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봄인데

by 캐리소



사랑하는 딸,


학창 시절 운동장 조회 시간 기억나니?

누군가 오른손을 번쩍 들고 "기준~!!" 하고 외치면,

양옆의 아이들이 그 기준을 따라 쫙 대오를 벌려 맞추곤 했잖아.


오늘 버스에서 바라본 탄천은 그야말로 환하더라.

만개한 벚꽃과 개나리를 보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

저 꽃들은 대체 누구의 '기준~!!' 소리를 듣고 저렇게 일제히 꽃망울을 벙글었을까.


요즘 우리 딸 이 찬란한 봄을 누리기엔 눈앞에 놓인 숙제들이 그득하지?

한참 대회 준비하느라 퇴근 후에도 회사에 남아 늦게야 집에 돌아오는 널 보면 안쓰러워.

하지만 엄마 보기엔, 네가 이렇게 치열하게 봄을 지나는 건 곧 다가올 '다음 장의 생'이

널 기다리고 있기 때문인 것 같아.

무슨 말이냐고?

눈앞에 다가온 네 '결혼' 말이야.


하지만 딸아,

엄마가 말하는 다음 장이라는 건 단순히 누군가와 가정을 꾸리는 일만을 뜻하지 않아.

지금까지 네가 치열하게 가꿔온 너만의 세계를 한 뼘 더 넓히고, 그 새로운 토양 위에 전보다 더 깊어지고 단단해진 '더 큰 나'를 마주하게 되는 경이로운 과정.

엄마는 그런 성장의 시간이 널 기다리고 있다고 믿어.



새로운 국면을 앞둔 너의 삶과 엄마의 시간이 포개지며 마치 봄날의 꽃들처럼 다가온다.

꽃잎이 두세 장씩 겹쳐져야 비로소 풍성하고 화려한 표정을 지을 수 있는 것처럼 말이야.

엄마는 이 화려한 꽃잎들을 흔들림 없이 잡아주는 진짜 '기준'이 바로 '씨방'이 아닐까 생각해.

생명의 밑씨를 품는 단단한 주머니이자, 훗날 자라나 탐스러운 열매가 되는 바로 그 아이.

우리 앞에 놓인 새로운 변화 앞에서, 어떤 기준을 나침반 삼아 나아가야 할까?


언니가 처음 결혼할 때는 엄마도 허둥거리느라 한 걸음 뒤에서 가만히 바라볼 여유가 없었어.

닥친 일들을 쫓아가기 바빴거든.

하지만 이제 엄마는 두 번째 사위를 맞이하게 되었고, 너 역시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환경과 조건 속에서 너만의 삶을 빚어야 하는 출발선에 서 있어.


네가 엄마라는 씨방을 통해 싹을 틔우고 너의 삶을 이어가듯,

이제 너도 튼실하고 내실 있는 너만의 기준을 세워갔으면 해.

개나리든 벚꽃이든, 혹은 운동장 한가운데 서 있는 그 누구든,

각자가 가진 기준은 결코 맞고 틀림의 잣대가 아니란 걸 넌 이미 알고 있지.


자기 자신이 품고 태어난 고유한 씨방을 올바르고 건강하게 틔워내는 것.

그것이 새로운 삶의 장을 앞둔 너와 나에게 가장 필요한 기준일 거야.

늦은 밤까지 훈련과 연습의 자리를 지켜내는 그 고된 시간들도 결국 너만의 꽃을 피워내는 과정이잖아.

씨방은 온전한 자신으로 살아내느라 겪는 수고로움을 결코 고되다 여기지 않을 테니까.


오늘도 고생 많았어.

너의 눈부신 봄날을,

그리고 새롭게 피어날 너의 다음 장을 온 마음으로 응원한다.


안녕, 딸!


목요일 연재
이전 15화꿀벌로 산 지난 일 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