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출간을 위해 달려온 지난 6개월이 꿈같다.
이제 독자들에게 가 닿기 일보직전 카운트가 시작되었다.
이달 말일이면 책은 이제 날개를 달고 누군가의 가슴 밑바닥을 훑기 위해 책의 일을 할 것이다.
나는 '성장'과 '공감'에 대한 내용을 썼다.
처음에 이 키워드가 내게 가당키나 한가 싶었다.
그래도 이상하게 인연이 되어 선택한 것이니 그냥 밀어붙여 보기로 했다.
글을 쓰면서 성장에 가로막힌 나 자신이 보였고, 공감 앞에 공감하지 못하는 원리를 파헤치느라 길을 잃기도 했다. 그렇게 찾아 헤맨 시간들이 결국엔 나를 성장과 공감 앞으로 데려다 놓았다.
나에게 꼭 필요해서 내가 가져온 키워드인 줄 알았는데 글이 막바지로 접어들 때쯤 나는 이들이 나를 키우려고 온 키워드임을 알았다.
글을 쓰는 과정이 성장이었고, 함께 쓰면서 서로 주고받은 모든 것들이 공감이었다.
내 안에서 화산 같은 폭발을 일으켜 이곳까지 날 데려다 놓은 것이 '성장'이 아니면 무엇일까?
"엄마가 공감을 썼다고?"
딸들은 동의할 수 없다고 깃발을 들고 시위에 나설 태세지만, 함께 한 작가들이 내가 '공감'의 여왕이라는데 어쩌라고!(사실 딸들에게도 '앞으로 글이랑 어울리는 엄마가 되도록 할게...' 하는 다소 비굴한 웃음을 뇌물로 먹이고 잔소리에서 놓여났다)
그러면서 동시에 나는 지담 작가님의 소고집(인문학 에세이)에 들어갈 그림을 그리기로 하고 계약서를 썼다.
그림을 전공한 사람도 아니고, 오랫동안 그림 공부를 한 것도 아니라서 처음엔 언감생심 말도 안 된다는 생각이 스쳤지만, 그 생각은 가볍게 셔틀콕을 만들어 공중으로 날려 보냈다.
왜 안돼?
지담 작가님이 요청하셨고,
난 그림 그리는 게 좋고,
또 보기 좋다는 칭찬도 많이 받는 중인데
왜 못해?
이럴 땐 거추장스러운 '인식' 나부랭이는 버리는 게 상책이다. 그건 영혼의 영역인 내 의식과 태어날 내 창조물에 대한 모독일 뿐이다.
기회가 내게 왔다면, 그리고 그 기회를 잡기로 결정했다면 그걸 방해하는 모든 인식은 일제히
이다.
그래서 난 50대 평범한 중년인 내 삶에 파스텔톤 채색을 입혀 창조의 첫발을 내디딘 것이다.
처음 글이 내게 왔을 때, 글이 되는 방법을 품고 왔듯이 그림이 내게 온 이상, 그림도 자신이 태어날 방법을 품고 온 것이다.
그러니 나는 그들을 방해하는 인식의 너울을 걷어버리고 매일 주어진 시간에 '그냥 해!'를 입히면 된다.
그러면 또 그림은 자신이 될 모양을 가지고 내게 나타날 것이다.
내 삶의 놀이터를 건설하는 지금, 일련의 작업들이 나를 나답게 하는 작업임을 깨닫는다.
100세 시대가 도래한 이때,
난 아직 중간밖에 안 왔는데 벌써
할머니라고 불리고,
꿈에서 벗어난 사람으로 취급되지만
내가 내 꿈을 놓지 않고 계속 꾸는 한 꿈은 내 앞에 자신의 얼굴을 보여주러 달려온다.
진짜다!!!!!
책을 출간하고, 그림으로 입봉하는 50대.
거스 히딩크가 한국 축구를 16강에 올려놓고 말했던 "나는 아직도 배가 고프다!!!!!"는 이제 나의 말이다.
나는 매일 내 꿈을 향해 그냥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