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인간이 그의 날들을 환희 속에서 보내든, 의기소침한 상태에서 보내든, 그는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 어떤 일인가를 해야만 합니다.
비록 자신을 표현할 만한 것이 살과 뼈밖에 없을 때조차도. 우리는 우리가 경험하는 기쁨보다 더 우월한 존재입니다.
- 구도자에게 보낸 편지, p. 98
오늘은 오전에 필라테스를 빡세게 하고 낭독 점검을 위해 각색팀이 모였다.
열과 성을 다해 마무리한 다음 근무지로 출발~.
일이 끝나고 부지런히 정류장으로 내려왔으나 버스를 놓쳐버렸다. 놓친 버스를 미련 없이 마음에서 보내고 세 정거장을 걸어서 떡집이랑 마트에 들른다.
아, 이런 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추적거리는 비처럼 눅진하다.
부실부실 비는 오고, 오전에 태운 허벅지와 등은 여전히 무겁다.
겨우 너덜해진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와서 이제 곧 이루어질 코치의 마인드로 리셋한다.
나는 코치다. 나는 상대의 마음을 보고 읽고 느끼고 변화시킨다. 이 시간은 상대를 위한 시간이다.
심호흡에 기도 하나 묵상 둘을 차곡차곡 쌓고 나서 코칭 돌입!
피코치의 눈빛 하나 시선 한 개라도 놓칠까 초집중하고 앞에 앉은 우주를 이해하기 위해 마음의 두 팔을 벌린다. 그 자리엔 편견이나 선입견이 끼어들지 말아야 한다.
서로의 에너지를 나눈다.
피코치와 하나가 되기 위해 그와 밀도 있게 눈을 맞춘다.
귀가하면서 방전된 에너지가 어느새 차오르고 있다. 지친 마음까지도 순식간에 윤이 나는 놀라움~!
그런 면에선 우리가 경험하는 기쁨보다 우리 자신이 더 우월하다는 말에 동감한다.
부쩍 주변에 아픈 지인이 많다.
말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도 그것이 온전히 그들만의 것이라는 사실이 아프게 뼈를 갉아낸다.
누구는 암으로 누구는 노환으로.
몸과 영혼의 고통은 서로를 향해 울리는 메아리다.
그래도 우리 각자는 삶의 길을 가야 한다.
사랑을 함으로써 사태를 이해하고 깊이 자신의 방향으로 걸어 들어가야 한다.
그런 사람들은 병자를 위해 차근차근 경전을 읽어주기도 하고 함께 모여 미사를 드리기도 한다.
먹고 마시며 우리는 우리의 일상을 똑바로 일으켜 세운다.
진실하고 꾸준한 일들에 몰입하면 그 일 자체가 우리 자신을 단단하게 영글게 한다.
피코치는 자신 안에서 찾은 대답의 힘과 에너지를 사방에 전달한다. 그때 옆얼굴로 비추는 햇살은 그의 환희이고 그 시간 안에 꽉 차는 전부다.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얼마나 더 올바르다고 할 수 있을까요? 인간들은 꾸밈없이 서로에게 판결을 내립니다. 그러나 어떤 상황에서 우리가 판사의 자리에 있을지 죄인의 자리에 있을지 모르지만. 스스로를 비판하지 않고 내리는 판결은 무효한 것입니다.
- 구도자에게 보낸 편지, p.106
무엇에 올바른 것일까? 우린 우리 자신을 통해 서로를 보고 있으므로 본래는 하나다. 종종 서로를 관통해서 빛을 본다.
진리와 원리에 스스로를 비춰보지 않으면 우린 까막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