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도 성장 중입니다.
엄마가 되기 전에는 남이 차려주든, 내가 차려먹든 따뜻한 밥 먹는 게 당연했다. 그런데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는 따뜻한 밥 먹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아이 밥도 챙겨야 하고, 어르고 달래 밥을 먹이고 나면, 아이는 놀자고 성화니 앉아서 식든 말든 그냥 밥이라도 먹는게 어렵게만 느껴졌다. 아이가 지금 보다 더 어렸을 땐, 평일에 혼자 대충 먹는 밥이 너무 싫어서, 남편 퇴근하기만을 기다렸다가 늦게라도 같이 야식 먹는 재미로 시간을 보냈다. 거기에 곁들인 맥주 한잔까지 홀짝홀짝 마시다 보니 뱃살이 두툼해졌더랬다.
남편과 나 아이 이렇게 셋이 밥을 먹으면, 내가 아이 밥을 먹일 동안, 남편이 먼저 식사를 마치고 나와 교대를 해 주었는데 어느 날부턴가 아이가 무조건 엄마랑 밥을 먹겠다고 해서, 아이 밥을 다 먹이고 나면 차려놓은 음식들은 냉랭하게 다 식은 상태가 된다.
하루는 아이가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식탁에서 내려갔는데 옆에 서서 "엄마 밥 그만 먹어 놀아!" 하는 것이다. 이제 막 한술 뜨려던 참이었는데..."엄마 밥 먹을 거야. 아빠랑 놀아" 했더니 싫다고 난리가 났다. 이미 식은 밥 그냥 한번 달래주고 밥을 먹었어도 됐는데, 그날따라 밥을 잘 먹지 않는 아이에게 화가 난 건지, 아니면 다른 사람이 밥을 때는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한다는 걸 아이에게 가르치고 싶었는지 모르겠지만 아이의 말을 들어주고 싶지가 않았다.
"엄마 밥 먹을 거야. 기다려. 너 밥 안 먹는 건 상관없지만 엄마까지 밥 못 먹게 하지 마. 거실에 가서 혼자 놀아."
하고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아이에게 말을 했다. 아이는 그 말을 알아들은 건지 어쩐 건지 모르겠지만, 자기 말을 내가 들어주지 않았으므로 더 짜증이 나서는 울고 한바탕 난리가 났더랬다. 아이가 울건 말건 고집스럽게 꾸역꾸역 입으로 밥을 밀어 넣었다. 나 스스로가 참 유치하게 느껴지면서도, 이렇게 내 맘대로 밥 한술 못 뜨는 상황이 치사스럽기도 했다. 언젠가 아이가 스스로 밥을 잘 먹게 되면, 자연스럽게 좋아지겠지만, 그게 지금 당장의 내 마음을 달래주기엔 쉽지 않은 일이었다.
따뜻한 밥이 주는 괜한 위로가 있다. 지친 하루 끝에, 별다른 반찬이 없어도 따뜻한 밥 한 공기면 그날의 얼어붙은 마음이 녹고, 좋은 사람과 마주 앉아 이야기하며 먹는 밥 한 끼는 어깨에 내려앉은 삶의 무게를 덜어준다. 그런 밥 한 끼를 못 먹은 지가 꽤 된 것 같다. 누구보다 나를 잘 대접해야지 하면서도, 마음처럼 쉽지 않기도 하다.
가끔은 오롯이 나를 위한 따뜻한 밥 먹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