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마나한 이야기

무슨 말을 해줬어야 할까

by 고요한마음

인생은 항상 선택의 연속이다. 내가 이어가고 있는 인간관계에서부터 직업, 취미, 집, 자동차, 심지어 삶까지도 고냐 스톱이냐 계속 고민한다.

고와 스톱 중 어떤 것이 나에게 더 좋은 건지는 알기 어렵다. 누가 내 인생을 책임져 주지도 않고 한 마디씩 던지는 위로의 말도 말 그대로 단지 위로뿐인 경우도 많기 때문에. 그것도 그냥 '그렇구나'하고 흘려보내야 정신건강에 도움이 된다.


책임은 오롯이 나의 몫이다. 삶도 모든 관계도 내 욕심으로 인한 부정적 결과도 모두가 내가 짊어지고 가야 할 인생의 숙제 같은 것이다. 자꾸 남탓해봐야 결론도 안 나오고 내가 가진 문제도 분명히 있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시야를 가려버린다.




블로그에 글을 쓰고 있는 내게 남편이 물어온다. 무엇을 하고 있냐고. 그래서 최근 유퀴즈에서 봤던 '선우용녀'편 이야기를 들려줬다. 특히 인생을 봄여름가을겨울에 비유하면서 겨울이 오고 난 뒤에는 봄도 반드시 온다라는 표현이 너무 감명 깊었다고 이야기했더니 자신은 힘들 때 남들이 하는 위로 중에 '하나마나'한 이야기가 정말 싫다고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다 지나간다, 그래도 감사하게 생각해라, 너만 힘든 게 아니다'씩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귀에 들어 오지도 않고 오히려 기분이 나빠진다고.


차라리 힘든 사람의 입장에 몰입해서' 네가 정말 힘들겠구나. 그런데도 너는 이만큼 하고 있으니 참 대단하다'라고는 해줘야 그게 진정한 위로라고.


그렇면서 남편은 회사에서 근무하면서 제일 싫어하는 직장상사 이야기로 이어갔다. 싫어하는 수준을 넘어 극혐 하는 정도이다. 남편 기준 하나마나한 말을 많이 하시나보더라. 남편에게 그분은 이제 더 이상의 승진도 필요 없고 아이도 어느 정도 다 키웠으니 남편처럼 앞을 보고 달릴 필요가 없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래서 자꾸 자신이 하는 일에 도움보다는 오히려 장애요소가 되는 경우가 많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차상급자에게 남편이 노력해서 작성한 보고서를 설명하기 위해 들어갔을 때도 그 과장님이 보고를 이상하게, 즉 남편이 노력한 정성이 전혀 티가 안 나게, 하니 화딱지가 나서 죽겠단다. 자신이 중간에 끼어들자니 그것도 분위기가 이상해져 중간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고. 차라리 도움도 안 되는 그 과장님 없이 본인이 일처리 하고 보고하면 훨씬 낫겠다고. 그래서 같이 맞장구를 쳐주며 그 상급자 욕도 같이 해주고 동시에 너무 분해하는 남편에게 여보가 남의 평가에 너무 예민해져서 그런 건 아닐까라는 말도 해보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냥 같이 욕만 해줬어야 했던 걸까 싶다.


그 상급자 이야기로 기분이 나빠질 대로 나빠진 남편이 본인은 혼자 하는 직업을 선택했어야 한다고 하길래 어렸을 때부터 수학을 잘한 남편이어서 '맞아 세무사 같은 거 하면 좋은데'라고 답변했다. 그랬더니 모든 걸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서 다시 갈아 넣어야 하는데 그걸 어떻게 하냐는 것이다. 그런 하나마나한 이야기 하지 말라며 본인이 극혐 하는 그 분과 나를 비교하더니 '그 과장 같은 것'이라고 그야말로 발끈, 급발진하는 것이다.


사실 이날 낮에 방 한구석에 내가 공부하다만 공인중개사 책을 보며 남편이 우스갯소리로 '내가 저걸로 공인중개사 공부할까?' 했었기에 그 생각이 나서 그냥 별 의미 없이 한 말이었다. 맞다 어쩌면 '하나마나한 이야기', 별 도움도 안 되는.... 남편이 싫어하는 말.


이때 나도 같이 화가 났다. 내가? 갑기자? 그 사람이랑 같은 사람이라고? 내가 왜 이 순간에 이런 말을 듣고 있어야 하나 싶은 것이다. 나도 10년간 직장 생활하다 아이들 육아에 치여서 일 그만두고 내 역할에 몰두하며 아등바등 살아가고 있는 사람인데, 그런 표현을 들을 정도로 내 말이 잘못되었다고 생각도 안되는데. 굉장히 모욕적으로 들렸다.


나는 남편의 하소연을 들으며 그 부정적 감정을 나한테 다쏟 아부를 때도 '그래 내가 들어주지 누가 들어주냐'심정으로 듣고 있었는데, 그런 나에게, 내가 그 말 한마디 했다고, 눈에 불을 켜며 나를 노려보는 것이다.


아니, 나는 조용히 블로그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나에게 말을 걸어서 혼자 흥분하고 혼자 급발진하더니 나에게 그 불똥이 튀냐는 말이다. 평소였으면 나도 그냥 말 안 하고 꾹 참고 넘어갔을 텐데, 도저히 이런 식으로 나를 깎아내리는 추태를 가만히 두고 보기 힘들었다.

'왜 너는 맨날 너만 힘들다고 생각하냐. 나는 그럼 네가 하는 말에 하하 호호 웃고만 있어야 하냐. 너는 맨날 나한테 과장 욕하면서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말 한마디도 못하냐. 전체 대화의 흐름은 생각하지 않고 내가 그 한마디 했다고 지금 그렇게 표현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냐' 대충 이렇게 이야기한 것 같다.


그리고 끝으로 '잘났다 잘났어 아주'라고 날리면서 차에서 내려버렸다. 하루 종일 평화모드였는데, 순식간에 전쟁모드로 바뀌었다.


그다음이 더 가관이다. 남편이 첫째 학원 하원시키면서 차 안에서 첫째한테 '엄마랑 아빠 헤어지면 어떻게 할 거야'라고 물어봤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불안해진 첫째는 집에 오자마자 나한테 '엄마, 아빠 사랑해?'물어본다. 참나.


그렇게 싸우고 짐 바리바리 싸들고 시댁에 왔다. 친정 아니고 시댁 가족여행 간다고. 남편 할머니부터 어머님, 애들 고모와 고모부 그리고 남편 삼촌과 그 자녀들까지. 대가족여행.


앞으로 1박 2일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걱정이다.


나는 저 순간에 무슨 말을 해줬어야 했던 걸까. 조금만 더 고민하고 현명하게 그리고 침착하게 대처했다면 상황이 조금은 달라졌을까. 그래도! 그런 말은 너무 하지 않나?


어느 순간부터 남편과 언쟁을 하다 보면 가슴에 비수 꽂는 말들로 인해 상처를 받는다. 그 상처는 또 쉽게 아물지도 않더라. 그래서 언쟁을 최대한 피하고 싶었는데. 남편이 눈에 쌍심지 키고 말에 칼을 장착하고 날리면 방어할 새도 없이 쿡하고 아프게 가슴을 찌른다. 그때부터 가슴이 쿵쾅쿵쾅 뛰기 시작하면 그 후유증이 며칠, 길게는 몇 주씩 간다. 상처는 흉터를 남긴다.


앞으로 절대 '하나마나한' 이야기는 하지 말아야겠다.

절대 입 꾹.


결혼은 현실이고 두뇌싸움인걸까.

현타가 몰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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