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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성우 Dec 13. 2020

읽고 쓴다는 것

어떤 책은 날 구원했고, 어떤 글은 날 살렸다

 나는 철이 들 무렵 내 손을 거쳐 간 수많은 책들을 기억한다.
그리고 이 책들로 말미암아 처음으로 글이란 걸 써본 그때를 기억한다.
어떤 책은 날 구원했고, 어떤 글은 날 살렸다.

 나를 이루던 많은 것들이 무너지고 넓디넓은 우주 속에 

나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것 같던 나날. 누구에게도 말 못할 슬픔이 나의 삶을 뒤덮고, 슬픔 밖으로 한걸음 내디딜 엄두조차 나지 않던 나날.   그런 날들 속에서 무너진 나의 자존감을 오롯이 지켜준 것은 바로 책과 노트였다. 손에 잡히는 대로 정신없이 읽고, 그 책이 주는 생각과 감정을 두서없이 써대던 경험이 그 힘든 나날을 버티게 했다.  책을 읽고 글을 쓸 때면 나는 무척 편안했다.

나를 둘러싼 번민이나 슬픔 괴로움과 노여움 따위 등의 감정들이 내게서 얼마간 떨어진 기분이었다.
그렇게 오로지 읽고 쓰는 것만이 나를 살게 한 나날이 있었다.  그리고 읽고 쓰는 것을 통해 비로소 스스로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게 되기도 했다.

착 가라앉은 나의 내면을 바라보며 그 안 깊은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나의 목소리를 듣는 일, 그 일은 내 내면의 어떤 심지같은 것을 더 곧고 굳게 해주었다.

자존감이랄까 스스로의 규준이랄까 하는 것들 말이다.

 이렇게 나는 읽고 쓰는 일에 너무도 많은 빚을 졌다.

도무지 어찌 이 빚을 다 갚아야 할지 몰라 그저 읽고 쓰는 행위를 더 사랑하는 것으로 그 빚갚음을 갈음하려 한다.
그리하여 더 열심히 읽고 더 부지런히 쓰겠다고.
내게 주어진 나날 동안, 앞선 이들이 글을 통해 그려낸 아름다운 무늬를 좇으며

나만의 고유한 무늬를 그려내겠다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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