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Feb 2025
나는 새해 계획을 세우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인생이란 원래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데, 하루도 한 달도 아닌 일 년의 계획과 다짐을 연초에 세우는 건 너무 무책임하다 생각하기 때문이다. (비슷한 이유로 여행 계획도 최대한 대충 세우는 것을 지향한다. 여행지에서의 변수와 내 몸 상태나 기분 상태의 변수를 미리 고려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제, 오늘은 2025년 해야 하는 일의 목차를 개괄적으로 나열해 두었다. 해야 하는 일이 많은데, 그 일들을 한눈에 볼 수 없으니 자꾸 머릿속에 '해야 하는데'라는 느낌으로 남는 게 싫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특정 일은 내용의 개요나 날짜를 놓치면 안 되는데, 그것들을 산발적으로 기록하는 게 비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또한 현재 즐기고 있는 취미로서의 운동이 바빠진 후 다시 내 생활에서 아예 빠져버리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많은 시간을 투자하지 못하더라도 끊기지 않게 이어나가려면 일처럼 '해야 하는 일 목록'에 넣어두고 기계적으로 해나가야 된다 생각했다. 이것도 넣고 저것도 넣고 하다 보니, 일과 관련된 네다섯 가지로 목록을 완성하겠다는 처음의 다짐은 무참히 무너지고, 여행, 정리 정돈하기까지 포함한 방대한 목록이 완성되어 버렸다. 이렇게 목록이 늘어난 걸 보니 다시 겁이 난다. 나 또 초반에만 이렇게 힘주다 무너지면 어떡하지?
어찌 되었든 목차를 보니 마음이 편안하다. 계획 세우고 정리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조금이라도 무너지고 지켜지지 않는 게 싫어서 또 그걸 회피하는 나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인정하기 싫지만 '나 완벽주의자가 맞는구나...' 싶다. (내가 완벽주의자인 것을 인정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실제로 내가 완벽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완벽하지 않고 칠칠맞은 완벽주의자는 내 기준에 없거든.)
해야 하는 일을 기계적으로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런데 내 마음속의 뭔가가 해결되지 않은 건지 해야 하는 일을 앞두고 마음이 붕 뜨고 동할 때면, 무엇을 해결해야 하는지 몰라 헤매게 되고 어느새 수많은 생각으로 시간을 허비하게 된다. 이 글을 쓰며 돌이켜 보니, 집중하려는 노력 자체가 부족했음을 인정하게 된다.
과거에 대한 패배감, 시간을 허비했다는 느낌은 최근 내가 떠올리려 하지 않았던 주제이다. 주변 상황과 정서가 안정되면서 자연스럽게 그리 된 것인지, 내 전두엽피질이 열심히 억압한 건지는 모르겠다. (억압하는 방어기제는 고차원의 것이 아니라서 전두엽피질이 아닌 변연계가 작동하려나. 궁금한데 찾아보기가 귀찮다. 찾아봐서 알 수 있는 사항인지 애초에 이런 말이 유효한 건지도 모르겠고. https://brunch.co.kr/@symriro/10. 변연계가 억압하고 일부 사항은 전두엽이 억제한 게 맞겠다.) 요 며칠 사이 그런 생각들이 다시 종종 떠오른다. 아침 운동을 간다고 일찍 일어났더니, 한참 새벽잠 줄이던 시절이 생각이 나버려서 괜히 억울해졌다. 그 시간들 동안 무언가를 목표하며 나름 최선을 다했던 것 같은데, 나의 웰빙은 고려할 수 있는 사항에 넣지도 않고 뭔가를 향해 달렸던 것 같은데 그 무언가가 그리고 쏟아부었던 나의 것들이 어떤 형체도 만들어내지 못하고 사라진 것 같아서. 목표로 삼을만한 것이 아닌 걸 겨누며 정확하지 못한 방법으로 기를 쓰고 의미 없는 노오력만 한 것 같아서. 그래서 마음이 아리고 두렵다.
몇몇 사람들의 이야기는 이렇게 흘러간다. '과거에 최선을 다했지만 잘 되지 않았던 경험이 있었어요. 지나고 보니 그 경험에서 더 중요한 걸 발견할 수 있었어요. 이후 이렇게 저렇게 해서 저는 이리 잘 되었답니다!'
꼭 나중에 잘 되기 위해서 나쁜 기분을 느껴야 하는 건 아니다. 과거에 실패하고 그 실패를 발돋움 삼지 못해 또 실패해도 사실은 괜찮다. 옛 생각에 의미 없는 자기 연민을 갖고 싶지도 않다. 무의식 중에 저런 감정을 퍼올리는 내 변연계와 자기 연민을 극단적으로 혐오하며 행동할 것을 요구하는 내 전전두엽 피질은 오늘도 힘겨운 사투를 벌이는 듯하다. 뇌의 두 부분이 참 극단적이라 (변연계는 상당한 F이고 전전두엽 피질은 상당한 T랄까) 내 머릿속이 항상 복잡한가 보다 결론을 내려본다.
여전히 나의 이런 성정이 참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바꿀 수 없는 것에 대해 괴로워하지도 애쓰지도 않기로 하였으니,
눈앞에 보이는 대로만 생각하고 행동하기로 하였으니,
정리되지 않은 채로 두려워하기보다는 언어화, 시각화해서 각을 잡아두고 싶다.
너무 힘들지 않은 2025년이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