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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리소 Apr 10. 2023

왁자지껄 후에 오는 공기의 흐름

항상 헤어지는 중입니다

"아빠, 이만 원만 줘."

"아빠, 얘가 안 가진다고 하면 나 줘도 돼."

"안돼, 아빠. 언니 주지 마."


운전석에 앉은 남편이 만 원짜리 다섯 장을 펄럭거리는데 뒷자리에 앉은 둘째가 그중에 두 장만 슬쩍 빼간다.

오랜만에 부산에서 째가, 대전에서 째가 집에 와서 함께 밥을 먹고 떠들며 예배까지 같이 가는 길이다.

어제저녁에 아빠 차를 가지고 나갔던 둘째가 아빠 주유하라고 자기 카드를 내민다. 그걸 사양도 하지 않고 홀라당 받아갖고 나간 남편이 고급 휘발유를 가득 채운 후 헤헤거리며 운전석에 앉는다. 아빠, 내가 만 원어치만 넣으랬잖아. 하며 나 내일부터 한 달 동안 굶어야겠네.

둘째의 너스레를 들은 남편이 오만 원을 둘째에게 건네자 세 부녀가 옥신각신 하며 차 속의 공기를 데운다.



부산으로 이사 간 첫째는 분당에서 친구 결혼식이 있고, 대전에서 직장에 다니는 둘째는 후배 부부의 개업을 축하하러 수원에 가야 한다며 본가모인 길이다. 토요일 오전엔 첫째가 나가고 둘째는 제 남동생의 옷을 사주겠다며 나랑 셋이서 점심을 먹고 쇼핑을 하고 돌아왔다. 이제 고등학생인데 친구들 하는 건 다 하라며 둘째 누나가 세팅해 준 아이템을 잔뜩 얻어 온 아들이 희희낙락을 얼굴에 담은 채 쇼핑백의 내용물을 정리한다.



예배가 끝났지만 아직 열차 시간이 많이 남은 우리는  안에 있는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남편이 세 사람의 주문을 받아 각각 다른 음료 네 잔을 들고 돌아온다.

친구의 결혼식 이야기가, 직장 동료들이나 상사와 친구처럼 지내는 이야기가, 올해의 휴가와 여행이야기가 이사 간 친구가 생각나는 친구의 옛 동네 이야기가 지나가는 시간의 리듬처럼 꿈처럼 흘러간다.

열차를 탈 시간이 되었다.

남편이 아이들의 짐을 양쪽 어깨에 메고 직접 열차 타는 곳까지 동행하겠단다. 마스크를 쓴 첫째와 둘째의 어리둥절해하는 눈동자가 나를 향한다. 왜 저러는지 나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평소에 데면데면하고 아이들에게 별로 다정하게 굴지 않았던 남편이 요새 들어 부쩍 애들을 챙긴다.

말로만 듣던 '나이 듦'의 감성인가. 

따뜻함이나 공감능력이 없어 딸들의 빈축을 샀던 일이 많았는데 말이다. 없던 친화력이 생긴 거라면 반가운 일이다.

남편이 잠깐 화장실에 간 사이에 아이들은 아빠가 좀 달라진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부드러워져서 좋기도 한데 아빠가 이렇게 늙어가는구나 싶어서 슬프기도 하단다. 나이 드는 아빠가 좀 짠하니 엄마도 아빠 구박하지 말고 잘해주란다. 참 내. 이젠 아빠보다 엄마인 내가 더 강한 위치라고 생각하나 보다.

각자 개성이 강하고 자기 세계가 뚜렷한 다섯 식구.

그동안은 서로의 다름 때문에 섞이기도 화합하기도 어려웠지만 세월이 지나 서로를 생각하는 위치와 성숙함의 변화가 서로를 바라보는 시각까지 변하게 했다.

아이들은 자라서 각자의 세계가 더 단단해진 성인이 되고 부모는 점점 더 자신의 세계가 풀어져 버리는 데다 몸도 연약해지고 그래서 아이가 되는. 결국은 서서히 서로의 위치가 뒤바뀌게 되는 아이러니가 생겨난다. 그게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주인공인 우리들은 일상 속에서 그 자연스러움을 알아차리며 살 수 있을까?






네 식구가 헤어지며 이쪽저쪽 작별하느라 포옹이 길다. 애들 들어가야 한다며 내가 그들을 떼어 놓는다. 시간이 임박할 때까지 손을 흔들어 아이들을 보낸다. 차를 돌려 되짚어 오는 길, 참 허전하네 하는 남편의 혼잣말 같기도 하고 아닌 것도 같은 말을 들으며 옆자리의 나는 혼곤히 잠에 빠진다.



저녁을 먹으면서 아들은 하루도 안 지났는데 벌써 누나들이 보고 싶단다. 누나들과 함께 있으면 맨날 어디 놀러 온 것 같다고 언제 또 오냐며 묻는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다는 말 끝에 너도 성인이 되면 아빠 엄마를 만나러 왔다가도 자기 집으로 돌아가는 거라고 말해준다. 섭섭하고 헤어지기 싫더라도 그렇게 는 거라고. 누나들도 가정으로 돌아가고 직장으로 가서 자기 자리를 잘 지켜야 진짜 어른이 되는 거라고. 아들에게 그렇게 말하면 그 말은 내 마음으로 스며들어 나를 다독인다. 내게도 그 말은 필요했나 보다.



남편은 어슬렁어슬렁 괜히 냉장고를 열었다가 커피를 내렸다가 쓰레기를 버리러 나갔다 온다 하면서 허전함 가득한 공기를 가르고 다닌다. 어쩐지 그의 뒷모습에서 유난히 맘이 약하고 자식 사랑이 그득하셨던 시아버지의 모습이 오버랩되는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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