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새벽, 내 조바심을 일으킨 미션이 있었다.
책을 읽다 줄을 그으려는데 뭉툭한 연필 때문에 사뿐한 선이 뭉개지는 게 아닌가.
섬광같이 내리는 감동의 문장에는 날렵한 줄 하나쯤 샤라락 얹어줘야 하는데, 줄 긋는 것도 흐름이 끊기면 안 되는데 중얼거리며 뜨뜻할 때 먹어야 하는 음식을 앞에 둔 사람처럼
시급하게 연필을 깎아야 했다.
연필을 깎으려고 보니 덜그럭거리는 손톱이 또 걸리는 게 아닌가.
내가 정한 손톱의 길이는 버선코의 각도 같은 한 끗의 휘어짐이 전체의 분위기를 좌우하는 1mm의 법칙을 따라야 물건을 쥐고 손을 사용하는데 아무런 걸림이 없는 것이다.
몸통을 사각사각 깎아 심을 뾰족하게 갈아 쓰는 연필과 날카롭게 자란 손톱을 깎아 부드럽고 둥글게 만들어야 쓸 수 있는 손.
둘 다 깎여야 기능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아침에 '깎는다'는 말이 내게 와서 새로운 것을 보게 한다.
연필이나 손톱이 아니어도 내 안에 깎여야 할 것이 많다.
껍질을 벗겨내고 알맹이를 날카롭게 하는 것.
내면이든 외형이든 그 작업 속에서 온전한 내 존재로 말끔하게 드러나야 하는 명제.
무딘 자각을 더 날카롭게 갈아내는 것.
내 속에 있는 쓸데없는 것들을 버리고 부드럽게 하는 것.
깎고 깎고 또 깎다 보면 언젠가 없어지고 사라지는 존재가 될지라도
나로서 그려내고 써낸 흔적들은 어디서든 나로 살고 있을 것이다.
깎는 것
깎는 것
별처럼 순수해 지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