 해도  누구한테든지 말 없음으로 모든 상황을 제압하는 식이다. 그래서 아버지 주변 사람들은 쭈뼛쭈뼛 경직이 되고 편하게 다가갈 수 없었다. 누구든 우리 아버지를 보고 나서는 무섭다, 어렵다는 말을 하게 만들었다.

어릴 땐 그냥 그렇구나 했다.

나도 썩 말수가 많은 아이는 아니었으니까.

두 남동생은 그런 아버지를 힘겨워했고 뭔가 아버지에게 전달해야 할 말도 내게 떠넘겼다. 그래서 동생들은 아버지와 의견이 달라도 그냥 아버지의 뜻을 따르는 편이었다. 청소년 시절에 나는 그런 아버지에게 유일하게 대드는 자식이었다. 나뿐만 아니라 엄마에게 부당하게 대한다 싶으면 눈에 불을 켜고 아버지께 불만을 토로했다. 내가 좀 더 커서 바라본 아버지는 당당하지 못한 듯했유약함마저 드러나 보였으며, 그런 유약하고 자신 없음을 침묵으로 방패 삼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내 눈에는 비겁함으로 비쳤다.

그에 반해 엄마는 명랑한 소녀 같았다. 늘 긍정적이고 해맑게 사셨지만 자신을 공감해 주지 않는 남편의 말 없음을 힘겨워하셨다. 엄마는 처녀 적 외모지상주의 취향 때문에 아버지의 핸섬함에 반하셨을 것이다. 그래서 다른 부분을 미처 발견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두 분의 연애 이야기를 킥킥거리며 듣다가 내 나름대로 엄마를 판단한 결과로는 그랬다.


그랬던 내가 시간의 옷을 한 꺼풀씩 입고 보니 서서히 아버지를 이해하게 된 건가.

지금에야 평생 엄마를 힘들게 한 아버지의 침묵이, 그것의 민낯의 정체가 무엇인지 서서히 알 것도 같다.


그건 다른 무엇도 아닌 멋쩍음이다.

어색한 쑥스러움이다.

내 아버지는 아홉 형제의 다섯째로 태어났다. 

시대가 어렵던 그때의 다른 부모들처럼 친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많은 아들들을 먹여 살려야 했겠지. 당연히 큰아들이나 막내에게 마음이 가게 마련이고. 중간에 낀 아버지는 먹고 자라야 할 부모의 관심과 사랑에서 늘 허기졌겠지. 전쟁통이라 혼란스러웠을 것이고 거친 세상에 따로 떨어진 진도 섬의 다섯째인 아버지는 서울에 올라온 십 대부터 고생을 밥 먹듯 하셨단다. 그러면서 자기를 나타내는 일에 서툴고 무언가 말로 표현하는 게 힘든 분이 되었겠구나, 이렇게 나이 들어서야 이해하게 됐다.


그런 성격의 아버지도 지금으로 말하면 츤데레 같은 부분이 있었다. 우리 삼 남매를 데리고 전국 방방곡곡 다니며 맛집 탐방을 하고 자식의 일이라면 열일 제치고 도와주셨다. 의 굴곡진 고개를 넘을 적에는 속으로 끙끙 담아두기만 하시고 답답할 땐 술을 드시는 것으로 자기 삶의 고단함을 기대셨다. 평소에 한 두 마디 말로 하루를 마감했는데 술을 드시면 열 마디로 늘어나는 것을 보면 어디에도 부려 놓을 수 없었던 그분의 고생이 안쓰럽게 느껴진다.

그런 아버지를 꼭 빼닮은 첫째 남동생은 말수가 적어서 (라고 쓰고 아예 없다로 읽게 된다) 걔를 생각하면 주변에 짙은 구름이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근두운을 타고 다니는 손오공은 가볍기라도 하지. 그 애는 꾹 다문 입과 배가 함께 나온 흰(피부가 백옥 같아서) 손오공 같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십 년이 넘었다.

둘째 남동생은 가끔 얼굴을 보지만 첫째 남동생과는 거의 만나지 못한다. 내 딸들은 내게 무심한 누나라고, 삼촌한테 엄마가 먼저 연락하라고 종종 잔소리한다. 그래도 우리 삼 남매의 연결은 쉽지 않다.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멋쩍음의 유전자가 혈관 곳곳을 찐득하게 흐르는 우리 남매에게는 서로 안부를 묻고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 자체가 닭살이고 면구스러움이다.

그러니 멀리서 서로가 잘 지내길 빌어주고 마음으로나마 잠시 떠올려 주는 게 최선의 왕래인 셈이다.

내 안으로의 깊은 자맥질. 그 끝에는 언제나 어려웠던 나의 아버지와, 조용하기만 했던 집안 분위기가 있었다. 그 속에서 사랑을 느꼈기에 불만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로 인해 어쩌면 나는 나 자신을 표현하고 맘껏 날갯짓하는 것을 억눌러 왔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면서 이제는 그게 습관이 되어버렸는지도.



나에게 유일하게 시큰둥과 멋쩍음의 테두리를 벗어나게 하는 순간이 있는데 글을 쓰는 순간이다. 글을 써서 무엇을 이루거나 물리적 성과를 내는 게 목적이 아니라 그저 주절주절 쓰면서 내 안에 옵션처럼 주어진 철망을 우두둑 뜯어내는 것뿐이다.

날개 한쪽을 겨우 바깥으로 내밀어 햇살 한 개, 바람 한쪽 맛보더라도 그 순간은 온전히 내게서 벗어난 내가 된다.

진은영 시인이 한 말 중에



진정 쓰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를 찾는 사람,

자신에게 간절한 것을 시인의 에너지로 바꾸는 사람이 글 쓰는 사람이다.

라는 말이 습자지의 반투명함을 통과해서 내게 새겨진다.


유전자에 새겨진 멋쩍음을 슬쩍 옆으로 밀어놓고 맨 살의 나를 만나는 것, 그게 너무나 시원하다.

동시에 자유롭다.

자유.

그래, 자유가 맞겠다.

나를 벗어내고 가벼운 나를 바라보는 즐거움은

온전한 나를 발견하는 몇 조각의 달달한 초콜릿이다.

지금도 그걸 위해 한 문장씩 글을 짜내일이 물리적으로는 쉽지 않지만 결국은 자유의 개운함을 미리 맛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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