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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히면 안 되는 이름 - 23화

아들아 내 아들아!

by 벙긋 웃는 문혜력

오늘은 초여름의 문턱인데도 선선한 바람이 나뭇잎들을 간질이는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날씨구나.

이혼했다는 소식 알고 있다.

네가 내 무덤에 와서 넋 놓고 앉아 있다 가기 이전부터 알고 있었어. 괜찮은 거니? 어린 새끼들을 연약한 여자에게 맡겨 놓고 떠나온 너의 마음이 편치 않길 바라는 내 마음은 웬 걸까? 네 아버지가 나를, 금이와 밀감이를, 그리고 너를 떠난 이후로 시작된 너의 길고 긴 방황은 그 끝이 어디인지 알 수 없구나.

학교를 버렸고, 어미의 근심 어린 얼굴을 버렸고, 이젠 처 자식을 놓아버렸다. 무언가 해내려고 항상 애쓰면서 살아온 너의 노고를 알기에 안타깝다. 그 모든 어그러짐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냐고 누가 묻기라도 한다면 나는 대꾸할 자신이 없다. 너를 온전히 이끌어주지 못한 어미여서. 너의 실패와 고통은 모두 내 탓인 것만 같아서. 네가 한없이 가엾다. 문득, 한 사람의 삶을 복기라도 하듯 살아온 너의 모습에 네 아비를 투영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이러지 않으려고 했는데, 나는 그를 원망하는 동시에 그를 몹시도 닮아버린 내 아들을 체휼하고 있다.


아들아, 너만은 아비의 뒷모습을 닮지 않기를 바랐다. 그 뒷모습은 허망했고 무력했고 슬펐다. 애초에 주어진 운명이라는 게 있어서 아무리 달려도 뫼비우스의 띠 위에서 미끄럼질 당하 듯 결국엔 같은 곳만 맴돌 것 같은 너. 희망이라는 이름을 붙잡고 계속 일을 저지르면서 또 다른 실패를 기약하는 그 길에서 얼른 빠져나오렴. 사업이라는 거 그렇게 계산 없이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아들아!


내 말에 너는 이견을 갖고 있을 수 있겠다. 실패하지 않았다고. 새로운 시작일 뿐이라고. 왜 엄마는 미리 겁부터 먹고 부정적인 말 뿐이냐고. 미안하다. 떨칠 수 없는 불안감을 이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는 나다.

수십 년 전 오매불망 집 나간 아들을 기다리던 한 여자의 불안감이 시나브로 자라났다고나 할까. 그 당시 매일 창가에 서서 너를 기다리면서 소멸해 가던 인간이 바로 나였다. 나의 그 창에 이제 나의 흔적은 온데간데없고 그 창도 그 집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 집터에는 허술한 집들을 대신해 아파트가 빼곡히 들어섰다. 그 낡은 집에서 우리 네 식구가 수제비 떠먹고 웃고 떠들던 잠깐의 시간들이 그립구나.


아들아, 늘 허약했고 아팠던 내 생의 날들이 새롭게 느껴진다. 엄마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또렷한 정신을 가지고 있고 어디도 아픈 데가 없어. 아픈 것이 있다면 너를 위로할 수 없다는 것. 오직 그것뿐이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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