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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을 지고자 하는 마음가짐

by 캐리소



딸아,

여행 오기 전날, 넌 갑자기 덮친 장염 때문에 복통과 시달렸다지?

결국 병원에서 링거까지 맞았다고 했어.

근무 6년 동안 일하다가 병원 간 건 처음이라면서 다른 것보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할까 봐 가장 무서웠다고 했지.


그렇게 아픈 것도 견디고 부모와의 약속을 지키겠다고 여행을 강행한 네가 대단해 보여.

사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엄만 상관이 없지만

스스로 한 약속이든, 누군가와의 약속이든 지키려고 자신을 던지는 너.

그 모습에서 엄마는 너의 열망을 본다.

책임을 다하려는 열망, 자신의 목표를 향한 의지 같은 것 말이야.


어렵고 힘든 난관이 끝없이 네게 온다고 했지?

헝클어진 체계와 꽉 막힌 소통창구를 만나면 답답하고 화가 난다고도 했지?

그래서 넌 그들 양쪽의 소통의 도구가 되고 있다고.

하지만 언제까지 그래야 할지 모르겠다고.

그럴 때는 바꿀 수 없는 것들에 놓인 초점을 살짜기 네게로 옮겨보렴.

너를 유익한 곳에 놓아서 잘 쓰이는 시간을 이어가는 것, 거기에 너의 마음을 얹어 봐.


삶의 고통과 증오를 가라앉히는 해독제는 무엇일까? 각자에게 가능한 최고의 목표가 그것이다. 최고의 목표를 추구하는 데 필요한 조건은 무엇일까? 남들이 무시하거나 소홀히 하는 것들까지 책임을 지고자 하는 마음가짐이다.

- 질서 너머, 조던 피터슨.


이 구절을 네게 말해 줬지?

마음 한 켠에는 미안한 기색을 숨기고서.

남들이 책임을 방치한 곳에 너의 기회가 숨어 있음을 알길 바란다. 사실 엄마도 잘 안 되는 바람이지만 너와 그 바람에 같이 타고 앉아가길 바라는 마음도 함께 있어.


결코 거기서 남들처럼 하지 마라. 너 스스로를 단련해라. 넌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큰 사람이며 다른 사람을 복되게 할 수 있는 존재야.

지금처럼 해라. 책임을 다하는 것.

네가 못하는 걸 상대에게 요구하지 않는 것.

지금 네가 하는 근거 있는 요구, 애정 있는 충고 모두 사랑으로 해라.



여행의 막바지까지 우릴 챙기고 스케줄을 조정해 가며 일정 짜느라 애썼어. 여행 끝까지 계속된 간장이 느껴져서 조금 안타까웠지만 네가 가족을 책임지는 기회를 직접 목격하는 과정은 엄마에게도 양가감정을 느끼게 해 준 시간이기도 해.

대견하고 서글프고 든든하고.

그러면서 자연의 순서와 섭리를 받아들여야 하는 엄중함도 배우고.


여행의 모든 과정 속에서 가족을 보호하고 돌보느라 수고했어. 딸.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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