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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성우 Jul 21. 2021

사소한 기쁨, 커다란 변화

 대학에서 <지역사회복지론>이라는 과목을 배울 때의 일이다. 하루는 어느 우범지역에 파견된 한 사회복지사가 마을의 분위기를 개선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사례를 다뤘다. 그는 전임자들이 여러 번의 시행착오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모두 실패했던 그 일을 단숨에 해냈다. 그 비결은 다름 아닌 '시냇물 복원공사'였다.

그는 복개된 마을의 하천을 복원하기 위해 해당 지역 공무원들과 마을 유지들을 찾아다니며 설득했다. 마을의 안녕을 위해서는 주민들에게 일상의 사소한 기쁨을 건넬 수 있는 장소의 마련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외치며. 지난한 설득의 과정 끝에 마을에는 작은 시내가 되살아났다.

그리고 그것이 가져온 변화는 그의 예상대로 대단했다. 주민들은 밤낮으로 시냇가에 모여 그간 감춰두었던 서로의 진솔한 마음을 나누었다. 어린아이들과 청소년들은 시냇물에 발을 담그고 서로의 미움을 씻어냈다. 마을에는 어느새 얼굴을 붉히는 일보다 활짝 웃는 일이 더 많아졌다. 객관적으로도 마을의 범죄율과 청소년 탈선 비율이 이전보다 눈에 띄게 낮아졌다.


 교수님께서는 이 예시를 가리키며 말씀하셨다. 공동체 구성원 개개인이 느끼는 작은 기쁨은 공동체 전체의 분위기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교수님의 이 말씀은 단지 시험을 위해 외워야 했던 필수적인 교과내용을 넘어, 아직도 여전히 내 삶에 건실한 지렛대가 되어주고 있다.


 대학시절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동아리 임원을 맡았던 적이 있다. '광고'라는 공동의 관심사를 나누는 이들이 모여 만든 이 동아리는, 그 뒤로 27년을 버텨온 유서 깊은 집단이었다. 그러나 어느샌가 소위 '잘 나가던' 우리 동아리는 알 수 없는 이유들로 위축되었다. 별다른 노력 없이도 매 학기 적어도 30명 정도씩은 모집되던 신입회원들이 이번에는 좀처럼 우리 동아리의 문을 두드리지 않았다. 임원진을 맡고 난 직후 회원수를 조사해보니 선배들을 제외한 동아리의 실질적 회원은 4명에 불과했다. 그마저도 3명이 임원진이었으니, 회원다운 회원은 한 명뿐이라고도 볼 수 있던 상황이었다. 지금 있는 회원들로라도 내실을 다지자니 지나치게 회원이 없었고, 외연을 확장하자니 아무도 새로 들어오려 하지 않던 상황이었다. 그야말로 존폐의 위기였다. 오랫동안 이 집단을 만들고 가꾸어 온 모든 선배들을 볼 낯이 없었다.


 어떻게 하면 다시금 이 집단에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을까 오래 궁리하던 끝에, 나는 교수님의 말씀을 한 번 믿어보기로 했다. 회원들에게 사소한 기쁨을 선사하면 분명 동아리의 분위기가 바뀔 거라는 무모한 확신을 가졌다. 그 시작은 남루한 동아리방을 쾌적하게 바꾸는 일이었다. 나는 함께 동아리를 책임지고 있던 두 명의 친구를 설득했다. 내 이야기를 듣자마자 그들은 밑져야 본전이라는 식으로 내 계획에 선뜻 동참해 주었다.

나날이 기록적인 폭염이 이어졌던 2018년의 여름, 우리는 냉방시설도 없던 동아리방에서 공사를 시작했다. 3층 층계를 끝없이 오르내리며 묵은 물건들을 버리고, 새로운 물건들을 들였다. 새로운 책장을 조립하고 낡은 서랍을 뜯어고쳤다. 뙤약볕을 뚫고 을지로로 달려가 사온 형형색색의 페인트로 오래되어 빛이 바랜 테이블과 벽을 새로이 칠했다. 커튼을 새로 달고 바닥부터 유리창까지 군데군데 사방을 청소했다.


