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력이란 자발적으로 회상하는 능력이라는 의미로, 순전히 정신 작용이라는 훈련된 습관에 관한 문제이다.
기억을 못 하는 책임은 소위 '상관없는 사실'에 대한 당신의 무관심에 있다. 따라서 관찰하는 습관을 들여라. 당신이 생각해내고 싶은 관찰된 사실을 수많은 외부 연상으로 강화하라. 어중간한 지식에 안도하지 마라. 관찰하는 습관을 들이면 외부 사실을 잘 기억할 수 있다. (주)
저는 기억력 면에서 조금 느슨한 편입니다.
전반적으로 기억해 둘 만한 일이 없다고 생각하며 살았어요.
그런데 인문학을 접하고 난 요즘 작은 기억이 새싹이 돋듯이 빼꼼하고 고개를 내밀 때면 무척 반갑습니다.
나를 관찰하는 일과 사물의 본질을 생각하는 시간이 기억의 머리를 쓰다듬었을까요?
오십이 넘게 살아온 수면 아래의 삶(인식 밑에 가라앉은 무의식)을 지나온 저에게 기억이 돋아나는 수면 위는 신기한 곳입니다.
마치 어린 아기였던 저를 어린이가 된 제가 바라보고 있는 기분이니까요.
제 아이들은 저를 길치라고 말합니다. 둘째는 한 번 간 길을 다시 찾아가지 못하는 점을 제게 물려받은 유전자인 양 아쉬워합니다. 그동안 저는 굳이 길을 익히고 알아야 동기나 이유가 없었어요. 그런 것보다는 지나가는 구름을 보며 원숭이 얼굴하고 닮았네, 그럼 사과 닮은 구름이 있나 볼까?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빨가면 사과, 사과는 맛있어... 하며 철 지난 연상하기에 빠져 있는 게 더 즐거웠어요.
사람의 얼굴이나 이름도 다섯 번 정도 만나야 겨우 기억이 났었답니다.
이젠 더 느슨한 나이가 되었으니 그럴 만하다고 여기며 그 생각에 기대어 버렸고요 그런데 나이가 들었다고 기억력이 떨어지는 게 아니란 걸 얼마 전에 알았습니다.
작년 북클럽 시간에 지난달 책에서 나누었던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저보다 나이가 많은 언니 두 분이 있는데 책의 줄거리, 등장인물의 외모나 상황까지도 정확히 기억을 하더라고요. 그리고 제가 기억하고 있던 부분과 그녀들이 기억하고 있던 부분이 다르고요.
어떻게 그렇게 기억할 수 있느냐고 했더니 책을 읽을 때, 자신이 아는 어떤 인물과 책의 인물을 연결해서 기억한다고 하네요. 또 다른 언니는 치매 예방을 위해 기억력에 좋은 방법을 알려주는 영상을 보며 훈련한다고 합니다.
전 기억을 지키기 위한 어떤 시도도 하지 않았고 심지어 무관심했지요. 관찰하기를 좋아하긴 했지만 관찰습관을 들이지도 않았고요. 그냥 나이를 먹으면 다 그렇지 뭐, 하는 무심함으로 일관했습니다.
얄팍한 지식도 지식이라고 저를 맡겨버렸네요. 그런 일상에 안주한 채 나태라는 물결 위에 둥둥 떠내려가고 있었습니다.
이젠 정신 차리려고요.
필요하다면 훈련도 하고 관찰도 하는 습관을 들여야 하니까요. 책을 읽고 내 삶에 대입해서 작은 루틴도 만들어 가며 기억력을 단단하게 다지고 있답니다. 정신작용의 촉수를 드디어 움직이게 된 것이죠.
그래선지 요즘은 길치라는 말은 안 들어요. 엄마가 너희들보다 잘 안다며 잘난 척도 합니다.
이동할 때도 웬만하면 걸어 다니고,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도 노선이 살짝 다른 버스를 일부러 타보기도 합니다. 골목길을 발견하면 좋아라 하고 어디로 이어질까 기대하며 걷기도 하고요. 매번 같은 길이 아닌 다른 길로 돌아가고 새로운 길을 가보기도 합니다. 그래서 대동여지도의 김정호만큼은 아니지만, 우리 동네 반경 1킬로미터까지는 지도를 그릴 수 있는 수준까지는 됩니다.
더 윤기 나는 기억력을 위해 이 책에서 권하는 것들을 실천해 보려고요. 그렇게 정신적인 안일함에서 벗어나는 일부터 시작해 보려고 마음먹습니다.
또한, 집중을 위해서 쓸모없는 정신의 짐을 내려놓고 즐거운 책보다는 두뇌와 마음에 이로운 독서를 해야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책에서 가져온 원리를 내면에 새기고 그것으로 글을 쓰는 연습도 합니다. 제가 좋아하고, 오래도록 연마하고 싶은 일에 집중하는 습관을 들여야 몰입의 쾌감도 맛볼 수 있겠죠?
수많은 정보가 우리의 기억력을 강타하고 넘어뜨리는 요즘, 조금은 고요하고 깊게 사유하기 위해 일부러 디지털디톡스를 택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기억력에 도전하고 매달리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내 정신이 내 말이고, 행동이 곧 내 삶이니까.
그냥 신성한 무관심으로 기억이 따라오게 만들고 싶어요.
그러기에 오십 후반은 너무나 요긴한 나이니까요.
주) 나폴레온 힐의 황금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