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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성우 Mar 31. 2021

낡은 장죽

홀로 적막한 세 칸 집 마루 위

노인의 생채기 난 장죽이 희뿌연 연기를 내뱉는다.
그 어떤 사념에 깊이 잠겨있는 것일까.
샛누런 두 눈에 설움의 나무가 가지를 친다.

내뱉는 뿌연 연기 속 뭉실 피어나는
젊은 여인의 환하게 웃는 얼굴
이젠 없는 남편과의 첫날밤
부끄럽게 얼굴 붉히던 모습
조그마한 아이에게 뽀얀 젖가슴을 내어주는,

마찬가지로 조그마한 과부 뒷모습

그러다  위를 거세게 덮어 버리는 
어느 것도 갈변하지 않은 것이 없는 
, , , ,

머금었던 추억을 내뱉으며, 그렇게 그렇게
하루하루 놓아버리는 회색  


작가의 말.

저마다의 사연 속에서 늙어가는 우리를 생각한다.
서럽기에 늙는 것일까, 늙기에 서러운 것일까.
늙음의 충적 속에서 자꾸만 작아지던 사람들을 보면서

곱씹던 물음이다.

뽀얀 살결이 나무껍질처럼 거칠게 갈변하고,
팽팽하던 이마에 나이테 같은 주름이 생겨나는 동안에

우리에게 놓인 선택지는 다만 그 자리에 앉아 내내

슬퍼하는 것일까.

우리는 늙어가는 것과 낡아가는 것의 차이를 모르는 바보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늙어가는 동안 켜켜이 쌓여가는 것들을 따뜻한 눈으로 바라볼 줄 모르는 천치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게 내내 슬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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