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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퍼플호랭이 Nov 18. 2022

미용실은 안 가지만 머리는 하고 싶어

엄마도 성장하는 중입니다.

© kaleido-dp, 출처 Pixabay




“마지막으로 미용실에 간 게 언제더라...?”


작년 여름 커트가 마지막이었으니, 1년이 넘어간다. 아이를 출산하고 커트 2번, 드라이 1번 정도니 총 이용금액이 5만 원 이하 되겠다.


이렇게 된 데는 내 나름의 이유가 있다.


우선 우리 꼬맹이의 지독한 엄마 머리카락 사랑 덕이다. 아이들이 엄마의 신체 일부분을 애착한다더니 우리 꼬맹이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내 머리카락을 만지며 잠을 자고, 지금도 수시로 머리카락을 만진다. 새벽에 잠이 깨서 엥~ 하고 소리를 내면 나는 눈도 뜨지 못하고 아이 옆으로 굴러가서 머리를 들이민다. 그러면 한참을 만지작 대거나 쥐어뜯다가 잠이 든다. 처음엔 너무 괴로웠지만, 아이 잠이 홀딱 달아나 새벽에 안고 업고 한바탕 난리를 피우는 것보단 내 머리카락을 희생하는 쪽을 택했다. 그 머리카락에 대한 사랑은 여전하다. 피곤하거나 심심할 때 여지없이 내 머리카락으로 손이 간다. 예전처럼 입에 넣고 빨지 않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아이가 매일 같이 내 머리를 만지니 파마나 염색 같은 걸 상상을 할 수가 없었다. 부스스한 머리를 어찌할 길이 없어 다이소에서 파는 1000원에 5개짜리 검은색 동그란 머리끈으로 질끈 묶은 헤어스타일을 늘 고수하고 있다.


두 번째 이유는 미용실 가는 내 마음이 영 불편해서이다. 그 불편한 인연은 꽤 오래전에 시작되었다.


대학생 신입생이었던 어느 날 얼마 안 되는 용돈을 아끼고 아껴 큰맘 먹고 파마를 하러 미용실에 갔다. 대학생도 되었으니 멋이라는 걸 한번 부려 보고 싶었던 것이다. 동네를 오가며 점찍어두었던 미용실로 향했다. 그곳을 선택한 이유는 단 하나 문 앞에 “파마 3만 원”이라는 글자가 눈에 띄었기 때문이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미용실 문을 열었다.


“딸랑~”


“어서 오세요. 여기 앉으세요”


 중년의 여자 미용사님 한 분이 운영하는 가게였고, 손님은 아무도 없었다. 쭈뼛쭈뼛 안으로 들어가서 자리에 앉았다. 목에 가운이 둘러지고 머리에 스프레이로 물이 칙칙 뿌려진다.


그제야


“머리 뭐 하시게? 커트? 파마?”


“아 네. 파마하려고요.”


그리고 쉴 새 없이 공격적인 영업 멘트가 날아온다.


“으익 ~ 자기 머리숱이 엄청 많네. 그리고 머리도 기네. 여기 파마하면 음 내가 7만 원에 해줄게!” 하고 선심 쓰듯 말씀하신다.


“네…? 저는 저기 밖에 3만 원이라고 쓰여있어서…"


하고 말을 흐리니


“아~ 저건 할머니들 하시는 짧은 머리 뽀글 파마 알지? 그거 말하는 거야. 그리고 자기는 내가 말했지만 머리숱도 많고 길이도 길고, 저 파마하면 금방 풀리고 예쁘게도 안 나와.”


딱히 반박할 것도 없는 것이 당시 내 머리는 올이 굵고 숱은 엄청나게 많았으며, 머리 길이는 등 절반을 덮는 길이였다.


이미 의자에 앉았고, 가운도 둘렀고 머리도 풀어헤쳤으니 협상 테이블에서 열세한 상황이다. 거기다 상대는 나보다 20살 아니 30살은 많아 보이는 우리 엄마 연배의 노련한 전문가가 아닌가. 가뜩이나 어디 가서 싫은 소리 한마디 못하는 소심한 내가 안 할래요라는 말을 차마 입 밖으로 낼 수 없었다.


“네… 그렇게 해주세요.” 하고 대답하곤 속으로


‘그럼 뭐 3만 원은 짧은 머리 한정 할머니 파마라고 써놓던가, 머리숱 적고 머리 짧으면 깎아 줄 건가?’라며 샐쭉해졌지만 일단 하기로 했으니 머리라도 예쁘게 되길 바라본다.


“자기는 머리가 올이 굵어서 작은 로트로 빡빡하게 말아야 돼 안 그럼 금방 풀리고 안 예뻐”


“아 그렇구나... 네 그렇게 해주세요.”


특별히 원하는 스타일의 머리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저 대학생이 된 기념으로 어른의 상징 같은 파마머리를 해보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래서 순순히 미용사님의 말을 따랐다.


“대학생이야? 어디 학교 다녀? 과는 무슨 과?”


