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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퍼플호랭이 Apr 22. 2022

스무 살의 나에게 보내는 편지

맏이처럼 살지 않기를

스무 살. 생각만 해도 반짝반짝 빛나고 예쁜 그 나이

그때의 나를 만날 수 있다면,

나는 맏이처럼 살지 말아라 그렇게 살지 않아도 괜찮다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애초에 내가 품을 그릇이 아니었건만, 가족의 문제는 곧 내가 짊어져야 할 짐이며, 그것이 당연하다 여겼다.


가고 싶은 학교가 있었지만, 그곳은 집에서 멀리 떨어진 학교였다.

어린 동생이 있었기에, 가족을 떠나지 말고 곁에 있으라는 그 한마디에 진학을 포기했다.

그 일을 두고두고 후회했다. 1,2,3 차 지망 중에 지원이라도 한번 해볼 걸 하고.

그 길로 나는 대충 성적에 맞고 학비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학교에 진학했다.

가정형편이 넉넉하지 않았으므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장학금을 받아서 어떻게든 이 학교를 졸업하는 일뿐이었다. 다양한 기회들을 포기하며, 그저 졸업해서 빨리 취업하는 일이 나와 나의 가정을 돕는 일이라 귀에 못이 박히도록 이야기를 들었다.

대학생활의 즐거움도, 20대의 도전, 방황 같은 것들은 애초에 내가 꿈꿀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주변을 돌아볼 틈 없이 취업하고, 나의 월급으로 가족이 벌인 온갖 궂은일을 처리했다. 나 자신한테는 3만 원짜리 립스틱 하나 사는 것도 인색했으면서, 가족들을 위해서는 아낌없이 썼다. 그때마다 내게 돌아온 말은 고맙다 이 한마디뿐이었다. 내가 그런다고 상황이 더 좋아질 것도 없었다. 오히려 내가 떠안아야 할 다른 일들이 자꾸 생겨났다.


더 이상 그렇게 살지 않기로 결심했다.


어떤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더 이상은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굳게 마음먹고 이전처럼 해줄 수 없으며 나도 내 인생을 살겠노라 선을 그었다. 내가 아니면 큰일이 날 줄 알았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어차피 내가 아니었어도, 그냥 어떻게든 해결될 일인데 내가 별말 없이 다 떠안으니 당연하게 여겨왔던 것이다. 오히려 내가 일을 떠맡지 않으니, 더 좋은 일이 생기기도 했다. 그동안 내가 참 미련하게 살았구나 하는 후회와 나를 당연하게 여긴 가족에게 미운 마음이 들었지만, 어쨌든 그날의 나의 결정에는 조금의 후회도 없다


 그때의 어린 나에게 애초의 나의 일이 아닌 일에 너무 애쓰지 않아도 괜찮다고, 조금 더 자신을 위해 이기적으로 살아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온 나에게 참 애썼다고 꼭 안아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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