 여름 한 철을 그렇게 보내고 새 학기가 되자 우리의 동아리방은 캠퍼스에서 가장 쾌적한 공간으로 변해 있었다. 만족스럽고 감격스러운 마음에, 우리는 한여름날 우리 손으로 일구어낸 작은 기적을 적극적으로 알릴 수밖에 없었다. 신입회원 모집기간에 맞추어 이를 캠퍼스 곳곳에 홍보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어느샌가 보이지 않던 기존 회원들이 다시금 하나 둘 동아리에 얼굴을 비추기 시작했다. 또, 동아리에 가입하고자 하는 신입생들의 수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4명에서 80명으로 회원이 늘어난 예상치 못했던 상황에 나를 포함한 임원진 모두는 어리둥절해질 수밖에 없었다. 하염없는 기쁨과 뿌듯함에 얼떨떨했다.

교수님의 말씀이 옳았다. 우리가 만들어낸 공간 변화는 동아리 구성원 개개인에게 소소한 기쁨으로 작용했고, 이는 동아리 전체의 분위기 변화를 이끌어 낸 것이다.  

 

 이번에는 몇몇 분들이 따분해할지도 모를 이야기를 적어야겠다. 맞다, 군대 시절 이야기다.한동안 부대 분위기가 좋지 않았던 적이 있었다. 날은 덥고 일은 많고, 간부들은 사사건건 화를 냈다. 이 땅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원치도 않은 군생활을 하는 우리 부대 '대한의 아들'들의 표정은 날리 어두워졌다. 서로에게 화를 내고 다투는 일들이 점차 많아졌다. 자칫하면 큰 반목과 갈등이 생겨날 판이었다.

조금 늦은 나이에 군에 입대해 후임병들은 물론 대부분의 선임병들보다 나이가 많던 나는, '형'답게 하루빨리 부대 분위기를 바꾸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부대 안에 갇혀있는 처지니 어딘가를 공사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나는 오랜 고민 끝에 내가 잘할 수 있는 한 가지 일을 생각해냈다. 그것은 바로 '커피 타기'였다.


 3년 간의 카페 아르바이트 경험을 활용할 때였다. 용돈을 벌기 위해 수없이 커피를 탄 그 경험은 나도 모르는 사이, 내가 가진 장기 중 하나가 되었다. 그 장기를 십분 발휘 해 외부와 차단되어 하루하루를 갑갑함 속에 지내는 선후임들에게 맛있는 커피 한 잔을 만들어 건넨다면, 부대 분위기에 무언가 긍정적인 변화가 생겨날지도 모른다는 기분 좋은 예감이 들었다.


 계획을 세웠다면 이젠 그것을 실행할 차례. 나는 집에 있는 식구들에게 연락해 커피 드리퍼와 원두를 보내달라 부탁했다. 그리고 재료와 장비가 도착한 뒤로는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틈틈이 커피를 내렸다. 모두가 노곤한 아침나절과 점심식사 무렵을 신선한 커피 향으로 가득 채웠다. 결과는 예상대로 대성공이었다. 커피를 받아 든 모든 이들의 얼굴에는 옅은 미소가 번졌다. 웃음은 전염이 되는지, 어느새 부대 구성원들 모두 이전보다 웃음이 많아졌다. 앞사람이 웃으니 뒷사람도 웃었다. 화가 나고 짜증이 나도 웃어넘기는 경우들이 많아졌다. 각자의 사소한 웃음은 서로의 마음에 여유와 느긋함을 선사했다.    

  

 두 일화에서 알 수 있는 자명한 사실이 하나 있다. 우리가 공동체를 이루는 한 명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동안에는 각자가 속한 공동체의 분위기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분위기가 어두운 집단에서는 우리 몸과 마음은 축 쳐지고 우리는 자주 화를 낸다. 반면 밝고 명랑한 분위기에서는 우리의 마음과 표정은 밝고 따뜻해진다. 때문에 공동체의 분위기를 밝게 유지하는 건 우리 각자를 위해서도 매우 현명하고 중요한 일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각자가 조금 더 현명해지고자 노력하는 게 어떨까. 공동체의 긍정적인 분위기를 이끌어내기 위하여 공동체 구성원 개개인에게 사소한 기쁨을 선사하자. 그 사소한 기쁨들이 쌓여 아주 커다란 변화를 이룰지도 모를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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