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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성우 Dec 15. 2020

유전( 遺傳 혹은 有錢)

가난이 가난을 낳는 이 세상이 밉다.

                         유전( 遺傳 혹은 有錢)

아비는 가난했다.
젊어서는 행랑살이, 종노릇 마다하지 않고
억세게 살아왔다.
훗날 죄 없는 처와 새끼에게는
꽁보리밥이라도 실컷 먹이고 싶어 소처럼 묵묵히 일했다.
그런데도 그의 살림은 구멍 난 자루마냥 좀처럼 채워지질 않았다.

건넛마을에서 수더분한 각시를 얻는 소박한 꿈을 이루어 식구가 생기자, 늘어난 입입들에 아비는 더욱 가난해졌다.

걸귀 탓인가 싶어 매일 아침
흰 대접에 정화수를 떠놓고 비는 게

일상이 된 지 오래였다.

어린것이 어느새 커서, 남의 밭을 쏘다니며

버려진 배춧잎을 훑어다가 말린 시래기로
지은 밥이나마 싹싹 긁어먹을 나이가 되자
아비는 더더욱 가난해졌다.

아닌 게 아니라 벌써 누비옷 솜까지도 빼내어
팔아, 온 겨울 이를 덜덜 떨며 보낸 아비에게는
이젠 도무지 팔 것이 없다.

유전과 무전은 아마도 유전인 것만 같아
아비는 울었다.

묵중한 겨울이었고,
하늘에선 싸락눈이 흩날렸다.


작가의 말

 가난이 가난을 낳는 세상이 싫다.
그야말로 유전과 무전이라는 조건이 유전처럼 이어지는 세상이 나는 싫다.

 가난을 거름 삼아 무럭무럭 자라는 자식 앞에서, 가난한 부모는 더없이 죄인이 된다.
이 지긋지긋한 가난의 굴레를 끊어낼 확률은 희박하다는 것을 부모는 안다.
그래서 어느새 마음까지도 가난해진다.
자식의 천진한 성장을 볼 때마다 부모의 가슴 한구석은 더 아릴 것이다.

 자식이 태어날 무렵, 부모는 이 가난의 결박에 흠집이라도 내어보려고 안간힘을 쓰기로 했을 것이다. 잠도 먹을 것도 줄여가며 자식에게 더 나은 환경을 주고자 열심히 움직였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의 벽 앞에서 좌절하고 만다.
돈이 돈을 부르고, 그 돈이 넉넉한 부모에게서 그 자식에게로 유전처럼 고스란히 이어지는 현실 앞에서 서러워하다가 이내 무기력해졌을 것이다.
살아보려고 애썼지만, 세상은 자꾸만 부모를 구석으로 더 구석으로 몰아냈을 것이다.

 나는 죄 없는 부모를 죄인으로 만드는 이 세상이 참 밉다.
가난이 가난을 낳는, 그야말로 유전과 무전이 유전처럼 이어지는 이 세상이 나는 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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