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성우 Mar 05. 2021

물조리개 군중

묶여 불리는 이름들에게

아이야 모두가 불타는 목마름으로 우짖던  어느  우리는 마침내 주인이 되었단다

 앞줄에 서있던 형들과 누이들이 하나  픽픽 쓰러져 가고  가슴속 불꽃 차츰 흐려지던  어느 날 네거리 가득 성난 군중들이 쏟아져 나왔단다

핏발  그들의 눈이  가슴속 말라가던 풀잎에 달디   모금 물을 뿌려 주었단다.
그중엔 지금의 너처럼 새하야니 고운 손을 가진 못다  청춘이 있었겠지

마침내 우리는 주인이 되었고  가슴속 시들던 풀은 어느덧 새파란 풍광을 이루었단다

이제  뜨거웠던 추회, 나의  옛이야기지만 
아직  귀엔 불타는 목마름으로 우짖던 나와 
우리의 핏기 어린 소리가 들려오는구나


작가의 .

 시대의 기억은 다음 시대로 전해진다.
 과정 속에서 곡해와 오독을 포함한  말이다.
 시대를 이루던 비극이나  맞서는 역동, 그리고  과정 속에서의 머뭇거림이 전부  후대에 전해질 수는 없다. 

 시대의 비참 앞에서 누구나 열렬한 투사일 수는 없다.

열렬한 활동가가 되어 핏발  목소리로 자기 앞의 생을 피와 땀으로 물들인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어딘가, 자신의 자리에서 고개를 웅크린  근근이  비참한 하루들을 버텨낸 사람 있다.

 역사는 결국 목소리가 컸던 사람들을 기억할 테고,  기록할 것이다. 다만 나름의 눈으로 역사를 읽어내는 우리는 우리의 시선을 조금  소외되어 있는 곳으로,  기록되지 못한 곳으로 건넬  있지 않을까.

 현실과 두려움과 온갖 책임들에  열렬한 투사이지는 못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시대의 역사를 일군 모든 사람들을 위해 적었다. 어쩌면 민초라는 이름으로 묶여 불리는 이들에 대한 애도일지도 모른다.


작가의 이전글 사랑에 빠질 때면 종로 3가에 간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