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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퍼플호랭이 Jan 28. 2022

할머니와 양념통닭

그리운 나의 할머니에게 보내는 편지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무더운 어느 해 여름

혼자 사셨던 할머니를 오랜만에 뵈러 갔다.

에어컨도 없이

서너 평 될법한 단칸방에서

털털털 힘없이 돌아가는 선풍기에 의지해

누워계신 할머니를 만났다.

입맛이 없어

며칠째 식사도 제대로 못하셨다고 했다.

그러던 할머니가 갑자기

"영아 할매 묵고싶은거 있는데..."

나는 그 말에 눈이 번쩍 뜨인다.

뭐든 아낌없이 사드릴 테니 말만 하시라고 했더니


"그 양념통닭인가 카는거 묵고 싶은데, 내가 그거 시켜 먹을 줄을 알아야제 어데 파는지도 모리고"


평생 시골에서 농사만 지으시다

노년엔 손자들 키우느라 도시에 나와 사셨어도

그때 어쩌다 드셔 보셨을 그 양념통닭이

기억에 남으셨나 보다.

드시고 싶어도 시킬 줄을 몰라 못 드셨다니

속이 상했다.


"(같은 동네 사시는) 고모한테 전화해서 시켜달라 하면 되잖아. 자식이 그렇게나 많으면 뭐해 이 더운 여름에 식사도 못하고 누워 계시면서!!"


나도 모르게 뾰족한 말이 튀어나왔다.


"느그 고모도 바쁘다 아이가. 니 왔으니까 묵으면 되지 할매 돈 있다 할매가 사줄게 묵자 어이?"


그도 그럴 것이 혼자서 그걸 시켜서 드셔 본들 무슨 맛이 있었을까.

자식들, 손자들이 그렇게 많아도

살기바쁘다는 이유로

기껏해야 일 년에 서너 번이나 뵐까

그 외엔 할머니는 언제가 올 자식들을 기다리며

혼자 시간을 보내셨다.


그 길로 그 동네에서 제일 유명하다는

집에 전화해 주문을 했다.

윤기가 반들반들한

고소한 치킨 냄새가 코를 찔렀다.


할머니는 평소에

고기랑 생선은 즐기지 않으시고

나물반찬을 제일 좋아하시긴 했지만,

항상 식사량도 적으시고 자주 입맛이 없어하셨다.

그래서 나는 할머니는

원래 조금만 드시는 분인 줄 알았는데

어떤 음식을

그렇게 맛있게 많이 드시는걸 난생처음 봤다.


"내가 젊을 적에 배가 얼마나 큰지 먹어도 먹어도 배가 부른걸 잘 몰랐데이. 그래도 그때는 뭐 묵을게 있나 맨날 배곯는 게 일상이고 그나마 밥이라도 쪼매 더 묵으면 밥 많이 묵는다고 구박 듣고 그랬데이

오늘 이게 자꾸 드간다 맛난다. 고맙데이 영아"


좋아하시는 할머니를 보니 좋으면서도

한켠엔 저릿함이 올라왔다.

가난한 젊은 시절 먹을 건 없고 일은 해야 하고

그 삶이 얼마나 고단하고 배가 고프셨을까

나이가 드셔서는 손주들 입에 오물오물

들어가는 거 보느라

뭐든 맘껏 못 드신 건 아닐까


우리는 남김없이 양념치킨 한 마리를

바닥이 보일때 까지 남김없이 싹싹 다 먹었다.

할머니가 한 절반 이상은 드신 듯하다.

배가 불러 방바닥에 벌렁 누워있는데

"영아 고맙데이 이게 그렇게 먹고 싶더니 이제 배가 부르다."

"할매 내가 더 자주 올 테니까 드시고 싶은 거 있음 언제든 말해 다 사드릴라니까."

"할매는 이제 원 없다. 이거 실컷 묵었다 아이가."


요즘도 양념치킨을 보면 그날의 추억이 떠오른다.

즐겁게 드시던 모습

그 이후로도 종종 입맛 없다고 하시면

"양념통닭 또 시키까?" 하고 여쭤 보지만

늘 생각 없다고 괜찮다고만 하셨다.


나라도 자주 찾아뵙겠다는 다짐과는 달리

나 역시도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뵙지는 못했다.


할머니가 고인이 되신 지금에서라야

한 번 더 찾아뵙고 자고 올걸

전화라도 자주 할걸 후회가 남는다.


그곳에서는 더 이상 배고프지도

서럽지도 않게 잘 지내시면 좋겠다.


나는 여전히 할머니가 참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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