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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너는 네가 다 자랐다고 말하지만 엄마가 보기엔 지금도 자라고 있단다.
네가 자라는 것을 곁에서 지켜볼 수 있다는 건 엄마에겐 축복이야.
네가 보내준 음악 잘 들었어.
그 음악을 듣고 창의성을 발휘해서 그림을 그려준다면 엄마 그림을 오백 원에 사겠다고 했지.( 오백 원은 농담이지?)
아들이 엄마 그림의 최초 매수자가 되는 영광을 주겠다고 너스레를 떨면서.
음악에 대한 생각을 얘기하는 너의 모습이 자못 진지해서 귀여웠단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숙제는 할게. 엄마가 어려워하는 일본노래라는 게 구멍이고, 다행인 건 연주곡이라는 거고.
네가 엄마와 나누는 시시껄렁한 농담 사이엔 진심이 담겨 있지.
그래서 엄마는 금맥을 캐는 마음으로 네 수다를 달게 듣는단다.
너는 이렇게 엄마에게 주는 게 많은데 엄만 네게 뭘 줬을까?
생각해 보면 별 게 없구나.
엄만 엄마 자신으로 산 시간보다 역할로 살았던 시간이 훨씬 많지. 역할을 못하면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건 타인만이 아니더라.
엄마도 엄마에게 그랬어.
엄마노릇, 엄마역할에 부족한 면을 찾아 자책만 일삼았지. 좀 모자라도 부족해도 엄마 존재는 그대론데 말야.
엄마는 이걸 이제야 알았단다.
그것도 엄마보다 젊은 작가들(빛작, 정현)에게 말야.
세상엔 어떻게든 내게 배우라고 많은 기회를 주는 것 같아.
엄마라는 이름 뒤에 붙은 수많은 역할들—아내, 주부, 직장인, 친구, 이웃, 코치, 작가—이 모두 엄마 본연의 가치나 존재를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을.
웃고 울고 화내고 지치고 또다시 일어서는 그 모든 순간들이 엄마를 만들었고, 역할은 그저 엄마가 세상과 맺는 방식 중 하나였을 뿐이야.
그러니 사랑하는 아들아, 그렇게 살아도 괜찮아.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 완벽한 사람으로 보이려 애쓰느라 네 안의 소리를 잃지 않았으면 해.
때로는 역할을 벗고 좀 쉬어도 되고, 때로는 누구에게도 설명하지 않고 보내는 날들이 있어도 괜찮아.
네가 숨 쉬고, 밥을 먹고, 울고 웃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거든.
엄마는 이제 조금 더 너그럽고 관대해지려 해. 스스로에게도, 그리고 너에게도.
부족한 모습도 사랑하고, 실패한 날도 그런대로 안아주며 함께 걸어갈 수 있기를 바란단다.
언젠가 네가 지치고 흔들릴 때, 이 말을 기억해 주렴. 엄마는 너의 역할이 아니라 네 그 자체를 사랑해. 그러니 너를 더 깊이 파고들어 네 안에서 신대륙을 발견해 봐.
사실 아무 생각 없이 놀기만 하는 줄 알았는데 그림과 디자인에 관심 있다는 걸 넌 나중에 알게 하더라.
네가 걸어가는 길은 세상에 하나뿐인 너의 길이란다. 남들이 재촉하더라도, 현재 네 시야의 속도대로 천천히 가도 괜찮아. 시야는 넓어지고 더 큰 속도를 만들 수 있으니까. 때로는 넘어지고 늦더라도 그 과정에서 너만의 풍경을 만나게 될 거야. 중요한 건 도착 시간이 아니라 네가 선택한 걸음과 그걸 지키는 용기란다.
엄마도 지금처럼 그림에 대해 얘기하고 너와 음악을 나눌 줄 아는 소양을 만들어 볼게. 그렇게 동등한 예술가로의 관계를 우리 사이에 세우도록 하자.
언제나 네 편인 엄마가 응원하고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