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잘 할 수 있을까?(feat. 일본어)
녹슬어가는 뇌가 주름을 감추며 매끈해져 가고 있다는 것을 느낀지는 꽤 되었다.
저질스러운 독서량에, 숏폼 중독까지 더해져 이젠 거의 단기 기억상실증이라고 할 만큼 하루하루가 새롭게만 느껴진다.
나날이 단어가 내 속에서 빠져나가는 것이 체감이 될 정도로 적당한 단어조차 찾지 못해 말은 물론이거니와 생각마저 끊길 때가 종종 있다.
어릴 때 제발 공부 좀 하라고 귀에 피가 나도록 잔소리를 들었어도 피만 쓰윽- 닦아내고 꿀잠을 청하던 나였는데, 누가 때리지도 않고 시키지도 않았는데 공부를 하겠다고 생각을 하다니, 내 스스로도 먼가 비키니를 입은 듯 되게 어색하다.
일본어를 해야겠다는 특별한 동기가 있는 건 아니었다. 단지 이러다가는 시냅스가 다 끊어져 텅 비어버린 뇌 속의 우주에 갇혀버릴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주름이 없는 매끈한 뇌에 미끄러져 영원히 블랙홀에 빠져버리는 상상을 하다 보니 공포가 밀려들면서 새로운 무언가를 머릿속에 강제로라도 욱여넣어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처음에는 수학을 한번 시작해 볼까? 하는 어처구니없는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한번은 시도를 해본다는 것으로 가장 만만하다는 편견을 가진 언어를 습득해 보는 것이 좋겠다 싶어 그중에 가장 대중적인 언어를 고른 것뿐이다.
‘히라가나’가 뭔지도 오늘에서야 처음 알게 된 이 친근하면서도 전혀 못 알아먹겠는 요물 덩어리를 과연 습득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다만 내가 최근 들어 불신하게 된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모든 것(특히 공부)은 재능의 영역이라는 DNA(유전자) 결정론이고, 또 하나는 어릴 때 시작해야 한다는 과거 완료형 체념론이다.
이 두 가지는 뭔가 되게 사악하고 위험해 보인다.
우생학과 계급주의의 유령이 고춧가루 통을 들고 세상을 떠돌면서 여기저기 양념을 쳐대고 있는 것 같다.
난 이것이 과학을 빙자한 정치적 견해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는데, 더 할 말은 있지만 증빙 자료를 정리할 여력이 내겐 딱히 없으므로 잠자코 있도록 하겠다.
다만 그 두 가지 요소의 모든 부정적, 낙오적 조건을 객관적으로 명확해 보일 정도로 갖추고 있는 내가, 거기에 타고난 의지박약과 나름 남에게 뒤지지 않는 게으름이 추가된 극적으로 희박한 가능성을 가지고 일본어 공부에 의미 있는 결과를 가져온다면, 이후에 어디 가서 나름대로 내 의견에 진정성을 더 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래서 내가 2026년에 새운 이 일본어 공부 계획은 단지 언어 공부를 넘어선 시대정신에 반기를 드는 혁명적인 시도라고 볼 수 있겠다.
그런데, ‘히라가나’를 외우면서 자꾸 ‘에(え)’와 ‘라(ら)’를 계속 ‘츠’와 ‘오’로 읽다가 빡쳐서 잠시 화를 식히고자 블로그에 글을 쓰고 있다.
흠…
내가 과연 해 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