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소리 담아내다

재첩국 사이소

by totalmusicq

#재첩국사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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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제부터 멜로디를 듣고 바로 즉흥 연주가

가능했을까?

재첩국이 풍족하게 나오던 시절

이른 새벽시간에 "재첩국 사이소-와"

'재첩통'을 머리에 이고 아침을 깨우는

소리에 눈을 떴었다.

나는 재첩국을 참 좋아한다.

우리 엄니가 '섬진강처녀'이고, 아버지의

'위와 간'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매일 아침 해장처럼 재첩국에

부추를 넣고 끓이는 날이 오죽 많았을까

80년대 시절에는 '쓰레기 종량제'를 실시하기 전으로

청소차가 고장마을 '찬가'를 크게

틀어넣고는 멀리서도 주민들이

들을 수 있게끔 해서

쓰레기를 수거했었다.



그 당시에는 분리수거라기보다 '믹스커피'처럼

짬뽕인 체로 버릴 수 있었다.

쓰레기가

발생하면 머리에 이는 사람들 줄을 지었다.

혼자서 버리기가 힘이 들면, 가족들을 대동

함께 버렸다.

꼬마들이 졸린 눈을 비비고 어떻게 해서든지

이 순간이 지나가기를 바라는 표정으로 서있기도

했었다.

쓰레기를 싣고 가는 차를 늦잠으로 놓치는 날에는

집에 쓰레기가 차기 마련이었다.

우리 집도 예외는 아니었다.

버티고 버티다가 도저히 쓰레기차보다

조기에 일어나기가 쉽지 않은 것을 눈치챈 아버지께서

결국, 돈을 주고 구청과 사설업체 제휴한 곳에서

대가지불하게 되었다.

잔업이 많았던 팔십 년대 시절에는 집안일과 직장생활 병행이 정말 쉽지 않아 보였다.

이른 새벽에 쓰레기 버릴 일이 없어져서

아침잠을 편히 잤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오전 여섯 시 반쯤에는 "재첩국 사이소~와!"

구수하게 음성이 울린다.

나는 리코더로 즉흥 재첩국 장사하는 아주머니 목소리를 음계상 코드로 전환시키게 되었다.

"솔도도 도레도~라"


나는 매일아침 눈을 뜨면 '뽀뽀뽀' 방송을

보고 자랐다.

그래서 거기서 배운 노래와 율동으로

명절에 시골 올라가면 어른들 앞에서

재롱잔치를 벌였다.

물론 고학년이 되었을 때는 수줍음이

많아져서 멈추었지만!

아날로그 시절에는 노래를 참 많이 불렀다.

특히나 여자들만이 할 수 있는 '고무줄놀이'는

이단 뛰기와 삼단뛰기를 하면서 즐거운 생활을

하였다.

가장 기억에 남는 노래는 이순신 장군 노래와

솜사탕, 철강산등이 있다.

공부를 많이 한 기억보다는 친구들과

아날로그 추억을 진심 많이 두 쌓았다.


나는 육식을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육식을 하는 사람을 혐오하지

개인 고유의 음식을 대하는 태도를 존중을

하는 편이다.

"육식을 안 하면 무슨 맛으로 밥을 먹니?"

라는 사람들도 만난다.

그러면 이해하기 쉽도록 가르쳐 준다.

"알코올 분해가 안 되는 사람들처럼 저도 육식체질이

아니더군요."

왜냐하면,

나는 시골에 올라가면 소와, 닭, 개, 고양이등을

벗 삼아 놀았기 때문이다.

소에게 직접 여물을 먹이고 밤에는 소의 곁에서

볼 일을 보기도 하였다.

시골에 '변소'는 너무 무서웠기 때문에

"빨간 종이를 줄까? 하얀 종이를 줄까?" 하는

무시무시한 공간이었다.

나는 송아지의 큰 눈을 들여다보니까

내가 이렇게 착한 소를 잡아먹는다는 게

용납이 되질 않았다.

게다가 그 큰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는 것을 봤다.

나란 존재는

모든 생명체들에게 역지사지를

적용을 시켰던 이였다.

도살장으로 팔려가는 소는 죽기 싫어 발버둥을 치는 것을 보게 되면서부터 동물성 섭취는 콩으로 대신하였다.

중학교 삼 학년 때부터 계란과 통닭 모든 육식을 끊어 버렸다.

시골 들녘을 가로지르면

멀리서 들려오는 정다운 소리

엄마 엄마 엄마 엄마

할머니의 구수한 된장찌개

냄샐 맡아서일까

어느새 우리들 마음 구수해져요

꼬부랑꼬부랑 고갯길

꼬리 치며 따라오던 착한 소가

엄마 엄마 엄마 엄마

풀냄새가 향긋해서일까

잠자던 갓난아기의 미소 속에서

어느새 우리들 마음도 포근해져요

덕분에 소 동시는 동요곡으로 만들어졌다.

나는 현재 네 보물들의 엄마로 살고 있다.

우리 네 보물 들은 아이들의 아버지를 닮아서 다들 육식파들이다.

나만 해물파와 채식파, 탄수화물파이다.

간간히 때때로 군것질도 해대는

전형적인 어린아이를 둔 엄마이다.

나는 아버지의 뽕짝과 어머니의 세미트롯을

태교로 삼고 태어났다.

주말 오전부터 전축에서 음악이

흘러나왔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러면 그럴수록

우아한 음악 삼매경에 점점 빠져 들었다.

'하늘이 무너져 버리고 땅이 꺼져버린다 해도

그대만 사랑한다면 두려울 것 없으리'

이런 장르의 노래를 듣고 일편단심형이

되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피아노를 '유학파출신'처럼 잘 친다기보다는

원리를 아니깐 다장조로는

어떤 곡이든지 연주가 능해졌다.

물론, 컨디션이 좋은 날에는

의외로 파도솔레라미시 다붙은

조표가 많은 것도 칠 수 있다.

박자는 정박자대로 클래식의 어려운 곡을

소화시키기는 만만찮았지만......."".

다만 '소리욕심'이 지나쳐서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작곡가님들의 곡을

치고 싶지만 정석으론 치기는

한계가 왔고 무리가 랐다.

피아노를 치면 칠수록 하마처럼

시간을 쏙 빨아먹었다.

듣기에 불편하지 않을 정도로 애드리브를 치면서

부족한 부분을 소프트하게 메꾸어 나갔다.

이는 마치 마술로 홀리듯이

반주보다 멜로디에 강점을 둔다.


나는 나의 부족분을 프로페셔널적인

연주가들 공연하는 모습 속에서

공부차 배워 나갔다.

대학교에서 배운 것보다 훨씬 더 배울 점이

많았다.

최근에는 마에스트로 선생님의 지휘봉을

유심히 지켜본다.

어떻게 단원들을 리더 하는지

지휘자님의 스타일 따라서

곡이 살기도 죽기도 했었다.

한 가지 꿀팁을 주자면, 도레미파솔라시

계이름을 알고 악기를 다루는 운지법만 알면

나머지는 자기 자신과 와의 싸움만이

바람결에 나부끼는

머리카락처럼 기다리고 있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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