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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성우 Aug 24. 2021

<우리들>

'철수'와 '영희'는 지금쯤 무얼 하며 살고 있을까.

 윤가은 감독의 영화 <우리들>은 '우리'라는 관계의 일원이 되어가는 아이들의 성장과정을 그린다.

4학년의 여름방학, 교실에서 늘 구석진 자리에 앉아 같은 반 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던 '선'에게 커다란 변화가 생긴다. 그 시작은 전학 온 '지아'를 복도에서 우연히 마주친 것이었다. 선은 낯선 동네로 이사 온 지아를 살뜰히 챙겨주며 그녀의 적응을 돕는다. 이후 둘은 둘도 없는 친구가 된다.


 소심하고 느릿한 성격 탓에 반 친구들에게 늘 괴롭힘의 대상이 되곤 하던 선은 그 때문에 누군가와 새로이 관계 맺는 일을 어려워했다. 그랬던 선에게 지아와의 시간은 그간의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는 변화의 시간이 되어 주었다. 지아와의 튼튼한 관계 안에서, 선은 소심함을 극복하며 타인에게 먼저 다가가 손 내미는 법을 배웠다. 먼저 다가가도 상처 받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 이를테면 친구들에게 자신의 진심을 마음껏 보여줘도 괜찮을 거라는 믿음이 선의 마음 안에서 싹튼다. 이 믿음 덕에 선은 처음으로 우정이 주는 행복감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선의 행복은 학기가 시작되자마자 막을 내렸다. 새 학기가 시작되면 지아와 더 재밌는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라는, 어쩌면 그 덕에 다른 아이들과도 더 친밀한 관계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선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지아가 선을 따돌리던 아이들에게 편승해 '선이 괴롭히기'에 동참했기 때문이다.

선의 집에 머무는 동안 선이 엄마의 다정한 모습을 보며 지아는 자신이 가진 결핍을 떠올렸고(지아의 부모님은 이혼을 했고 지아는 지금 할머니와 살고 있다), 이는 선을 대하는 지아의 마음을 모나게 만들었다.

영문도 모른 채 믿었던 지아에게마저 따돌림을 당하게 된 선은, 복수심에 지아의 비밀을 아이들에게 이야기한다. 지아 역시 이전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했으며, 지아네 부모님 사이에 불화가 있다는 사실을 가감 없이 이야기한다. 이에 질세라 지아도 선의 비밀(선의 아버지가 알코올 중독자라는 사실. 어른의 눈에는 단순한 술주정뱅이에 가깝지만)을 반 아이들에게 이야기한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폭로전. 무더운 여름밤, 솔솔 부는 선풍기 바람을 함께 맞으며 진솔하게 나누던 둘 사이의 내밀한 대화는 각자의 약점이 되고, 또한 서로의 무기가 되어 상대방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서로를 향한 서로의 미움을 부풀려가던 이 지난한 과정 끝에 결국 둘은 치고받고 싸우게 된다.


 여기저기 상처 난 얼굴로 집에 돌아온 선은 동생 윤의 친구가 윤을 때리고 있는 광경을 마주한다. 참을 수 없던 선은 윤의 친구를 강하게 밀치며 둘을 떼어 놓는다. 윤의 친구가 집으로 돌아간 시간, 가족끼리 마주 앉은 식탁에서 윤의 얼굴에 난 상처를 발견한 선은 윤을 나무란다.

"너는 왜 친구가 때리면 맞고만 있니? 같이 때려야지!"

친구들, 특히 믿었던 지아에게 괴롭힘을 당하던 자신과 동생 윤을 동일시한 선은 크게 화를 낸다. 마치 스스로의 답답함을 탓하듯이.

이에 동생 윤은 해맑게 웃으며 답한다.

"걔가 나를 때리고 내가 걔를 때리고 또 걔가 나를 때리고 내가 걔를 때리면.. 그럼 언제 놀아? 나는 그냥 놀고 싶은데.."

어린 동생의 예상치 못한 대답을 들은 '선'의 얼굴에는 민망한 기색이 역력하다.


 어리게만 봤던 동생에게서 나름의 깨달음을 얻은 선은 그날 이후 달라진다. 예상해 보건대 그 깨달음의 내용은 '친구와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이해하고 양보하자'는게 아니었을까?

선은 그날 이후에 열린 피구 시합에서 과거의 자신처럼 반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던 지아를 돕기 위해 기꺼이 용기 낸다.

"야 지아 선 안 밟았어! 내가 봤어!"


 좋은 영화는 늘 그렇듯 이 영화 역시 그 시절의 나를 돌아보게 했다. 앤딩 크레디트에 비친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스스로에게 물었다.

'선과 지아의 나이에 나는 어땠을까?' '미숙했던 나의 관계 맺기는 과연 어땠을까?'


 내가 '나'에서 '우리'가 되는 과정은 따뜻하고 충만했으나, 언제나 나름의 힘이 들었다.

겁이 많고 눈치를 많이 보는 아이였던 나는 친구들에게 상처를 받는 것이 무섭고 싫었다.
그 탓인지 나는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천진무구함 보다는 조금의 영악함이 더 큰 무기가 된다는 것을 일찍이 알아버렸다. 나는 그렇게 아이답지 않은 아이로 오랜 시간을 자라왔다.


 그 덕분에 때로는 나의 중심을 잡아주는 지지체가 되기도, 때때로 나를 옭아매는 결박이 되기도 하는 '우리'라는 관계에서 언제나 우위에 있었고 상처를 받기보다는 상처를 주는 편에 섰다. 영화로 치자면 '선'이나 '지아'보다는 그들을 괴롭히는 '보라'에 가까운 아이였다. 선도 악도 모르던 그때는 그게 참 좋았다.

 시간이 흘러 그 소년은 인중에 푸르스름한 수염자국을 가진 어른이 되었다. 그리고 그 시절의 관계들을 뉘우친다. 천진무구함이 영악함보다 더 따뜻하고 진실된 관계를 만든다는 사실을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내게 시간을 여행할 수 있는 능력이 주어진다면 나는 천진무구함의 힘을 미처 깨닫지 못한 어린 소년에게 다가가, 누군가와 마음껏 관계 맺으며 기꺼이 상처 받으라고 권하고 싶다. 그 일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라고, 지레 겁먹어서 회피하지 말라고. 때론 크고 작은 상처를 받고, 그 상처를 딛고 자라는 일은 너의 무기이자 특권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너무 일찍 영악함을 깨달은 그때의 나보다, 실컷 아이다웠던 '선'이가 훨씬 더 멋진 어른으로 자랄 것이 자명한 일이므로.


 어른이 된다는 건 어쩌면 얼른 어른이 되고 싶던 아이적의 순수한 마음을 그리워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나와 함께 '우리들'이 되어, 내 유년시절을 맑게 채워주던 '철수'와 '영희'는 지금쯤 무얼 하며 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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