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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성우 Jan 28. 2021

지나가는 주름

해가 자리에서 느물 느물 일어나기 시작한다.

새벽 어스름, 적갈색 벽돌이 성벽을 이룬

도심 변두리 단독주택가에

한 사내가 눈 부비며 지나간다.
  
오래된, 아주 오래되어 빛이 바랜
양복에 그의 근심이 자리 잡은 듯
주름, 가득하다.

주름은 사내의 어깨에서 소매로,
소매에서 손등으로, 다시 손등에서 소매로,
소매에서 어깨로 흐른다.
  
생활의 여울물이 흐른다.

사내의 쇠잔한 어깨에, 그 어깨 위 주름에
식구들 딸린 입입이 빛난다.             


작가의 말

 

 식구들을 먹이기 위해 오늘도, 남들보다 이르게 하루를 시작하는 이들을 생각한다.

이 도시에는 해보다도 빨리, 해보다도 분주히 새벽을 맞이하는 사람들이 있다. 

해보다도 더 찬란한 빛을 내는, 아주 눈부신 생의 박동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남들이 감히 헤아릴 수 조차 없는 생의 굴곡과 모순을 오롯이 감당한 채 오늘도 새벽길을 나선다.

가족들의 오늘을 위해 자기의 어제를 애써 미루어 둔 그들은, 비가 와도 눈이 와도 같은 시간을 건너고 같은 

공간을 지난다.


 누군가의 아버지이기도, 누군가의 어머니이기도 한.

누군가의 아들이기도, 누군가의 딸이기도 한 그 사람들의 고단함을 감히 상상한다. 

그 고단함이 이룩하는, 가장 무해한 아름다움을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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