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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퍼플호랭이 Apr 15. 2022

애지욕기생(愛之欲基生)

나의 사랑하는 당신에게

요즘 언어의 온도라는 책을 다시 읽고 있다. 그중 한 대목에서 눈이 멈추었다.

애지욕기생; 사랑은 사람을 살아가게끔 한다.



얼마 전 꿈에 오랜만에 할머니가 나오셨다. 하얀 옷을 입고, 얼굴은 여전한 나의 할머니지만 주름 하나 없는 뽀얗고 곱디 고운 모습으로 내 앞에 앉아 계셨다. 그 어느 때 보다 편한 얼굴 이셨다. 꿈속에서 할머니에게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짧은 시간이 주어졌던 것 같다. 나는 큰절을 하며 "할매 그동안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할매한테 배운 거 잊지 않고 잘 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하고 말을 했다. 그리고 할머니는 말없이 내 앞에서 떠나셨다. 정말 눈물이 펑펑 났다. 꿈이 어찌나 생생하고 슬펐던지, 나는 눈도 뜨지 못한 채로 엉엉 울고 있었다. 옆에서 남편이 놀라 나를 깨웠다. 같이 자고 있는 아이가 깰까 싶어 조용히 거실로 나와 물 한잔을 마시고 한참 마음을 달랬다. 나는 할머니가 돌아가셨던 그날에도 생각만큼 눈물이 많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괜찮은 줄 알았다. 언젠가 할 이별이었으니까, 오랜 시간 마음의 준비를 했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많이 힘들지 않고 잘 지나간 거라 생각했는데 내 착각이었다.


할머니와의 이별이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았던 것이다.


 꿈속에서 할머니에게 큰절을 하며, 그제야 이제 진짜 할머니와의 이별을 실감했다. 그리고 마음에 너무  구멍이 생겨버렸다. 이제 보고 싶어도   없고, 한번 안아볼   없는 나의 할머니. 조금  자주 찾아뵐걸, 전화라도 한번  할걸, 한번  사랑한다고 말할 , 깊은 후회가 밀려오는 밤이었다. 아무리 후회해 봐도 할머니는 이제 없다. 자주 만나지 해도, 세상 어딘가에 할머니가 계신다는 것만으로도  의지가 되었는데, 이제는 진짜  계시는 거라고 생각하니 너무 슬퍼졌다. 세상 모두가 나를 등졌다고 생각한  순간에도 할머니가 있어서 견뎌낼  있었던 시간이 있었다. 어린 나와  동생을 거두어 주지 않았다면, 우리의 바람을 막아주지 않았다면, 지금의 모습으로 살고 있을지 감히 상상이 되지 않을 만큼 나의 버팀목었고  어린 시절의 전부였던 나의 할머니. 그렇게 꿈속에서라도 감사하다고, 말할  있어서  다행이었다.


당신은 나를 살려주셨고, 살게   은인입니다.


그렇게 한참을 할머니와 혼잣말로 이별을 고하고 방으로 돌아오니, 나의 작은 아이가 "엄마" 하며 내 품으로 파고든다. 그리고 한쪽에선 당신 마음 안다는 듯 남편의 투박한 손이 나를 토닥여 준다.


 나의 할머니는 이제 정말 떠났지만 내가 지키고 사랑해야 할 사람들이 있음에, 할머니에게 받은 무한한 사랑을 돌려주며 살아가야겠다고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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