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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말했던 너에게

by 캐리소




내가 탄 버스에서 맞은편을 바라본다


버스가 고장 났는지

109-1번 마을버스 아저씨는 정류장을 벗어나

하릴없이 서있어


언제까지

서있을 수 있을지 모르겠어


지금은 그냥 그렇게

서있는 걸 선택하는 중이야


고장이라도 나야

우리는 묵직한 어깨를 풀어

이 노선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일까


네가 너로 사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고

내게 말했던 너에게


나도 말할래

나도 나로 사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고


너도 나도 이렇게 스스로를 낯설어하면서

자신이라는 무게를 내려놓지

못하는구나


그러면

잠시 재생버튼을 정지시켜

길 위에 놓인

풀과 돌멩이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그들은 자신을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


귀를 열고 앉아

어깨를 둥글게 웅크려서 부드러운 연대를 만들 수 있겠니?


그렇게 웅크린 우리의 등 뒤로

대답을 들고 서 있는 햇살을 만나면


질문할 수 있게 될 거야

너든 나든

다정하게


버스가 출발할 때까지

조금만 더 기다려


맞은편에 있는 나도 기다려줄게






딸,

오늘은 날씨가 좀 가라앉아 있어.

비를 뿌리는 여러 날을 지나고 어제 반짝 청량함을 보여줬는데 기어이 또 자기의 속내를 드러내는

우울한 시인의 책상 같은 날씨야.


근데 엄마는 이런 날씨가 정말 좋다.

시인의 책상에는 그가 쓰다 만 쪼가리 시어들이 떨어져 있을 것이고 어쩌지 못하는 감정을 미처 처리하지 못한 그는 책상을 떠나 있을 것이니 충분히 책상 탐험을 할 수 있겠다.


여기까지 읽고 너는 '뭐래?' 하면서 의아해하겠지?

오늘은 네게 이 말 저 말하는 대신 엄마가 쓴 시 한 편 전한다.


우리 서로 배틀하듯이 '나로 살아가는 것'에 대해 토로한 적 있었잖아.

너도 엄마도 누가 더 힘든지, 누가 더 자신을 더 견딜 수 없는지 입에 침 튀어가면서 얘기했잖아.

그러고 보니 우리 우리 자신으로 지내는 게 참 어설프고 낯설지?

제일 친하면서도 때론 자신을 제일 싫어한다는 건 사춘기 소녀들이나 하는 짓 같아.


이젠 봐주는 쪽으로 기울여야 할 것 같아.

낯익은 얼굴로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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