학교를 시작으로 호구조사가 시작되는가 하더니, 슬쩍 본인 아들 자랑까지 첨언하신다. 그저 짧은 대답으로 얼른 이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바라보지만 나의 불편함은 아랑곳하지 않으시는 듯 다양한 이야기 주제가 오고 갔다.


그렇게 결과물을 확인하려는데 머리 상태가 영 심상치 않다.


뽀글뽀글도 아닌 아주 빈틈없이 빠글빠글한 상태의 파마 컬이 드러난 것이다.


지금 머리가 젖어서 그렇다. 좀 마르면 펴지니 괜찮고, 1-2 주면 자연스럽게 된다며 무심하게 머리를 말려 세팅을 해주신다. 아무리 원하는 스타일이 없었다기로서니 이런 느낌을 원한 건 아니었기에, 더군다나 생각지도 않게 지출도 늘어났고 기분이 영 좋지 않았지만 자연스러워진다는 미용사님의 말을 애써 믿으며 말 한마디 못하고 입을 꾹 다물었다.


고3 때 가만히 앉아 주는 밥 먹고, 가만히 앉아 공부하고 움직임이 것이 없었기에 손쉽게 인생 최대 몸무게를 달성했으며, 사정은 대학생이 되어도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동글납작한 얼굴형에 오동통한 젖살까지 더해서 대보름달 같은 얼굴을 하고서는 곱슬 곱한 머리를 풀어헤치니 좋게 말해 90년대 미스코리아 대회에서나 볼법한 사자머리요, 그마저 손질하지 않으면 해리 포터에 나오는 해그리드 아저씨 같았다.


 미용사님의 말과는 달리 빈틈없이 빠글빠글한 상태의 컬은 꽤 오래 유지되었으며, 나는 차마 머리를 풀지 못하고 늘 묶음 머리 상태로 다녔다.


 요즘 미용실은 검색만 하면 가격정보를 세세히 볼 수 있어서 시세 파악이 쉬워졌지만 내가 20대였을 때만 해도 일단 미용실에 가서 가격을 물어봐야 정확한 가격을 알 수 있었다. 일단 들어가서 앉으면 연타로 이어지는 “머리숱이 정말 많으시네요.”, “올이 굵어서 일반 펌은 안돼요. 특수 펌 해야 돼요" 등을 시작되면 기본 가격 대비 가격이라고 정해놓은 선에서 마구 추가되기 시작한다. 머릿결이 많이 상했다며 영양, 두피케어까지 영업은 덤이다.  분명 비용을 더 추가해서 내는 쪽은 나인데, 괜히 주눅이 들곤 했다.


 시작이 불편한데, 몇 시간 동안 자리에 앉아 어색하게 이어지는 대화를 주고받는 것도 내향형인 내게 영 기운이 떨어지는 일이었다. 그리고 나면 그 미용실은 여지없이 발길을 끊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불편함을 조금만 견디면 새로운 헤어스타일로 기분 전환도 되고, 정성껏 세팅한 머리를 보면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마음마저 드는데 그 기분을 느끼기 위해 치러내야 하는 모든 과정들이 때로는 부당하고 불편하게 느껴졌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미용실을 찾는 일이 뜸해졌다.


 미용실에서 머리를 하는 과정을 통해 내가 삶을 대하는 태도가 늘 이랬던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아이의 애착과 미용실에서의 다소 즐겁지 않았던 경험은 핑계고, 여러 갈래의 선택 과정이 번거롭고 어렵게 느껴져 시도조차 하지 않고 내게 잘 맞는 미용실 찾기를 포기해 버린 것은 아니 었을까.


내 인생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고 싶다고 오래전부터 수없이 말해왔지만, 그 변화를 하기 위해 들여야 하는 정성과 노력을 갖은 이유로 미루고 살았다. 시간도 없고, 돈도 없고, 능력이 안 되는 것 같고…


요즘은 조금이라도 마음이 끌리는 곳으로 닿으려 애써본다. 빛나다 작가님 말씀처럼 세상에서 먹기 어려운 글을 쓸 마음을 먹은 것처럼 말이다. 내가 그런 능력이 있나? 내게 그럴 시간이 있나?라는 도망가기 위한 핑계는 접어두기로 했다. 글쓰기에 마음이 닿았으니 일단 글을 쓰기로 마음을 먹었고, 글감을 찾으려 마음을 쏟고, 기꺼이 글을 쓸 시간을 만들어 내고, 머릿속에서 엉켜있는 내 생각들을 다듬어서 글로 만들어 내는 과정을 거쳐야만 글을 쓰는 사람이 된다. 그 안에서 내 안에서 원하는 뭔가를 발견해 내길 바라면서 말이다.


언젠가 아이의 머리카락 애착이 줄어들면 미용실 예약하기라는 어려운 마음먹기를 시도하고, 기꺼이 시간을 내어 산뜻한 헤어스타일로 변화해 보아야겠다고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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