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
여행 후에 일상으로 잘 돌아갔지?
여행은 즐겁기도 하지만 일상을 떠나서 다른 경험을 하는 건 다소 피곤하더라.
그래서 엄마는 집으로 돌아온 이 자리가 참 좋다.
있던 자리로 돌아와 편해서 좋은 것도 있지만 내 페이스를 찾아서 반가운 것도 있어.
일상이라고 해서 언제나 평온한 것은 아니잖아. 일상 속에서도 내적 폭풍은 매일 다른 리듬으로 엄마를 데려간다. 그래서 겉으로 보기엔 늘 같지만 사실 전혀 같지 않아.
하고 싶은 일을 열망하면서도 해야 할 일을 위해 나를 반강제로 그 일 앞으로 데려다 놓을 때가 있어.
처음엔 집중하지 못하다가 나도 모르게 몰입하다 보면 어느덧 하고 싶은 일까지 몰입의 기쁨으로 젖어들게 된다.
그래서 참 놀라워.
오후에 엄마가 어떤 분의 칼럼 하나를 읽었어. 눈물이 날 글이 아닌데도 엄마는 눈물을 줄줄 흘리며 울었다. 그러면서 엄마는 왜 이렇게 글을 못쓸까 너무 괴로웠단다. 바보 같지?
그 칼럼은 평범하고 일반적인 글이었는데 글쓴이의 처지가 엄마 폐부까지 다가와 파도처럼 철썩거려서인지 마구 공감되면서 엉엉 울게 만들었어.
얼마나 좋은 글인지 모르겠어.
현란하지 않고 유려하지도 않은 글인데 독자의 마음을 감동으로 쭉쭉 쥐어짜다니!!!
그럴 땐 엄마는 마구 욕심이 나는 거 있지?
좋은 글, 정말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이 엄마를 똬리 틀어서 돌돌 말아대는 것 같아.
다른 욕심부린 것 없다고, 그저 글 하나만 잘 쓰는 작가가 되고 싶다고 신에게 막 떼쓰고 싶은 마음이야.
그러면서도 엄마가 이런 욕심을, 욕망을 드러내는 게 즐겁다!
욕망을 드러낸다는 건 그걸 이룰 수 있는 씨앗을 품고 있기 때문에 이미 존재하는 것이거든.
그래서 엄마는 이 욕망을 계속 지피려고 해.
불씨를 꺼뜨리고 싶지 않아.
딸아,
너도 너만의 독자성 있는 욕망의 보화를 파내라.
네 안에 있는 것이 얼마만 한 크기인지 얼마나 많은 내용을 담고 있는지 살펴봐라.
땅 속 깊이에 있다면 다행이다.
흙은 많은 양분을 갖고 있으므로 그 욕망은 양분의 힘으로 거대한 세계를 이룰 것이란다.
너의 목소리를 내라. 지금처럼 너의 취향이나 혐오까지도 숨기지 마라.*
너를 둘러싼 풍요로움을 찾아내라.
엄마도 엄마를 둘러싼 풍요로움 속에서 어떤 양분이 되기 위해 욕망을 피어 올리는 중이니까.
네게는 신참 시절에 갈고닦은 시간들이 있지?
그 시간들, 열과 압력*을 기억하렴. 그것은 너를 변화시킨 것이니까. 이제는 또 다른 신참들을 교육하고 훈련하는 업이 네게 부여되었지.
입었던 초심자의 옷을 벗겨내고 장인으로 거듭나게 하는 것이 네 일이잖아.
이제 서서히 장인의 모습을 갖춰가는 너라면 기존의 훈련방법이나 다른 사람의 신념보다는 새로운 신념을 구축하렴.
네가 모든 것의 패턴을 파악했다면 언제든 변화시킬 수 있는 위치에 서있는 거야. 그것을 기초로 새로운 통합의 장*을 만들 수 있고.
네가 새로운 훈련방식*을 만드는 사람이 되면 돼.
엄마 생각에는 생에 견습기간이 없다는 건 큰 축복이다. 그렇기 때문에 매일 열과 성을 다할 수 있으니까.
한편으로는 서툰 초심자*인 엄마의 입장에선 수련 기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어.
실수하고 실패하는 건 아프니까.
모르는 시간들이 쌓여서 아는 것으로 나아가는 것.
얕은 곳에서 깊이까지 알아가는 것,
모르는 길을 아는 길로 만드는 것,
어려운 것이 쉬워지는 길로 가는 것.
아프지만 멋진 길이긴 하네.
우리 멋진 길 걸어가자.
* 자기 신뢰 철학, 랄프 왈도 에머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