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울의 문 - 16화

함 가보자!

by 벙긋 웃는 문혜력

며칠 뒤, 학과 분위기가 묘하게 들떠 있었다.
김교수의 연구실 앞에는 이름을 불려 들어가는 학생들이 하나둘 다녀갔고, 밖에 남은 학생들은 서로 눈치를 주고받았다. 모두가 궁금해했다.

“대체 무슨 일이지?”

혜윤 역시 김교수와 대면했다. 김교수가 안경 너머로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손짓했다.

“혜윤 학생, 앉게.”

책상 위에는 몇 장의 문서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교수는 그중 한 장을 집어 들며 차분히 말했다.
“이번 여름방학에 아주 특별한 봉사활동 프로그램이 진행될 걸세. ○○그룹에서 후원하고, 학교와 함께하는 거지. 의미 있고, 남다른 경험이 될 거야.”

혜윤은 잠시 의아한 눈빛을 보냈다.
“제가… 거기에 뽑힌 건가요?”

“그래. 네가 가진 성실함과 태도라면 충분히 자격이 있지.”
김교수의 말은 분명 칭찬이었지만, 어딘가 기계적으로 준비된 문장 같았다.
혜윤은 한 학기 장학금을 받을 수 있다는 것에 놀라며 이것이 봉사활동의 취지에 맞는 처우인가 싶었지만 궁금해하지 않기로 했다. 마침 과외하는 아이들이 내신만 필요한 아이들이어서 사실상 과외수업은 끊겼다고 봐야 했다. 여러 명이어서 학비걱정은 없었는데 이상한 봉사활동이건 뭐건 땡큐였던 것이다.

같은 날 오후, 수인도 연구실로 불려 들어갔다.
“수인 학생.” 교수는 묘하게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자네 같은 학생이야말로 이 프로그램에 꼭 필요하지. 책임감 있고, 리더십이 있지 않나.”
수인은 순간 당혹스러웠다. 마치 이미 정해진 배역을 맡는 듯한 기분이었다.

동현과 전청 역시 각각 다른 시간에 불려 들어갔다.
김교수는 두 사람에게도 비슷한 말투로 설명했다.
“이건 흔한 경험이 아니네. 남들 다 하는 봉사활동이 아니라, 특별히 선발된 소수만이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야. 기회라면 기회고, 또 하나의 도전이 될 수도 있지.”

연구실을 나온 네 사람은 결국 같은 자리에서 마주쳤다. 서로 다른 시간에 들어갔지만, 결국 같은 결론을 가지고 나온 것이다. 수인은 김교수가 동행하는 학생들의 명단을 확인해 준 덕분에 망설임 없이 봉사활동에 합류하기로 결정했다.
“너도?”
“어, 나도.”

"좋네? 시골 가서 한적하니 애들하고 머리 식히고 놀다가 좋은 숙소에서 쉬고 게다가 장학금도 받고 말이야."

"뭔가 찜찜함이 있긴 한데, 넷이니까 서로 버팀목이 되어주는 걸로!"

“농가에 얹혀 지내서 괜히 폐 끼치는 것보단 낫지. 모기한테 뜯기며 자는 것보다야.”

모두들 한 마디씩 했다. 그들은 유쾌하게 아무렇지도 않은 듯 서로 시선을 맞추며 어깨를 으쓱거리기도 했다.
“결국 돈 많은 집안에서 내는 방식이 이거지. 겉으론 봉사활동, 속으론 이미지 세탁.”

전청이 두 손을 번쩍 들어 머리 뒤로 깍지를 꼈다.
“야, 그래도 숙소가 특실이라잖아? 모기 따위 안녕~ 냉장고 털고 게임기도 있으면 난 진짜 행복하다.”
그의 농담에 순간 웃음이 터졌고 그들은 수인의 가게에 들러 간단히 요기를 하고 김여사를 방문하기로 했다.

네 사람 모두 알고 있을까?
이게 단순한 봉사 프로그램 이상이라는 것을.


그 시각, 복도의 끝에서 다른 대화가 오가고 있었다.

“다 불렀네?”
마소야가 팔짱을 낀 채, 연구실 문쪽을 흘깃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빛엔 노골적인 의문이 담겨 있었다.

“왜 굳이 네 명 다 불러? 거슬리게?”

지장준은 손목시계를 만지작거리며 비죽 웃었다.
“그게 자연스럽지. 네 명 중 한두 명만 뽑았다면 오히려 수상하게 생각했을 거야. 몇 명 더 있어. 엑스트라들.”

