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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성우 Jan 21. 2021

아빠를 닮았네

 처음으로 스스로의 철듦에 대해 자각했던 때를 떠올린다. 그날은 무심히 바라본 거울 속 나의 모습에서 아빠의 얼굴이 보였고, 아빠의 삶이 어떤 궤적을 그리며 이어져왔을지 또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이 외롭고 고되고 울고 싶었을지, 아빠의 아빠가 얼마나 보고 싶었을지를 생각해본 날이었다.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 심은 아이(京植)'라는 이름을 가진 나의 아빠는 그 이름에 걸맞게 내가 사는 이 도시 서울을 닮은 사람이다. 매일같이 분주하고 더러는 외롭지만 존재 자체로 찬란한 낭만의 빛을 발산하는 서울. 내가 느끼는 아빠도 그렇다.


 특히 아빠는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낸 종로를 닮았다. 온갖 사람들의 온갖 사연이 모이는 곳. 한때 8학군이 있었고, 수많은 다방이 있었고, 그 다방에 모여드는 젊은이들이 있던 곳. 갖은 물건을 파는 시장들이 이어지고, 누군가의 엄마와 아빠가 그 시장에서 매일같이 분주한 삶을 살아내는 곳. 그러니까 청춘과 사랑과 지성과 생활이 공존하고 그 때문에 온갖 아픔도 기쁨도 슬픔도 노여움도, 살아내기 위해 터득할 수밖에 없었던 기민함도 그 삶을 살아내며 쌓여간 피로감도 있는 곳. 삶에서 유독 많은 굴곡과 모순을 겪어낸 나의 아빠는 종로를 닮아있었다. 사람이 한 장소에 오래도록 머무르면 그 장소를 닮아간다는 사실을, 나는 아빠를 통해 배웠다.


 아빠의 아빠는 아빠가 7살 때 돌아가셨다고 한다. 사람도 술도 명예도 좋아하시던 그분은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전쟁으로 이어지는 지난한 한국 현대사의 굴곡을 온몸으로 통과해내느라 지금의 아빠보다 훨씬 더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나셨다고 한다. 그때 아빠는 죽음의 의미도, 죽음이 가져올 변화들도 모른 채 아버지를 멀리 평내의 공동묘지에 묻을 수밖에 없었던 어린 소년이었을 것이다. 어른이 된 나도 힘에 부칠 때면 아빠를 찾아 쫑알쫑알 하소연을 하는데, 힘들 때마다 붙잡고 울 든든한 아빠가 없었던 그 소년의 성장과정은 얼마나 쓸쓸했을지 나는 도무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아빠는 자신이 이고 살아온 이 결핍이 많이도 슬펐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자신에게 주어진 '아빠'의 역할에 늘 최선을 다했다. 부모가 되어 어린것들이 몸을 뉘일 곳을 마련하고 녀석들의 입에 음식을 넣어주는 일은 언제나 고된 숙제일 것 같다. 아빠는 모범생처럼 그 숙제를 매일매일 성실하게 해냈다.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 종로에 가서, 저마다의 욕망과 사치와 허영과 행복을 채우려고 아빠의 가게에 들른 손님들에게 귀금속을 팔며 악착같이 돈을 벌었다. 그렇게 성실하게 생활을 일구는 와중에도 틈을 내어 누나와 나에게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기 위해서 지친 몸을 일으켰다. 우리 식구는 주말이면 아빠의 차에 올라 교외로 나가 이것저것 경험했고, 그마저도 겨를이 없을 때면 하다못해 가게 지척에 있는 청계천으로 가 흐르는 개울물에 발을 담그고 물장구를 쳤다.


 또 자식들이 먹고 싶다는 음식이 있으면, 한 여름이나 한 겨울의 퇴근길에도 집에 오는 길과는 반대 방향으로 한참을 걸어가 두 품 가득 사 왔다. 그때 아빠가 사 오던 백제 정육식당의 육회와 창신시장 호남집의 곱창, 그리고 종묘 앞에서 파는 전병은 지금도 내가 가장 사랑하는 음식이다.


