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서리가 내리는 아침에 당단풍나무에 칼집을 내고 나무의 수액을 모은다고 합니다.
그 수액을 끓여 설탕을 만드는 것입니다.
양이 얼마만큼이든 부지런한 농부가 얻을 설탕은 자랑할 만큼 많은 양이 될 것입니다.
농부가 설탕을 만드는 동안 나는 나의 일을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달콤함이란 내 안에 존재하는 것이며, 그것이 설탕이 될 때가 올 것입니다.
잎사귀나 나무에만 당분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보면 나는 당단풍나무 인간이 아닐까요?
봄이 당신 안에 흐르게 한 달콤한 수액을 끓여 내십시오. 시럽 단계에서 멈추지 말고 설탕이 될 때까지 끓이십시오. 비록 설탕 한 조각이 당신이 세상에 내놓는 전부일지라도. 그것은 당신의 정원에 있는 나무에서 나온 것이 아닌 당신의 땀구멍을 자극하는 새로운 삶으로부터 얻어진 것입니다.
- 구도자에게 보낸 편지, p. 141
소로우는 자신이 먹을 설탕도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의 삶은 자연처럼 단순했고 계절의 영향력 속에 완전히 자신을 맡기고 지냈습니다.
어떻게 하면 소로우처럼 자신의 영혼의 결정체를 달여낼 수 있을까요?
설탕을 만들면서 소로우는 그것 자체가 연구이고 , 그 연구에 몰두하는 건 대학에 다니는 기분이라고까지 얘기합니다.
작가는 모두 '자연의 서기'라고 칭하며 자신은 글 쓰는 옥수수, 잔디, 대기라고 말하는 그.
저도 이 계절,
제 영혼 속에 흐르는 단풍나무 수액을 더욱 풍요롭게 하렵니다. 그래서 어쩌면 일상이 작은 감미로움을 띄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