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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성우 Jun 19. 2021

길 말고 결

원체 사람을 좋아한다.

대개의 경우 사람들과 함께하며 에너지를 채워간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처음 본 사람들과 같이 있을 때도,

오래 안 지인들과 함께할 때도 몸과 마음의 어딘가가 충만해지는 기분이다. 마치 그들에게서 무언가를 배우고 건네받는 듯한 느낌이다.

 이런 날 두고 나를 오래 본 친구들은 골든 리트리버 같다고 한다. 사람 좋아하기로 소문난 골든 리트리버처럼 내가 사람을 졸졸 쫓아다니며 계속 같이 놀자고 응석을 부린단다. 동의 못할 말은 아니다.
나를 아끼는 선배들은 나를 두고 시골 똥강아지 같다고도 한다. 사람한테 차이고 상처 받아도 결국 사람들 틈바구니를 찾아가는 시골 백구 같단다. (나는 살이 검은 편이니 어쩌면 흑구가 더 잘 어울릴 텐데도 말이다.)

 타고난 성격 탓에 나는 나와 다른 길을 가는 사람과 대할 때에도 큰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다. 나와 분야가 다른 사람에게서 내게 없던 새로운 시각을 배우고, 나와 처한 환경이 다른 사람에게서 그의 생에 깊이 새겨진 감정의 흔적들을 배운다. 선한 길을 가는 사람에게서 존경심을 느끼고 그와 같은 삶을 살아볼 엄두를 내보기도 하고, 악한 길을 걷는 사람을 보며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 하며 스스로를 다그친다.

 그러다 보니 내 주변에는 각양각색의 길을 가는, 다양한 성격의 사람들이 있다. 친구들은 이런 나의 인간관계를 '건달부터 성직자까지 다 있다'라고 속되게 표현하기도 한다. 실제로 내게는 건달 친구도 성직자 형님도 있으니까,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이런 나라고 해서 모두와 친구가 된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오산이다. 나에게도 인간관계를 풀어가기 위한 나름의 기준이 있다. 그건 바로 '결'이다.

나는 나와 결이 비슷한 사람과 관계를 이어나간다. 아니 관계는 그 사람과 나, 둘 사이의 일이니까 '관계를 이어가기 위해 노력한다'가 더 정확한 표현이겠다.
마음의 결이 비슷한 사람, 표현의 결이 비슷한 사람, 감정의 결의 비슷한 사람, 사람을 보는 결이 비슷한 사람...
나라는 사람과 오래도록 서로의 곁을 지켜주는 사람들을 보면 나와 결이 비슷하다. 비슷한 구석이 많을수록 우리는 더 깊은 사이가 된다.

 '사람마다 왜 비슷한 구석이 없겠는가' 하는 생각으로 대부분의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나였지만, 살다 보니 나와는 정말이지 다른 결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다. 물론 정말 그런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 얼마간의 친절을 건네며 함께 시간을 보내보는 정도의 노력은 하는 편이다. 그럼에도 내가 나와 정말 다른 결이라고 느끼는 사람들, 그래서 내가 그런 노력조차 하기 싫은 특징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그건 바로 '동의되지 않은 권위'로 타인에게 쉽게 무례를 저지르는 사람들이다.

누구나 그런 사람을 가까이 두고 싶지 않겠지만, 태생이 반골인 나는 원래부터 누군가 오만한 태도로 타인에게 이래라저래라 하는 걸 싫어한다. 나이가 들며 많은 것이 변했지만, 유독 저 부분만은 변하지가 않는다.

 A라는 친구와 관계를 끝낸 이유도 거기에 있다.
그와 나는 오랜 세월을 알아왔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서로의 곁을 지켰다. 거리를 둔다고 해서 서로에게 소홀하지는 않았다. 그가 힘들 때면 나는 언제나 달려갔고, 그 또한 내가 힘들 때면 자기 나름의 최선을 다해가며 나를 다독인 것 같다. 그러나 일련의 일들을 통해 그와 조금 더 가까워지면서, 우리가 비슷한 결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판단은 틀린 것으로 드러났다. 언제부턴가 그는 내가 동의하지도 않았는데도 나를 위한답시고 내게 이래라저래라 이야기했다. 그마저도 대부분은 진심이 담긴 조언이라기엔 무례에 가까웠다. 대체로 나라는 사람의 단점에 대한 열거였고, 이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나와 관계를 이어가지 않겠다는 엄포였다.

  그에게 그런 말들을 들을 때마다 나는 그의 말에 동의하지도 부정하지도 않은 채 그것을 홀로 내내 곱씹었다. 관계가 관계인만큼 그가 내게 하는 말이 어쩌면 진심으로 나를 위하는 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자 그의 말은 내가 가장 싫어하는, 나와는 맞지 않다고 정해놓은 결에 가까운 말들임을 알아차렸다.
관계의 친밀함은 상대방을 내 구미에 맞게 바꿀 권리를 보장하지 않는다. 그건 친구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친구란 서로의 단점에도 불구하고 유대를 지속적으로 이어나가는 관계이다. 그 점에서 어쩌면 서로의 온갖 단점과 모순들을 비난할 권리가 아닌, 그것마저도 따뜻한 눈으로 바라봐야 하는 무거운 책무을 가지고 있는 관계일 수도 있겠다. 주변 친구들을 둘러보자. 혹여 지속적으로 나의 단점에 날 선 질타와 비난만을 보내는 사람들이 있다면 우리는 한시라도 빨리 깨달아야 한다. 그건 건강한 친구 관계가 아니라는 사실을. 그건 우정이라는 명목 하에 행해지는 무례이자 오만이라는 것을.

 

마찬가지로 그날 그의 행동은 내가 한 번도 동의한 적 없는 지독한 무례였다. 권리 없는 오만이었다.

그래서 그 뒤로 나는 A에게 그의 행동을 하나하나 짚으며 그와의 관계를 끊어냈다. 사람 한 명 한 명과의 관계에 의미를 부여하며, 인연을 쉽게 끊지 못하는 나인데도 참 홀가분했다. 오래 앓던 충치를 뽑은 기분이었다.

결이 다른 사람은 내게 맞지 않는다는 생각을 경험으로 증명한 일이었다.


 나는 여전히 사람을 좋아하고 사람에게 쉽게 내 마음을 내어준다. 그건 나와 가는 길이 전혀 다른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제는 확실히 안다. 나는 타인과의 관계에 있어 결을 정말 중시하는 사람이라는 걸.

굳이 내가 정해놓은 결에 맞지 않는 사람 곁에서 스스로의 몸과 마음을 힘들게 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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