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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리소 Apr 23. 2023

초록이에게 받은 선물

나도 그들에게 초록이가 될 수 있을까



지난날 나의 주말은 배고픈 아침 느지막이 일어나서 신선한 커피와 금방 구운 빵의 향내를 맡는 일처럼 흐뭇한 설렘이었다.

일주일을 열심히 살아온 내게 저절로 내려지는 상 같은 설렘.

어떤 땐 그 상이 내 맘에 썩 들지 않아도 상이니까 좋았다.

주말에 비가 오거나 갑자기 약속이 깨지거나 본의 아니게 대체 근무를 해야 할 때라도 주말이니까 너그러워졌다. 그런 주말은 안 오는 게 낫지 않냐고 말한다면 절대 아니다.

누구나 부러워하지만 아무나 가질 수 없는 우등상이나 그림대회의 대상 정도는 아니지만 우리 아이 초등학교 시절에 친구를 잘 도와주는 아이에게 내려지는 어깨동무상처럼 미소를 부르는 상 같은 그런 주말이어서 좋았다.




요 근래 내 말이 조금 달라졌다.

새로운 루틴이 생겼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연달아 몇 주를 아픈 친구나 혹은 그런 가족돌보고 있는 친구들을 만났다. 함께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그들의 이야기를 오래오래 들어주게 되었다. 그러고 나면 그들은 자기만 떠들었다고 멋쩍어하며 그래도 속이 많이 편해졌다며 고마워했다.

그들의 말을 들어주는 시간이 내게도 좋았다. 그래선지 주말이 코 앞에 당도하면 두 가지 마음이 번갈아가며 고개를 든다.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퍼져 있고 싶은 마음과 그런 친구와 만나 그의 이야기를 내내 들어주고 싶은 마음이다.

조용히 혼자만의 시간을 갖거나 혹은 부담이 덜한 친구와 한두 시간의 티타임을 가지거나로 나뉜다.





시간과 시간 사이에 틈이 있어야 숨쉬기가 편한데 가끔은 바라는 것과는 정반대의 상황이 생기기도 한다.

꽉 차게 짜인 어떤 약속들 속에 나를 세워 놓으면 심장이 변변찮은 사람이 진한 에스프레소를 들이켠 것 같은 두근거림에 좌불안석이 된다.

커리큘럼이 빡빡한 과정 앞에선 시작하기 전부터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도 한다.



왜 이렇게 생겨먹은 것일까?



그럼 어떻게 생겨먹어야 하는 거냐는 물음이 곧 이어진다. 속으로 투덜거리면서도 내 속에 나를 다그치는 목소리가 와글거리면 그들을 하나하나 내보내느라 기운이 빠진다.


이건 이렇게 정리해야지.

저건 저렇게 되도록 애써야 하지 않겠어?

하는 그들의 등을 밀어내노라면 곧 초록의 나무들이 시야에 들어온다. 


살 것 같다.


우리 동네는 사방으로 산이 있어 다. 버스를 타고 창밖으로 눈을 돌리기만 해도 가슴속에 시끄러운 소음을 말끔하게 쓸어버리는 초록이들의 노래가 밀고 들어온다. 

그 노래는 명랑하고 맑아 시냇물의 음표 같기도 하고 눈이 빡빡할 때 넣으면 화하는 시원함을 주는 인공눈물 같기도 하다.

걔네들에겐 손가락을 넓게 펼친 융통성이 있다.





아침 시간에 여유가 있을 땐 내려야 할 목적지보다 한 두 정거장 먼저 내린다. 그곳엔 여지없이 공원이 있다. 주말의 이른 시간 공원엔 사람도 없고.

부지런한 한 두 사람이 반려견을 산책시키고 지나가면 난 오래오래 나무들과 눈을 맞춘다.






친구와 오랜만에 통화를 했다. 아들만 둘인 친구는 맞벌이로 정신없이 살아가는 중이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친구도 그의 남편도 여기저기 아픈 곳이 생기며 덜그럭거리는 중년을 보내고 있는데 설상가상 대학생인 둘째 아들이 검진 중에 뭔가 보여 재검진을 했더니 병이란다.

그 말을 듣고 말문이 턱 막히며 가슴이 뛰었다.

나도 친구도 무슨 말을 어떻게 했는지도 모른 채 전화를 끊었다.

친구의 힘없는 목소리에 가슴이 철렁하고 맘이 아파 내내 진정이 안된다.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는, 아무런 도움도 못 되는 내가 무력하다.


부모 된 친구는 오죽할까?


심심치 않게 주변에 아픈 사람이 많다.

병은 나이를 상관하지 않고 찾아온다.

계속되는 병치료에 몸이 지치기도 하고 마음이 상하기도 한다. 언제까지 계속될 지 알 수 없는 두려움에 막막해지기도 한다.


내 전용 빨랫줄인 주님께 가슴속에 무겁게 젖은 걱정과 염려들을 척척 걸쳐 널어야겠다.

친구 아들 걱정도, 다른 친구의 아픈 조카도, 그 조카의 병든 엄마도 반듯하게 펴서 널어놓으면 햇빛과 바람이 지나가고 켜켜이 공기도 새겨져서 가뿟하게 마르면 좋겠다.





나무가 잎사귀로 무늬를 만들고 그 사이에 모든 것을 들여놓는다. 아무것도 막지 않고 다 받아들이며 느슨하게 손잡는 표정이다. 막힌 게 뚫려 지나가고 다정하게 연대하듯이 마음이 아프고 몸이 아픈 이웃들이 시원하게 지나갔으면. 그렇게 될 수 있게 잠시 초록이가 되면 좋겠다. 살아내느라 빠듯한 주중을 지나고 있는 그들에게 잠시나마 느슨한 주말이 될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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