“니돈 아니라고 아주 헤프다? 장학금도 쏴줘야 한다면서.”
마소야는 지장준의 그런 행태에 익숙한 듯 아무렇지도 않게 몇 마디 싫은 소리를 한다.
그녀는 지장준의 ‘자연스러움’이란 말속에, 혜윤을 끌어들이기 위한 집요한 집착에 자신의 수인에 대한 집착이 계산되어 있다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그러서인지 그녀의 표정은 밝았다. 지장준은 장한 일이라도 추전 하는 양 어깨에 힘이 잔뜩 실려 있었고 발걸음은 신이 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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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절 버스는 캠퍼스 앞을 천천히 떠났다. 차창 너머로 흘러가는 풍경이 점점 교외로 번져가고 있었다.

수인은 창가 쪽 자리에 앉아 팔짱을 낀 채 잠시 눈을 붙이고 있었다. 그 옆에 앉은 혜윤은 한동안 바쁘게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더니, 어느새 고개가 끄덕이더니 수인의 어깨에 조심스레 기대어 왔다.

순간 수인의 몸이 굳었다.
그러나 그는 눈을 감은 채, 마치 아무렇지 않은 듯 체온을 내버려 두었다. 의식은 온통 오른쪽 어깨로 쏠려 있었다. 그녀의 숨결이 고르게 들려왔다.

뒤쪽에 앉아 있던 동현과 전청이 그 장면을 놓칠 리 없었다. 옆줄에 동현과 나란히 앉은 전청은 슬그머니 팔꿈치로 동현을 쿡 찔렀다. 동현이 히죽 웃더니 곧장 수인을 향해 과장된 윙크를 날렸다. 전청도 곧 따라 하며 손가락으로 ‘잘해 보라’는 제스처까지 곁들였다.

수인은 입술을 꽉 다물었다. 얼굴에 화색은 없었지만, 귓불까지 스치는 따스한 온기가 이상하게 안정감을 주었다. 수인의 든든한 어깨 위에 혜윤은 아기처럼 머리를 기댄 채, 더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버스는 점점 속도를 줄이며 국도를 벗어나 산길로 접어들었다. 여름의 초록이 창밖을 가득 채우고, 구불구불한 길 위로 햇살이 부서졌다. 바람결에 스쳐 들어오는 풀 내음과 계곡물의 시원한 기운이 차 안에도 은근히 번졌다. 바람이 미동할 때마다 혜윤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이 수인의 뺨을 간질였다. 그리고 수인의 부드러운 시선이 그 위에 머물렀다. 수인은 그녀의 얼굴에 바람과 함께 붙어있는 머리카락을 살며시 쓸어서 귀 뒤로 넘겨주었다. 그의 손에 그녀의 숨결이 스쳤다.


멀리서 무주의 마을 입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낮은 돌담과 기와지붕이 이어진 골목, 오래된 나무 그늘 아래 모여 있는 아이들, 그리고 농사일로 분주한 어른들의 모습이 조용히 어우러져 있었다.
그 풍경은 오랜 세월의 시간을 머금은 듯, 따뜻하고도 순박했다.

“야… 진짜 좋다.” 동현이 창문에 이마를 붙이며 감탄했다.
“이런 곳에서 봉사하면… 도시랑은 확실히 다르네.”

그들의 시선이 마을을 스쳐 지나갈 즈음, 버스는 돌연 방향을 틀어 울창한 숲길로 들어섰다. 길은 갑자기 넓어졌고, 나무 사이로 세련된 건물의 윤곽이 나타났다.

그곳은 단순한 리조트가 아니었다.
흰 외벽에 고급 목재와 유리로 마감된 건물은 숲과 겹쳐져 마치 거대한 별장처럼 보였다. 잔디밭은 정원사 손길이 닿은 듯 완벽히 다듬어져 있었고, 한쪽에는 작은 분수가 물보라를 튀기고 있었다. 수영장, 실내 체육관, 편의시설이 안내판으로 줄지어 있었다.

“이게… 봉사활동 숙소라고?” 혜윤이 눈을 비비며 중얼거렸다.
“이건 뭐, 별장이지. 농가랑은 딴 세상인데. 잘 잤어?” 수인은 뻐근한 어깨를 견뎌내면서 잔잔하게 웃으며 속삭였다. 그의 음성이 부드럽고 남자다왔다. 혜윤은 순간 심장이 저릿해 왔지만 애써 바깥 경치에 환호하고 있었다.

그때, 동현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역시 진가네. 애들 공부 돌보러 왔다가, 여기선 호화 체험이라니… 참 아이러니하다.”

버스가 서서히 멈춰 섰다. 네 사람은 짐을 챙겨 내려섰다. 마을의 소박한 풍경을 뚫고 도착한 이 ‘별장 같은 리조트, 정말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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