 아빠가 '나름의 최선'을 다한다는 사실을 모르던 철부지 시절에는 아빠가 밉고 원망스러웠던 적도 많았다. 울긋불긋 여드름 가득한 얼굴과 '나 건드리지 마세요'라는 말을 온몸으로 표현하며 집집마다 구석진 곳을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을 법한 여느 아들들처럼, 내게도 어김없이 찾아온 사춘기 시절을 나는 그렇게 보냈다. 아빠는 사춘기 아들이 쏘아대는 무례의 과녁이 되었고, 나는 매일 같이 아빠의 돈 없음을, 아빠의 사람 좋아함을, 아빠의 술 좋아함을, 아빠의 잔소리를 탓하며 원망의 화살을 쏘아댔다. 호르몬의 급격한 변화가 만들어낸 소년의 마음속 분노를 그렇게 풀어내는 동안 죄 없는 아빠는 영문도 모른 채 나의 툴툴거림을 묵묵히 들어주어야 했다.


 아빠의 그 묵묵함이 미웠던 나는 더 못된 말이, 아빠에게 더 상처가 되는 말이 무엇일까 매일 궁리했다. 그리고 이내 그 못된 심보가 집약된 말을 찾아냈다.

''아빠는 아빠가 일찍 돌아가셔서 아빠의 역할을 잘 모르는 것 같아''

나는 마침내 사춘기라는 사실이 면죄부가 되는 수준을 넘어선 그 말을 뱉어냈다. 아빠는 별다른 내색 없이 그 못된 말을 들었지만, 아마 그 말은 공중에서 날카로운 파편으로 흩어져 아빠의 가슴에 박혔을 것이다. 다른 사람도 아닌 나를 위해 사는 사람에게, 자신의 결핍을 아들이 겪지 않도록 매일의 최선을 다하는 사람에게 그 말이 얼마나 잔인한 말이 될지도 모른 채 어리석은 나의 입은 그 말을 뱉어냈다. 지금 아빠는 사춘기 아들의 그 치기 어린 말을 잊어버렸을 수도 있겠지만, 내게 그 말을 한 날은 처음으로 부모의 가슴에 대못을 박은 날로 기억된다. 단순한 철없음으로는 도저히 무마할 수 없는 그 말로 인해 나는 평생 최선을 다해서, 나의 말이 만들어낸 빚을 갚아야 할 처지가 되었다.


 아빠는 지금의 나처럼 여기저기 다니며 이것저것 보고 겪는 것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또 자신이 가진 충만한 사랑을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나누고 싶어 하는 정 많은 사람이기도 하다. 그토록 호기심도, 경험에 대한 욕심도 많은 아빠가 자식들을 위해 스스로의 호기심과 경험을 얼마나 유예해왔을지를 생각한다. 아빠의 그런 성격을 쏙 빼닮은 나는 그 과정에서 아빠가 얼마나 괴롭고 고통스러웠을지를 안다. 다만 아빠의 유예된 경험들을 어떻게 보상해주어야 할지는 여전히 내게 어려운 숙제이다.


 어느덧 60줄에 들어선 아빠는 최근 들어 한 명 한 명의 소중한 사람들을 떠나보내고 있다. 친구를 잃는다는 게, 또 오랜 시간 동안 굴곡과 모순을 함께 견뎌온 소중한 사람들을 잃는다는 게 얼마나 외롭고 쓸쓸한 일일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나는 다만 넘겨짚은 아빠의 감정을 걱정할 뿐이다. 아빠가 덜 쓸쓸하고 덜 외로웠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는 아빠의 친구가 되기로 했다. 37살의 나이차가 나는 친구 말이다. 아빠가 좋아할 만한 것들을 상상하고 아빠가 좋아할 장소를 생각한다. 아빠가 좋아하는 영화를 예약하고, 아빠가 좋아할 만한 음식을 사서 아빠가 있는 종로로 간다. 아빠가 유예해온 많은 경험들을 더 즐겁고 신나는 일들로 갈음해주기 위해 아직 많이 부족할 '내 나름의 최선'을 다한다. 아빠가 그 나름의 최선을 향유하면서 오래도록 건강하길 기도한다.

훗날 아빠의 아들이 다시 아빠가 되어, '너도 너희 아빠를 닮아 참 좋은 아빠가 되었구나'라는 말을 들을 때까지 아빠가 나의 곁을 오래도록 지켜주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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