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울의 문 - 14화

혼돈

by 벙긋 웃는 문혜력

동현은 다혜를 데리고 학교 근처의, 개념 없는 알바 때문에 늘 한산한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알바는 그들이 들어오자 흘깃 한 번 쳐다보더니, 다시 귓속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몸을 흐느적거리며 리듬을 타고 있었다.


동현은 진열대에서 주전부리할 만한 것들을 대충 집어 계산을 마친 뒤, 가게 안쪽 의자에 다혜를 억지로 끌어 앉혔다.


“야, 너. 여기 앉아. 도망치지 말고.”

다혜는 얼굴을 붉히며 불편하게 몸을 웅크렸다. 책가방을 무릎 위에 껴안은 모습은 딱 혼난 아이 같았다. 동현은 그 모습을 한참 바라보다가, 결국 속에 담아둔 말을 꺼냈다.

“넌 내 팬이라며. 근데, 왜 나한테 이러는 거야? 내가 사는 동네, 다니는 학교… 그걸 어떻게 알았어? 누가 알려줬어?”

그의 목소리는 조용했지만 단단히 죄어 오는 힘이 있었다. 다혜는 순간 눈길을 피했다. 긴장한 듯 손가락이 책가방 끈을 괜히 만지작거렸다.

“그건… 말할 수 없어요.”

“뭐?”

“누가 알려줬는지… 말 못 해요. 사실은…” 그녀는 목소리를 더 낮추었다.
“…그 사람이, 그냥 심부름 같은 걸 해달라고 했거든요. 그 과정에서 작가님 신상을 조금 알게 됐어요. 그리고 이번 심부름을 통해 저도 원하는 걸 전할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거라고 했어요.”

“그 심부름이 무슨 내용인데? 심부름을 시킨 게 누군데?” 동현은 다그쳤다. 속이 답답했다.

하지만 다혜는 입술을 꽉 다물었다. 더는 말을 잇지 않았다. 긴장감이 한동안 가게 안을 눌렀다. 밖에서 지나가는 차 소리가 창문을 흔들며 울렸다.

동현은 숨을 길게 내쉬었다. “너, 지금 내가 장난으로 이러는 거 같이 보여? 지금 여러 사람의 일상을 흔들고 있는 거야, 꼬맹아. 이게 범죄로 분류될 수도 있는 거라고!”

다혜는 눈망울을 굴리다가, 결국 고개를 숙였다가 점점 격앙되었다. “죄송해요. 작가님. 그냥… 저는 『여울의 문』을 너무 사랑해서… 그게, 스스로 감당이 안 됐어요. 그래서 여기까지 온 거예요. 그리고 작품을 사랑한 게 무슨 범죄예요? 저같이 적극적인 팬 경험해 보셨어요? 겨우 이제 등단한 초보 웹툰작가면서 이렇게 독자를 넘어 팬인 사람에게 막 대해도 되는 거냐고요!”

그리고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말 죄송해요. 다음에, 다음에 얘기할게요!”

동현이 손을 뻗기도 전에, 다혜는 문을 밀치고 달아나버렸다. 문 위에 걸린 풍경종이 달그락거리며 뒤늦게 울렸다.

“야!” 동현이 불러봤지만, 벌써 골목길은 고요했다.

그는 어깨를 푹 늘어뜨리며 다시 의자에 앉았다. 봉지째 사 온 과자만 눈앞에 있었다.

‘누가 알려줬다는 거지? 왜 굳이 날 조준한 거야? 꼬맹이가 말하는 진짜 심부름은 뭘까?’

불편한 의문만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KakaoTalk_20250907_235542012.png



며칠 뒤, 작업실.

동현과 전청은 모니터 앞에서 허겁지겁 원고를 정리하다가 들이닥친 수인과 혜윤에게 꼼짝없이 붙잡혔다.

“야, 너희 미쳤어?” 수인의 목소리가 작업실 벽을 울렸다.
“웹툰에 진짜 우리 이름을 쓴다고? 요즘 같은 세상에? 그 여학생 아니었음 계속 모를 뻔했네?”

"야, 지금껏 가만히 있다가 이제 와서 이러기야?"

동현이 억울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니까 실명은 사용하지 말자고 했잖아."

전청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솔직히 말해 너희들 이야기 존재감 없어. 정작 너희 당사자들도 관심 없었잖아?"

혜윤이 얼굴이 빨개져서 소리를 높였다.
“존재감 있건 없건, 남의 입에 오르내리는 거 자체가 싫다고! 우리 인생을 네가 마음대로 파헤치고 해석하고 그려내는 게 장난 같아?”

전청은 진땀을 흘리며 손사래를 쳤다.
“야야, 오해하지 마. 동명이인 많잖아? 꼭 너희들 얘기라는 보장 없잖아.”

“휴, 변명은 그만해 주었으면 좋겠어.” 혜윤이 쏘아붙였다.

동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두 손을 모았다.
“혜윤아, 수인아. 제발 좀 봐줘라. 회차도 꽤 올라갔고, 구독자들도 붙기 시작했어. 지금 당장 내리면 다 끝장난다. 진짜, 이번만 이해해 주면 안 되냐?”

“이번만?”

수인이 천천히 다가와 두 사람 앞에 섰다. 그의 그림자가 동현과 전청을 덮었다. 키 차이가 분명하게 드러났다. 수인의 눈빛은 매서웠다.

“우리 사이에 금 가기 전에, 약속해라. 다시는 이런 식으로 우리를 끌어들이지 않겠다고. 안 그러면… 진짜 가만 안 있을 거다.”

동현과 전청은 순간 움찔했다. 그 눈빛 속에는 장난도, 농담도 없었다. 두 사람은 마지못해 서로 눈치를 보다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 알았어.”

동현은 웹툰 때문에 다혜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전청에게만 털어놓았다. 전청도 팔짝 뛰며 머리를 쥐어뜯었다.



여울의문14화2.png



동현의 작업실을 나온 두 사람은 혜윤의 집을 향해 걸었다. 여울의 집을 지나야 했다. 창문으로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웹툰에 얽힌 이런저런 사건들로 마음이 편치 않은 그들이었으나 김여사가 잠을 안 자고 뭘 하고 있을까 갑자기 걱정이 몰려왔다. 모자를 쓴 남자 실루엣이 언 듯 창가에 스치더니 불이 꺼졌다. 여울의 대문 쪽으로 천천히 걸어가던 두 사람은 발걸음을 서둘러 현관문까지 비밀번호를 누르고 통과했다. 거실 안 커튼에 반사된 가로등 불빛에 의지하여 안방문을 슬그머니 그러나 재빨리 열었다. 그러면서도 다른 공간 구서구석을 놓치지 않으려고 시선을 확장하는 수인이었다.

"김여사 님만 주무시고 계셔."

혜윤의 속삭임에 수인은 여울의 방문을 열어젖혔다. 이 집 안에는 김여사 외에는 아무도 없는 것이 분명했다.

두 사람은 의혹의 눈빛을 나눴다.

"분명히 사람이 있었고 나간 흔적을 못 봤는데."

"그러니까. 나 조금 무서우려고 그런다."

혜윤이 자신도 모르게 수인의 팔을 붙잡았다. 수인의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괜찮아. 김여사 님이 잘 주무시고 계시니까 우선 문단속 잘하고 나가자."

수인은 나대는 심장소리가 혜윤에게 들릴까 봐 걱정하면서도 자신의 팔에 감겨온 혜윤의 손을 팔로 꼭 끌어당겼다.



keyword
화, 목, 일 연재
이전 13화여울의 문 - 13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