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캐리소 May 16. 2023

쫓기는 즐거움에 관하여



수년 동안 읽기에 몰입했다.

한 번에 한 놈만 팬다는 식으로 내가 좋아하고 끌리는 대로.

다소 편식적인 읽기였지만 그러는 도중에 누리는 기쁨이 초콜릿 까먹듯 달콤했다.

독서하는 데 있어 '골고루 편차 없이'라는 기준은 인간이 자기 본위로 만들어낸 어떤 선이고 난 그걸 따를 마음이 없는 거다.


편식 읽기로 일단 배가 든든히 찬 후에는 휘파람 불며 다른 곳을 휘둘러 볼 여유가 생겼다.

브런치나 블로그 이웃의 글, 혹은 누군가가 이거 읽어봐, 넘나 좋아. 하는 건 메모했다.

책을 읽다 보면 고구마 딸려 나오듯이 주르륵 후속 도서들의 목록이 만들어지면 또 그걸 찾아다 놓고 흐뭇해했다.

이러다 보니 매일 쫓긴다.

이거 읽어야 하는데 저게 끌리고, 저거 읽다 보면 이게 궁금하고.

문어가 사방으로 자기 촉수를 뻗쳐 먹이를 먹듯이 내 촉수도 사방으로 뻗어나가다 보니 내 속에 있는 독서 욕구의 눈초리에 등이 근질거릴 만큼 쫓기고 있다.


그런데 또 그게 묘하게 맛있다.

사방에 널린 읽다 둔 책이며 도서관에서 개인 할당량 꽉 채워 빌려다 놓은 빼곡히 줄 선 책이며 한 권에 꽂혀 인덱스 색색 책갈피 마구 꽂아 새로운 날개로 탄생시키기도 하고.

다른 것보다 책에 쫓기는 생활이 무척이나 즐겁다는 건 고무적인 일이다.

꿈에서 괴물에 쫓기거나 공포에 떠밀리는 아찔한 쫓김이 아닌 것이 얼마나 든든한 일이냐.

지인 중에는 카드값 내는 날이나 애들 학원비, 직원들 월급 주는 날은 빛의 속도로 돌아와서 때론 피를 말리는 것처럼 압박한다고 한다던데...

그에 비해 읽을거리가 쌓여 있다는 건 넉넉히 준비된 팝콘과 시원한 음료수를 곁에 두고 보고 싶었던 영화가 막 시작하려는 긴장감과 설렘이 있는 쫓김이라 좋다는 말이다.

사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라서 자발적 쫓김의 형식을 갖고 있긴 하지만 무엇에든 쫓긴다는 건 꼴깍 침이 삼켜지는 일이고 맘에 여유를 두기에는 어려운 일이다.

아쉬운 대로 그냥 여유는 책과 책 사이에서 찾아지겠지 하는 마음으로 두고 있다.

그래도 마감에 쫓겨야 글이라도 한편 나오고 읽을거리에 쫓겨야 한 권이라도 더 맛있게 을 수 있으니 쫓기는 건 당분간은 지속될 모양이다.



아, 또 쫓기러 가볼까?

인덱스 책갈피가 펄럭펄럭 날개를 달고 있을 저 책 속으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