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딸 중 둘째는 나름 비혼을 추구하는 아이입니다. 결혼에 대한 생각이 그리 곱지 않거든요. 특히 대한민국에서 결혼이란, 직업을 가진 여성에게 많은 희생을 요구하니까요. 거기다 집값은 뜬구름처럼 손에 잡히지 않게 멀다나요?
친구들의 결혼식에 다녀오는 빈도수가 요즘 잦습니다.
그러면서 결혼은 왜 그리 준비할 게 많은지 일하랴, 결혼 준비하랴, 결혼하랴, 결혼생활하랴, 너무 시간을 소진한다며 머리를 도리도리 합니다.
현실적인 이유도 있지만 또 하나, 도통 자신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다네요. 그러면서 둘째는 자기를 끈질기게 추앙하던 여타의 남정네들을 가볍게 물리치고 그저 일, 일, 일에 자신을 내던졌습니다. 그렇게 모든 과정을 접은 둘째는 결혼도 접은 듯했습니다.
그러더니, 두둥~! 그렇게 말한 지 일 년도 지나지 않았는데 남친을 데리고 온다지 않습니까?
대충 듣기로도 3년 동안 둘째만 바라보고, 둘째를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세상에 없는 아이처럼 대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1년 전에 둘째도 그 아이를 인정해 주었답니다.
근데 연애하면서는 거의 다 그렇지 않나요?
콩깍지의 특징 중 하나니까요.
그래서 저는 응~그렇구나, 하면서 그에 대해 더 묻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둘째 스스로 말할 때까지 제 아빠에게도 함구했습니다.
뜨악한 엄마 태도에 자존심이 좀 상했을까요?
갑자기 집 근처에 온 김에 엄마랑 식사하겠다고 합니다.
그래, 그러렴.
집 앞까지 데리러 온다길래 기다렸더니 검은 차 한 대가 제 앞에 섭니다. 그리고 소박한 한정식 식당을 골라 셋이 마주 앉았습니다.
둘째 남친은 우리 큰손자처럼 피부가 까무잡잡하니
쌍꺼풀이 진하고 커다란 눈을 가진 사람이네요.
조금은 어쩔 줄 몰라하는 게 느껴집니다.
그 순간 내면의 제게 물었습니다.
그에게 궁금한 점이 있니?
응, 다른 건 별로 없는데 요즘 가장 관심 갖고 있는 이슈가 궁금하긴 하네.
하지만 저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습니다.
아침도 거르고 내심 긴장하며 여기까지 왔을 그에게 그냥 밥이나 편하게 먹여 보내고 싶었습니다. 갑작스러운 약속이라 집밥을 먹여주지는 못하겠지만 말이지요.
그래서 그냥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편한 친구처럼요.
그가 어제 있었던 일을 얘기하면 웃었고, 야무진 둘째에게 어떤 헐랭이 기질이 있는지 얘기할 때는 그래도 둘째 편을 들면서 이런 점은 누구보다 잘해요, 하기도 하면서 같이 웃었습니다.
그는 밥 두 공기를 뚝딱 해치우고 저는 집에서도 안 하는 접시 가까이 놓아주기를 해가면서 셋이 시간을 보냈습니다.
헤어지면서는 정답게 악수도 나누고 둘째를 아껴주는 그의 마음에 고마운 인사를 대신합니다.
집에 도착하니 소식을 전해 들은 첫째가 득달같이 전화해서 따발총처럼 묻네요.
인상은 어땠어?
무슨 얘기했어?
뭐 궁금한 건 없었어?
아빠한텐 얘기했어?
제 얘기를 듣고 나서는 내 그럴 줄 알았어.
그래도 이것저것 물어봐야지 왜 그랬어? 합니다.
나중에 둘째에게 전해 듣기로는 정말 편하게 대해 줘서 고맙다고 합니다. 오랜만에 밥 두 공기를 너무 맛있게 먹었고 행복한 시간이었다고요. 어머님이 도시 어머니라 세련되고 (이 부분에서 터졌습니다) 이야기도 편하게 받아주셔서 좋았다고요.
그러면 됐지요.
결혼 생각도 없는 둘째가 남자친구라고 소개할 때는 뭔가 생각이 달라지고 있는 건지도 모르니까요.
아니면 그냥 친구소개일지도 모르고요.
가족들이 둘째에게 바라는 행보가 둘째의 생각과 다를지도 모르지만, 그것도 존중합니다.
채근하고 권하고 잔소리하는 건 둘째의 독자성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여기니까요.
아이들이 이렇게 자신의 삶을 확장하고 여러 가지 경험을 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건 즐겁습니다. 새로운 국면이 그들에게 올 때 그 국면을 향한 그들의 태도는 자신에게 당당한 것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어떤 형태든지 기성세대가 만든 것을 그대로 따르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들이 구축할 세계가 저희가 구축한 세계를 가뿐히 뛰어넘어 새로운 틀을 창조하는 그들의 손에 넘겨지고 다시 재창조되기를 바랍니다.
저는 우리 아이들 또래의 청년들을 대할 때면, 그들을 향한 부모의 마음이 됩니다.
사회 안에서 우리 아이들이 너나없이 존중받고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았으면 합니다.
그가 어디에 어떤 모양으로 있든지 청년이라는 이유로 무시당하고 가르쳐야 할 대상으로 취급당하길 원하지 않거든요.
남친이든
사위든
며느리든
손녀든
전 새로운 가족이 생기는 게 재밌습니다.
아 참, 김칫국은 사양합니다만 속이 느글거릴 땐 즉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