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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성우 Jan 12. 2021

나의 작은, 작은이모

 작은이모를 떠올리면 언제나 마음 한편이 따뜻해진다.

엄마가 그 먼 시골에서 서울로 올라와 처음 자리잡기 시작했을 때부터 동생인 작은이모와 함께 지냈다고 하니까,

이모는 아마도 내가 엄마의 뱃속에 있던 시절부터 나를 봐왔을 것이다.


 이모는 나의 바쁜 아버지와 엄마를 대신해서 누나와 나를 여기저기 데리고 다녔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이모는 나만큼, 아니 어쩌면 나보다도 어린 나이였을 텐데 조카들을 위해 많은 시간을 내어주면서도 싫은 내색 한 번 하지 않았다. 내게 이모는 그런 사람이다. 하염없이 선한 사람.

 

 그 덕에 어린 내가 처음 경험하는 것들에는 대부분 이모가 같이 있었다. 처음 극장이란 델 가본 것도, 처음으로 유행하던 패밀리 레스토랑에 가본 것도, 지금은 CGV가 된 신촌의 한 극장 앞에서 난생처음 연예인을 본 것도 모두 이모와 함께였다.(그때 본 연예인은 부활의 김태원 아저씨였지 아마)

이모는 나의 친구였고, 항상 바쁜 엄마를 대신해주는 또 한 명의 엄마이기도 했으며, 깨지기 쉬운 어린아이들의 동심을 온몸으로 지켜준 울타리였다.


 늘 친구 같던 우리 이모가 현명한 어른이라는 걸 깨달은 건 얼마 되지 않았다. 다른 이들보다 조금은 유난스러운 성장통을 겪은 스무 살 언저리, 최선을 다해도 최악의 상황만 자꾸 다가오던 그 시기에 난 참 많이도 방황했다.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는데서 느끼는 분노의 감정은 여느 아들들이 그러는 것처럼 아버지에 대한 원망으로 이어졌다. 그런 마음은 하루하루 지속되었고, 내 불행의 이유를 찾기 위해 떠올린 무고한 아버지를 미워하는 일은 나를 매일 더 깊은 불행으로 몰아세울 뿐이었다. 그때 그 불행을 끊어준 사람은 어김없이 이모였다.


 당뇨로 오래 앓던 아버지가 갑작스러운 합병증으로 눈 수술을 해야 했던 여름날, 환자가 택시는 무슨 택시냐며 멀리 김포에서 서울까지 차를 몰고 와 아버지와 나를 태워주던 정 많은 우리 이모. 그날 아버지를 병원에 입원시키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이모와 나누었던 대화는 휘청이던 그 시절의 나를 구원했다.

별일 없냐는 이모의 물음에, 나는 믿음직한 신부님께 고해성사를 하는 열렬한 신자처럼 아버지에 대해 가진 모든 고민과 불만을 털어놓았다. 여느 어른들처럼 함부로 나무라거나 쉽게 재단하지 않고, 행여 어린 조카의 마음이 다치진 않았을까 조심히 듣고 있던 이모는 이모의 아버지, 그러니까 나의 외할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하며 나를 다독였다.


 이모는 이모에게도 방황했던 시절이 있었다고 이야기했다. 또 지금의 나처럼 아버지가 원망스러운 적도 많았다고 했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수많은 실패가 이모가 가진 환경 탓인 것만 같이 느껴져 아버지가 미웠던 적이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어른이 되고 다시 몇 번의 실패를 겪다 보니 '나름의 최선'이라는 말을 생각하게 되었다고 내게 말해주었다. 나의 아버지도, 이모의 아버지도 '나름의 최선'을 다하기 위해 외로운 싸움을 했을 거라고,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을 어찌해보려고 힘겹게 하루하루 살아냈을 거라고. 그것을 알게 된 이후로 이모는 아버지가 밉기보단 안쓰러워졌다고 내게 알려주었다.


 그날 이모와의 대화 이후로 나는 나를 위해 늙어간 아버지의 주름진 얼굴을 사랑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었고, 아버지도 '나름의 최선'을 다하기 위해 많이 외로웠을 거라는 점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아버지라는 뿌리를 가진, 앞으로의 생에서 아버지와 같이 '나름의 최선'을 다하며 홀로 외로워할 나 스스로를 조금 더 사랑하게 되었다.


 이제 이모에게는 두 아이가 있다. 거진 20년을 막내로 지내온 나에게 찬수와 지수라는 이름을 가진 귀엽고 천진한 동생들이 생겼다. 두 아이를 생각하면 내 입가에는 괜스레 미소가 떠오르고 이 아이들에게 무엇이라도 더 해주고만 싶다. 내게 생긴 첫 동생들이라는 것보다 더 큰 의미를 가진, 내가 사랑하는 작은이모의 아이들이기 때문이다.


 이모에게 받은 사랑을 이 아이들에게 모두 다 전해줄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이 아이들이 커가는 과정에서 의지할 수 있는 어른이고 싶다. 찬수와 지수가 눈치 보지 않고 해맑은, 그야말로 아이다운 아이로 커갈 수 있도록 튼튼한 울타리가 되어주고 싶다. 이모가 내게 해 준 것처럼 이 아이들의 하루하루를 맑게 채워주고 싶다. 아이들의 하루는 어른들의 하루보다 길 테니까. 그게 내게 건네준 이모의 사랑에 보답하는 유일한 길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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