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러다니는 돌멩이 같은 내 이름
생각만 많은 돌멩이
돌멩이도 생각이란 걸 할까? 생명체가 아닌데 무슨 생각을 하겠으며 어디서 그런 어린애 같은 발상이냐고 누가 꾸짖는다 해도 그것들은 생각이란 걸 할 것만 같다. 사실이라면, 맨살에 부딪치는 여러 존재들과 통증을 같이 할 것이었다. 장식용으로도 건축자재로도 쓸모없는 돌멩이는 더 많은 생각으로 잠 못 이루는 날이 고통스러울 것이다. 돌멩이는 미래를 설계해도 소용이 없다. 계획한 일을 행동으로 옮길 수 없으니까. 자신의 힘으로 한 뼘도 나아갈 수 없어 울고 싶은 돌멩이에게 누구도 관심이 없다. 있는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분하다.
아, 내 인생이 그렇다.
하루하루가 무력하다. 정숙이에게 꽤 되는 돈을 빌려 양장점을 차렸다. 원금을 갚기는커녕 이자도 못 주고 있다. 이자는 생각 말고 잘 되면 서서히 갚으라는 정숙이가 고맙다. 그래도 이자까지 살뜰히 챙겨주고 싶다. 일감은 들어오는데 나의 의욕과는 달리 무슨 연유에서인지 몸에 기운이 없었다. 제 날짜에 옷을 맞추어 주지 못하기 일쑤였다. 가게에 누워있는 시간이 많았다. 어서 돈 벌어서 빚도 갚고 버젓한 집 한 칸이라도 마련하고 싶은데, 자꾸 까부라졌다. 내가 돌멩임을 확인시켜 주는 일들도 종종 있었다. 금이와 강산이가 밀감이를 데리고 학교에 간 사이에 손님이라고 와서 바지 밑단을 줄여달라며 헛소리를 지껄이다가 가는 어린놈도 종종 있었다. 발끝으로 한 번 툭 건드려보려는 심산이라고 나는 가차 없이 믿었다.
"누님, 아름다우십니다. 저와 누나동생 하실래요?"
생긴 건 허여멀 건하게 생겨가지고 시답잖은 농간의 말에 주거니 받거니 하고 싶은 여력이 없었다.
"우리 막내 남동생과 비슷한 나이인 것 같은데 수 틀리면 엉덩이를 발로 차 버릴지도 몰라요."
이럴 땐 남편이야기를 해야 하는 거 아닌가? 나는 떠나보내지 않았지만 그가 떠났다고 생각하니 자존심이 내 입에 남편이라는 말을 허락하지 않았다.
약해 빠진 인간 같으니라고! 애를 셋이나 낳아 놓고! 나도 모르게 마음도 입도 거칠어졌다.
쌀을 못 사 정숙이네서 밥 해 먹고 남은 누룽지 말린 것을 양파자루에 한가득 씩 얻어다가 끓여서 끼니를 때웠다. 아이들 도시락 쌀만큼의 쌀을 샀고 집 반찬과 도시락 반찬은 김치였다. 아이들은 배고픔을 반찬삼아 무엇이든 먹어 치웠다. 자기들끼리 반 친구 누구누구가 소시지나 달걀반찬 싸 온 얘기라도 할 때면 마음이 아팠다.
시간이 흘러도 살림살이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정숙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러 갈 때마다 사춘기를 지나고 있는 조카들은 나를 거지 보듯 했다.
정숙이도 내 모습이 보기에 딱했는지 한 마디 했다.
"언니, 이렇게 언니가 고생해야 하겠어? 이 판국에 공부가 무슨 소용이야? 금이랑 애들 공장이라도 보내는 게 어때?"
돌멩이를 아주 세게 걷어찼다. 누룽지자루를 머리에 인 채, 맘이 상해 돌아서는 내 뒤에서 큰 조카가 제 엄마에게 말한다.
"엄마 아빠가 고생해서 이루어 놓은 걸 거저 얻어가려고 하시네? 엄마, 바보같이 끌려다니지 말고 우리 거는 발톱까지도 버리지 말고 다 챙겨 먹어야 해!"
정숙이는 좋겠다. 지킬 것도 있고 지키려고 하는 자식도 있어서.
그러지 않으려고 했는데 잠자리에서 금이에게 그 말을 전했다. 금이가 내 등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엄마, 우리가 미안해. 이모 말이 완전히 잘 못된 것도 아니지 뭐."
나는 조르륵 누워 잠든 사춘기 아이들을 등뒤로 하고 모로 누웠다. 인생 처음으로 참았던 눈물이 사정없이 쏟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