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행운

by 캐리소



많은 시간을 산 것은 아니지만 과거에 품었던 생각과는 정반대의 원리를 발견할 때가 있다.

그런 경우 경이로움이 기쁨으로 바뀐다.

새로운 원리를 알아차린 경이로움이 내가 손톱만큼이라도 자랐구나 하는 기쁨으로.


지금 내가 대하고 있는 사람은 쉽지 않다.

그는 동료이며 상사고 친구며 적이기도 하다.

또 다른 나 자신이라고도 할 수 있다.


아집으로 똘똘 뭉쳐 있고

자신의 감정에 매몰되어 있으며

어떤 한 지점에 모든 감각을 빼앗기고 있다.

특징적으로 이 모든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


그것도 모르냐는 식의 콧방귀.

입꼬리 한쪽을 일그러뜨리는 비웃음.

위아래로 훑어내리는 비아냥.


인간이 인간에게 건네는 죄의

악수 같은 것


그런 얼굴을 한 사람의 시선이 내게로 향할 때는

피부로 스며드는 모멸감과 굴욕의 감정을 즉각 경험하게 된다.


그럴 때 우린 '뚜껑이 열린다'고 말한다.

인간으로서의 품격과 교양을 지킬 수 있는 뚜껑으로서의 이성.

그게 열린다는 건 이성이 날아가 버린다는 뜻이다.

단전에서부터 끓어오르는 화는 즉각적이고 파괴적인 충동을 일으킨다.


그때의 나는 당연히 바른 판단을 할 수 없다.

감정이 폭발하여 뚜껑이 날아가 버리는 순간,

놀랍게도 우주가 수위조절을 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한쪽의 내가 열을 식히는 멘트를 다른 한쪽의 귀에 꽂는다.


'네가 결국 바라는 게 뭐야?'

'저 사람의 파멸이니?'

'감정 빼고 사실은?'


다소 시간이 걸리지만 사실 앞에서 나의 뚜껑은 점차 제자리를 찾아간다.

감정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동시에 아이들의 얼굴이 떠오르면 일단 성공!




삶은 종종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그러나 특정한 사안에서 살짝만 빠져나와 생각하면 내 뜻대로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얼마나 다행인지!

만약 내 욕망이 전부 실현되었다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혼란스러운 상황에 처했을 것이다.


입 밖으로 내지 않은 말들, 마음속에서 끓어오르던 욕구들이 꿈틀거릴 때

보이지 않는 힘이 나를 잡아줬다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만약 그 모든 것들을 입과 몸 밖으로 꺼냈다면,

섣부른 판단으로 관계는 엉망이 되었을 것이고,

지금의 평안은 불가능한 것이다.


삶의 예측불가능성

나와 같은 부족하고 어수룩한 사람에게는 기회다.

교훈을 수여받을 기회.

성장할 수 있는 기회.

삶의 이야기가 풍부해질 기회.


4년 전 화선지에 귀여움으로 찍어낸 나무들입니다. 무럭무럭 자랐겠죠?


갈등이나 어려움은 진정 피해 가고 싶은 일들이다.

하지만 피하면 피할수록 더욱 단단한 짱돌이 되어 내 앞에 버티고 선다.

길을 막는 짱돌은 들어서 처리해야 한다.


내가 생각한 대로 모든 일이 이뤄지면, 오히려 위험하다.

내 생각이란 게 심하게 좁기 때문이다.

내 생각의 방향이 아니라 일이 이끄는 방향으로 나를 데리고 가는 편이 유익하다.

내 생각 밖의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새로운 길을 탐색할 자유를 가질 수도 있다.


거시적인 시야로 바라보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상황이 단순한 짜증이 아니라

오히려 삶의 다채로움을 더해주는 행운이다.


이러한 상황을 통해

더 깊이 있는 통찰과 감정적 성장이 이루어진다.

금요일 연재
이전 13화물 대는 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