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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퍼플호랭이 Mar 23. 2022

자가 격리자의 봄

그래도 봄은 온다

우리 집에도 기어코 그분이 오고야 말았다.

매일 출근을 하는 남편을 제외하고, 코시국 이후로

아이와 나는 자체 자가 격리에 가까울 만큼 외출도 자제하는 생활을 해왔다.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었지만, 기어코 찾아오시니 온 몸으로 맞이 하는 수 밖엔 없었다.


 남편을 시작으로 이틀 후엔 내가 확진이 되었고, 감사하게도 아이는 잘 피해 갔으므로 이만하면 불행 중 다행이라 하겠다.


그리고 오늘 나를 마지막으로 온 가족 자가격리 해제가 되었다.

내 의지로 밖에 나가지 않고 생활을 할 때에는 외출에 대한 갈증을 잘 못 느꼈는데, 타의에 의해 집안에 갇히고 보니 바깥공기가 너무나 그립다.


하루 세 번 온 집안에 창문을 열고 환기와 소독을 하며, 창문을 통해 살랑살랑 불어오는 누그러진 봄바람과 봄 햇살이 반갑게 맞아본다.


시작을 의미하는 단어들이 많다.

매년 1월 1일

새해가 시작되었으니, 이전해 보다 좀 더 나은 사람이 되어보기로 다짐해 본다.

올 한 해 계획도 세우고, 다음에 하고 미뤄두었던 일도 한두 가지 실행해 본다. 벌써 뭔가 달라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리고 얼마 후 올해도 망했다 싶은 기분이 든다.

그래도 괜찮다.


음력 1월 1일이 있으니까

양력은 그렇다 치고, 음력으로 한 번 더 마음을 다잡아 본다. 실패했던 일들도 다시 일으켜 보고, 마음을 가다듬어 본다.

그리고 또 얼마 후 이번에도 망했다 싶은 기분이 든다.


그리고 3월, 봄

꽃들이 피어나고,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고, 그냥저냥 보내버린 1,2월은 아쉽지만 그래도 뭔가 새로 시작할 마음이 드는 달. 그리고 봄이라는 괜히 마음 설레는 계절까지.


코로나를 맞으면서, 벌써 한 달 가까이를 날려버렸다. 이번에도 망한 걸까? 다음 언제를 기다려야 하나? 뭔가 뒤에 숨을만한 핑계를 자꾸 만들어 본다.


그 뒤에 숨으면 뭐하나, 어차피 달라질 건 없는데.


그냥 자가격리가 끝났으니,

이 날을 또 새로운 날이라고 정해 본다.

겨우내 꽁꽁 닫혀 있던 창문을, 활짝 열어 봄바람을 맞이한 것처럼.




몇 년 전,

아침 일찍 출근해 밤늦게 퇴근하던 그때

잠시 외근을 나갈 일이 있어 차를 타고 나가는데, 창밖에 벚꽃이 정말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게 아닌가

잠시 차를 세우고 멍하게 있었다.

계절이 오는지 가는지도 모르고, 이렇게 눈부신 풍경 하나 보지 못하고 무엇을 위해서 이렇게 바쁘게만 사나 싶었다.


자가격리가 끝나고, 집 앞 산책길에 산수유가 핀 게 눈에 띈다.


올해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꽃도 구경하고 계절의 변화도 천천히 느껴 보리라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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