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노래를 일본어로 번안곡 부르다
#한국노래를 일본어로 번안곡 부르다

이천이 연도에 나는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먼 나라이웃나라'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일본어는 어순이 한국어(우리말)와 같아서
배우기는 쉬웠다.
그렇지만, 어떤 학문이든지 막론하고
깊이 파고들수록 '두 손 두 발 다 들게 '되는
경험을 맞이하는 순간이 예기치 않게
찾아올 때가 있었다.
나 같은 경우에는 중국어 한자 외우는 것도
어려운데 일본어 한자식이 따로 있는 것(두 가지 다 알아야 했음)에
그만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굳이 일본어를 배우려고 했던 이유는
'우리나라 노래를 전파'하고 싶은 일념에서
비롯되었다.
아니다! 더 정확하게 말해서 한국노래는 일본어로
일본노래는 한국어로
마치 외교관이 된 것처럼 문화로 향유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었다고 보아야 맞을 것이다.
나는 동요, 민요, 가요, 가스펠송등을
일본어로 번안해서 직접 부르고 다녔다.
또 '일본동요곡 시디'를 일본어 센세이한테
선물 받기도 하였다.
" 일본 나리타 공항에 내리면 많은 토모타치들이
생겨나게 될 거야!"
혼자 행복한 상상 하면서 최소금액으로
일본어 번안곡 음반발매를 냈었다.
그래서 친구들을 만나면
기념으로 나누어 주었다.
그 아름다운 도전이
절대 까먹지 않도록 만들었다.
장녀와 같이 '2030 엑스포 부산 유치행사'로
참여하기 위해 목적지를 가던 중에
한국인인 줄 알고 길을 물어보았는데
아차!"촛토 맛테 쿠다사이!"
용두산 공원 근처 호텔 프런트로 쪼르르
약도 들고 달려가더니 내가 괜찮다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친절하게
끝까지 위치를 일어로 가르쳐 주었다.
나는 딸 앞에 그간의 실력발휘차
또한 길을 가르쳐준 고마움의 보답으로
" 와타시와 이마 니 홍고 오 뱅쿄츄데스
오쿠니와 도치라데스카"
자신의 고향은 어디라고 알려 주었는데
내가 일본 지명을 다 못 외운 관계로
"소-데스네!" 연신 고개만 끄덕이다가
나는 잽싸게
분위기 전환해서
일본의 엔에이치케이 방송 프로그램 중에서 '오카아상토 잇쇼니!'를 보고
"일본어 동요곡을 배웠어요!"
라고 말하면서
죠-상 죠-상 오하나가 나가이 노네
소-요 카아상모 나가이 노요
다루마상 다루마상 니라네 코시 마쇼
와라우토 다메요 앗쁘브
이렇게 즉흥적으로 불러 주었다.
그랬더니 뜨거운 반응과 함께
눈이 똘똘해지면서 나를 지그시 쳐다보았다.
나는 마지막 하이라이트조로
일본 국민가요 '하나'노래의 후렴구를
불러 주었다.
나키나사이 와라이 나사이
이츠이츠마데모 이츠이츠 마데모
하나와 사카 소-요
쿠리카에시하니까 그녀와 함께
노래 부르면서 사요나라 했었다.
이를 지켜본 딸(장녀)이
"엄마가 즉흥적으로 외국인과 이야기하는 모습 처음 봐요!"
" 엄마의 그런 모습 어땠니?"
"깜짝 놀라웠어요! 엄마가 그렇게
용감하게 잘 소통하실 줄 몰랐어요!"
나는 그녀 덕분에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을 했었다.
그해에는 '독립영화' '겨울왕국 리메이크작'에
주인공의 엄마역할로 출연하기도 했었다.
'2030 박람회 엑스포'가 부산에 유치
되었더라면 지금쯤 어떠했을까?
많은 아쉬움 속에서 추억으로
잘 소장해 두었다.
나는 실생활 속에서 '음악가'로 살아간다.
음악 덕분에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었고,
특히 음악을 통해서 정서적인 함양을
고루 갖추어 나갈 수 있었다.
외국인을 어디에서 만나든지
'두려움 없이' 피하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때 배운 실력으로
현장에서 간단하게 써먹는데
그들 나라의 노래를 불러주면
그렇게 행복한 표정을 짓는 모습을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외국인이 한국민요를 부르는 느낌이랄까!
덩달아 나도 신이 났고, 누가 먼저라 할 것두 없이
한마음으로 노래를 부를 때는
'이루어 말할 수 없는 감격'을
안겨 주었다는!......."".
자신이 실제로 생활 속에서
즐기다 보면 그 분야에서 만큼은
일등이 될수 있다고 믿는다.
이렇듯,
나는 미국인이든, 일본인이든 언제든지
'민간외교'로 '문화예술'을 보다 폭넓게
나누면서 앞으로도 꾸준하게 살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