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 호남집
아버지의 40년 단골 식당에 들렀습니다.
고교시절, 동대문구장에서 야구 경기가 열리던 날이면 어김없이 들르셨다는 종로 호남집에 말이죠.
돈이 없던 아버지는 야구가 형편없이 진 날이면 그냥 야채곱창을, 가까스로 이긴 날이면 조금 더 비싼 오소리감투를 시켰더랬죠.
얼굴만큼이나 입맛도 아버지를 빼닮았는지, 저 역시 그곳을 뻔질나게 드나들었습니다.
사장님이 말씀하시네요, ''지난번에는 고등학교 친구들이랑 왔었지?''
''네! 주인 할머니는 건강하시죠?''
이곳에 올 때면 온 마음으로 느낍니다. 제 얼굴에는, 제가 보지 못하는 몇 줄의 설명이 덧붙어 있다는 것을.
'진금사 아들'
아버지의 젊은 날을 보신 분들은, 굳이 설명하지 않더라도 제가 누구의 아들인지 대번에 알아채시더군요. 아버지는 소싯적 한 인물 하셨나 봅니다. 죄송합니다. 농담입니다.
불판을 올리며 사장님이 말씀을 건네십니다. 당신이 저보다 훨씬 어릴 때부터 저희 아버지를 보셨다고, 아버지는 늘 한결같으시다고.
늘 한결 같이 호남집의 주방을 지키시던 주인 할머니의 귀한 따님은, 어느새 어엿한 중년의 사장님이 되셨네요. 사장님의 남편분이 친절하게 가게일을 도우시는데, 그 모습이 영락없이 가게 분위기와 어울리더군요. 두 분의 사이가 정말이지 따뜻해 보였습니다. 이 이야기를 아버지께 건네니 웃으며 말씀하시네요.
"40년 전에 주인아저씨도 주인아주머니를 엄청 살뜰히 챙기셨는데 말이야"
40년 전의 아버지와 40년 후의 저는 취향이 참 비슷하네요. 밥 먹으러 갔으면서 밥은 안 먹고 그런 거나 보고 있다니요.
불판 위 곱창이 적당히 익어 지글지글 소리가 나는군요. 이제 사장님 내외 구경은 그만두고 밥을 먹어야겠습니다. 상추 한 장 위에 깻잎 한 장을 포개고 곱창 두어 점과 당면 몇 가닥을 올립니다. 함께 볶아 나온 야채는 곱창보다 조금 더 많이. 거기에다가 쌈장을 듬뿍 찍은 생마늘 한 조각은 필수죠. 입안 가득 고소하고 매콤한 기운이 은은하게 퍼집니다. 입이 자꾸만 소주 한 잔을 넣으라네요.
"사장님 소주 한 병만 주세요!"
이건 순전히 곱창 때문입니다. 적당히 맛있어야 술을 안 마시죠. 이런, 오늘따라 소주가 달군요.
'쟤가 어느새 다 커서 소주를 마시네'
사장님의 마음의 소리가 들리네요. 뒤통수가 조금 따갑습니다.
소주를 계속해서 더 시킵니다. 곱창을 계속해서 입 안으로 밀어 넣습니다. 이미 제 평소 식사량을 넘겼는데도, 끊을 수가 없네요. 물론 볶음밥도 안 시킬 수가 없겠죠.
"사장님 볶음밥 1인분만 볶아주세요!"
사장님은 잘 먹는다며 3인분 같은 1인분을 주셨네요.
주시는대로 다 먹으니 배에서 끽끽 소리가 납니다.
배가 불러 일어서질 못하겠군요. 버스로 가면 금방인 거리를 부러 걷기로 결심합니다.
청계천 길섶에 과식의 죄책감을 조금 버려야겠어요.
천변을 걸으며 생각합니다. '나는 이 기분 좋은 포만감을 얼마나 오래 누릴 수 있을까' 하고 말이죠.
지금의 저보다도 어렸던, 젊은 날의 아버지가 느낀 그 든든함. 어디다 표출할 수 없는 행복과 미소를 불판 위 곱창과 함께 볶아대던 그 장소의 든든함. 삶의 희로애락과 길흉화복 속에서 가끔 길을 잃을 때, 소주 한 잔에 서러움을 씻게 해 준 저 장소의 든든함. 아버지에게서 제게로 이어진 이 든든함을, 저는 과연 얼마나 더 누릴 수 있을까요.
이토록 빨리 변하는 세상을 살면서, 변하지 않았으면 하는 장소를 마음 한구석에 두는 건 과연 사치일까요?
아버지에게처럼 저에게도 변치 않는 든든함이 필요한데 말이죠.
복잡해진 머리가 화를 내며 스스로에게 이야기합니다.
"그런 걱정 할 거면 한 번이라도 더 가라"
'있을 때 잘해 후회하지 말고' 어느 유행가의 가사와 함께 말이죠.
조만간에 한 번 더 가야겠습니다. 갈 때마다 사람이 북적이니 당분간 그런 걱정일랑 접어두어도 괜찮겠습니다.
식구들에게 호남집에 다녀왔다는 얘기는 비밀로 해야겠어요. 왜 포장은 안 해왔느냐며 혼을 낼 수도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