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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성우 Aug 07. 2021

그리움이 미련이 되기 전에

 유난히도 떡볶이를 좋아했던 그 아이가 내게 사랑에 대하여 물어왔을 때, 나는 섣불리 대답을 건네지 못했다.

간이 잘 밴 밀떡을 천천히 씹으며 얼마 동안의 시간을 벌어낸 나는, 수줍게 답했다.

"사랑은 상대방을 보고 싶어 하는 마음 아닐까?"

교복 셔츠에 닿을 듯 말 듯 교묘하게 잘라낸 단발머리를 찰랑이던 그 아이는, 사랑에 관한 나의 어리숙한 정의에도 적잖이 만족한 눈치였다. 어리숙함을 멋짐으로 포장시키는 것, 그것이 바로 사랑의 힘이었겠지.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던 시월의 끝자락이었고, 첫사랑이었다.


 당시 내가 그 아이에게 그런 대답을 했을 이유는 뻔하다. 그 시절 나는, 언제 어디서나 그 아이를 보고 싶어 했으므로. 애써 펼친 참고서의 활자에서도, 무심코 흘러가는 길가의 노랫말에서도 그 아이의 흔적을 찾아 헤매던 시절이었으므로.

인연은 인연이었는지, 무심히 흘러가는 시간들을 견디며 내내 그 아이와의 우연한 만남을 바라고 또 바라던 내게 이내 천금 같은 기회가 찾아왔다. 9월, 추석 연휴가 선사한 기분 좋은 따분함을 이기지 못하고 반 친구들과 시시껄렁한 휴일의 일상을 나누던 메신저 대화방에서 새로 개봉한 공포영화를 보러 가자는 이야기가 나온 것이다. 다행은 겹겹이 쌓여 우연이라는 기회를 필연으로 바꾸어 놓는지, 다 같이 모이기로 약속했던 신촌의 영화관에는 결국 그 아이와 나 둘밖에 오지 않았다. 기뻤으나 섣불리 그 마음을 내색하지 못하던 열일곱 소년과, 어리둥절하게 우리에게 벌어진 우연의 의미를 헤아리던 열일곱 소녀의 데이트가 시작된 것이다.


 흔한 청춘영화의 시나리오처럼, 몇 번의 만남을 더 가지니 서로의 마음은 조금씩 더 가까워졌다. 마찬가지로 흔해빠진 클리셰를 반복하며 우리의 풋풋한 사랑은 점점 무르익어갔다. 겨울이 다가올수록 몸도 마음도 따뜻해져 가는 희한한 경험은 가을에 새로이 사랑을 시작한 이들의 특권이라는 걸, 나는 그때 알았다.   

흐르는 세월 속에서 변치 않는 것이, 그래서 인간의 본질이라 부를 법한 것이 우리에게 있다면 그건 바로 사랑에 빠진 사람들이 서로 나누는 눈빛과 마음 아닐까 싶다. 나이는 어렸지만 사랑 앞에 특별할 것 없었던 그 아이와 나는, 마찬가지로 서로의 눈빛과 마음을 나누며 더 애틋해져만 갔다. 그렇게 별달리 특별하지 않은 사랑의 과정이 만들어내는 가장 특별한 관계 안에서, 우리가 함께 웃는 일이 늘어갔다.


 함께 웃는 일보다 어느 한쪽이 우는 일이 더 많아지는 데에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둘 사이에서 이해보다 오해가 더 많아지고,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보다 각자 앞의 상황이 더 중요해지면서 우리는 점차 멀어졌다. 그 아이의 얼굴에서 도무지 해석할 수 없는 표정들이 늘어갈 때, 그리고 서로에게 말하지 않는 각자의 비밀이 쌓여가는 것을 확인할 때, 나는 사랑의 끝이 가까워짐을 느꼈다. 유행가 가사처럼, 그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예견된 이별은 현실이라는 모습으로 우리 앞을 찾아왔다.

첫 이별은 너무나도 쓰렸다. 사랑이 주는 기쁨과 아픔이 비례한다는 걸, 사랑의 깊이가 깊을수록 사랑의 상처는 깊게 남는다는 걸, 나는 그때 알았다.      

 

 얼마간 이별을 실감하지 못했다. 이별 앞에 화를 내고 헤어짐을 부정했다. 이토록 쓰린 하루하루는 우리 둘 사이에 놓인, 그러나 언젠가는 다시 극복할 수 있는 아주 잠시 동안의 시간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러던 어느 날, 이제는 아무리 그 아이가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비로소 내 몸과 마음은 무참하고 비참하게 무너졌다.

애타게 불러도 그 아이는 오지 않았다. 나의 그리움은 도리어 그 아이를 아프게 했다. 그리움이 그 대상과의 재회 가능성을 완전히 잃었을 때, 그것은 더 이상 그리움이 아니라 미련이 된다는 것을 안 뒤로는 그 아이를 마음껏 그리워할 수조차 없었다.


 그 헤어짐에서 느낀 이별의 가장 무참한 점은 우리에게서 상대방을 마음껏 그리워할 권리를 앗아간다는 것이다. 사람에 대한 사람의 그리움은 우리가 함부로 어쩔 수 없는데도, 그래서 우리는 아직 상대방에 대한 구체적인 애틋함과 향수를 기억 속에서 쉽게 도려낼 준비가 되어있지 않는데도, 이별은 그래야만 한다고 우리를 부추긴다.

 

 그 무참함 속에 허우적거리길 반복하며 몇 번의 사랑을 스쳐 지나는 동안에도 사랑에 대한 나의 정의는 바뀌지 않았다. 내게 사랑은 그 아이가 좋아하던 그때의 정의 그대로, 여전히 상대방을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이다. 언제 어디서나 상대방을 그리워하는 마음이다.

다만 그때와는 달리 이제는 알겠다. 그 그리움의 기회는 역시나 사랑이 이어질 때까지만 우리에게 허락된다는 것을.

그렇다면 결국 사랑이 유한하다는 건 그리움이 미련이 되기 전에, 아직 내 곁에 있는 사람을, 나를 사랑하고 내가 사랑할 수 있도록 허락해주는 그 사람을 더 많이 그리워하라는 뜻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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