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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퍼플호랭이 Feb 09. 2023

돈들인 인테리어를 굳이 망치며 배운 점

엄마도 성장 중입니다.

 출산을 앞두고 주말부부로 살던 우리는 합가를 결정했다. 그리고 큰 마음을 먹고 지금 살고 있는 우리 집을 매매했다. 은행과 지분을 공유하고 있지만, 남의 집을 잠시 빌려 사는 것이 아닌 우리 집이 주는 기쁨과 설렘임은 남달랐다. 이사를 준비하며 전세 살던 시절에 이루지 못한 화이트톤의 통일감 있는 인테리어를 구상했다. 통일감 있는 화이트 인테리어를 완성시키려면 눈에 거슬리는 몰딩, 창틀, 회색의 주방문, 갈색의 방문까지 해결해야 할 것들이 많았다. 마음 같아선 새것으로 바꿔 버리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는 상황이라 인테리어 필름지 시공을 선택했다. 업체미팅을 하고 몇 날 며칠을 고민하며 필름지 색상을 골랐다. 그러다 문득 전부 흰색으로 하면 좀 진부하고 심심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싱크대 문은 민트색으로 포인트를 주었다. 화이트와 민트색 조합은 꽤 산뜻하고 예뻤다. 주방일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내가 직접 고른 산뜻한 민트색 포인트가 들어간 우리 집 주방이 참 좋았다.


 5년이 지난 어느 날. 자주 여닫다 보니 문끼리 닿아 필름지가 헤지기도 하고, 어디서 생긴지도 모를 생활흠집도 하나둘 늘어났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예쁘기만 했던 민트색 주방문이 지겨워졌다.


'아... 저 민트색을 흰색으로 바꾸고 싶다.'

 

 인테리어 필름 시공 때 여분으로 받아 챙겨둔 흰색 필름지가 생각났다. 창고에서 꺼내와 보니 먼지는 조금 앉았지만 상태는 괜찮았다.


'그래 문만 붙이는 거니까. 직접 해보는 거야.'


그 길로 주방에 털썩 주저앉아 무엇인가에 홀린 것처럼 민트색 필름지를 떼어내고, 흰색 필름지를 재단하고 있었다. 그리고 결과물을 보고 나는 크게 한숨을 쉬었다.


'망했구나...'


 분명히 인터넷에 검색했을 때는 참 쉬워 보였는데 나는 왜 이렇게 삐뚤삐뚤하고 기포가 많이 생기는지 돈 주고 한 인테리어를 망쳤구나, 가만히 있을걸 또 사서 일을 만들었네 라는 생각에 한숨이 나왔다.

수습하기도 그렇다고 다시 되돌 릴수도 없는 대략 난감한 상황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남은 필름지도 없었다. 다시 주문해야지 하고 마음만 먹고 그렇게 망한(?) 채로 그런대로 살고 있다.



 가끔 나는 이렇게 내가 왜 그랬지 싶게  일을 만들 때가 있다. 반면에 어떤 일은 몇 년 동안 고민만 하다가 결국 안 하기도 한다. 내 안에 참 일관되지 않는 양면의 모습이 있다.


내 안에 호기심과 인정 받고 싶은 마음이 저울질하다 호기심으로 기울면 일단 해본다. 그리고 아니면 말고 이게 가능하다. 하지만 인정욕구로 저울이 기울면 나는 감히 시도조차 안한다. 이런 일에는 '일단 해보지 뭐'가 통하지 않는다.



 자아는 우리가 겸손한 초보자가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자아는 우리가 전문가가 되기를 바란다. 이런 요구는 종종 우리를 경직되게 만들고 새로운 관심사를 계속 추구하지 못하게 한다. 새로운 영역으로 들어가기 위해 우리는 완벽함에 대한 자의 요구를 무력화해야 한다. 우리는 기꺼이 겸손해야 한다. 겸손은 우리에게 초보자가 되는 은혜를 베푼다. 겸손은 우리에게 작은 첫걸음을 내디딜 용기를 주고 그 걸음은 우리를 다음 발검음으로 이끌 것이다. 또한, 우리의 실행 시도가 어떤 가치가 있다고 제안하면 우리의 자아는 우리를 꾸짖으며 완벽하기를 요구한다. 자아는 아주 좁은 길이다. 우리의 자아는 목표와 꿈이 실제로 어떻게 성취되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고 우리가 완전무결하기를, 냉담한 완벽을 성취하기를 고집한다.
새로운 시작을 위한 아티스트웨이 P.202 - 줄리아 카메론


 요즘 줄리아카메론의 새로운 시작을 위한 아티스트웨이를 읽고 매일 모닝페이지를 쓰고 있다. 오늘 모닝페이지를 쓰기 전 책의 부분을 읽다가 발견한 보석 같은 내용이다. 이 내용을 읽으면서 나의 행동이 조금 이해가 되었다. 내게도 완벽하게 잘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다. 그래서 잘하지 못할 것 같으면 아예 시도를 하지 않거나 금세 포기한다.


살아오며 완벽이라는 글자 앞에 온갖 핑계와 이유를 대며 최선을 외면했던 많은 일들이 떠오른다.


요즘은 글쓰기가 그렇다. 글쓰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은 아주 오래전부터 해왔지만 그것을 실행으로 옮기는 데는 또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실행을 옮긴 다음에도 공개적으로 나의 글을 보여주는 것에 대해서 또 생각이 많았다. 나보다 생각이 깊고 글을 잘 쓰는 사람은 세상에 많아도 너무 많다. 그런 글을 읽고 있자면 내 글은 끄적임 수준이라 어쩐지 초라하고 낯이 화끈거리는 것이다. 책 속의 말처럼 글쓰기에 대한 나의 고민과 두려움은 어쩌면 내가 너무 완벽하려 했기 때문 아니었을까? 글을 쓰고 싶다고 말해놓고 글을 쓰는 그 과정을 즐기기보다 글을 통해 인정받고, 그럴듯한 결과물이 있어야만 할 것 같았다. 셀프 필름지 시공을 망쳤을 때 결과물은 대략 난감이지만 그 과정은 사실 좀 재밌었다. 어떻게 되겠지 뭐 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도 있었다.


그러면 주방문이 울퉁불퉁 좀 웃기지만 그래도 그냥 그런대로 괜찮은 나처럼, 완벽함을 요구하는 또 다른 나를 조금 내려놓고, 그냥 시도하고 그 생각하는 과정을 즐기는게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요즘 아무 글이라도 일단 쓰는 중이다.

대략난감 울퉁불퉁 주방문, 반대쪽은 아직 민트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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