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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이지 Apr 26. 2021

[암밍아웃]정보가 나를 힘들게 한다.(+미세전이)

암 진단을 받고 수술 날짜까지 잡아도 내가 암환자인 것에 대한 인식이 안 생긴다. 

나의 일상은 그저 루틴 하게 돌아갔다. (어제는 맥주 한 잔도 마셨다.)


하루 30분 정도는 갑상선 커뮤니티에서 이런저런 글들을 찾아 읽는다.

수술법, 수술 후 회복하는 시간, 수술 후 체중 및 피로도 등.. 수술 이후 내 삶이 어떻게 변할지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것이 아니기에 수술 이후의 삶을 타인의 사례를 통해 알고 싶다.


물론 수술하면 자연스레 겪게 되며, 내가 마주하고 싶지 않아도 마주해야 할 일들이지만,

왜 항상 그런 일들이 주는 고통을 먼저 알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성격의 문제인지, 앞으로 처연하게 받아들이기 위한 스스로 마음 준비하는 과정인지...

근데 이런저런 글을 많이 볼 수록 마음이 무거워서 수술 전까지 너무 많은 글을 읽는 것은 자제하려고 한다.

정보의 과잉은 나를 더 불안하게 한다. 초연해질 필요가 있는데, 더 안절부절이다.

그냥 나로서의 중심을 지키며 받아들이거나 해쳐나가려 노력하는 게 가장 나에게 알맞은 일이라 생각한다.


수술을 하면 한동안 무거운 걸 못 든다고 한다.

회사 생활하며 무거운 걸 드는 일은 거의 없지만, 우리 집에는 내가 들어야 할 무거운 아이가 있다.

이제 36개월이 되는 우리 집 4살 아들내미. 15킬로를 훌쩍 넘는다.

아들과 놀이터에 가서 그네를 태워 밀어주는 게 워킹맘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평일의 바깥놀이였는데, 그것마저 자유롭지 못한 게 조금 슬프다.

슈퍼에 가서 아이스크림 냉장고 위로 아기가 아이스크림 고르기 쉽게 올리기도 힘들 거 같고, 싱크대 위쪽에 채워놓은 간식을 달라며 싱크대 위로 올려달라고 할 때 쉽게 올려 주지 못할까 봐 고민이다.

이쁜 아들내미를 당분간 번쩍번쩍 들어 올리지 못한다는 게 나를 슬프게 한다.


퇴원 후 집에 머무는 것보다 부모님 집에서 머물며 일주일 정도 요양을 할까 하는데,

아이 생각을 하면 그게 맞는지 잘 모르겠다. 아파도 내가 옆에서 머물며 보듬아 주는 게 더 맞는 게 아닐까 싶다가도 순간순간 내 아픔에 예민해져 아이에게 신경질적으로 행동할까 봐 걱정이 되기도 한다.


그것보다 마음이 쓰이는 건 부모님께 알리는 일이다.

불과 한 달 전 작은 딸이 암이라는 소식을 전해 들은 부모님께 첫째 딸마저 갑상선 암이라는 소식으로 전해야 된다는 게 마음이 아프다. 갑상선 암을 알게 된 이후에도 매주마다 만나고 있는데, 나는 선뜻 알리지 못하고 있다.


동생의 갑상선 암에 적잖이 놀라셨는데, 나까지 그 무게를 더하자니 입 밖으로 말이 나오지 않는다.그래서 언제 이야기를 전해야 하나 고민이 많다.


마음 같아서는 수술을 하고 회복될 때까지 영영 이 소식을 알리고 싶지 않기도 하다.하지만 부모님 집에서 요양도 해야 하고, 계속 숨길 수도 없는 일이니 최대한 담담하게 이야기를 드리려 한다. 다행히 동생이 수술 후에도 생활도 잘하고, 컨디션도 나 빠보이지 않아서, 나 또한 최대한 시크하면서도 담담하게 이야기하면 그리 놀라시지는 않지 않을 거 같다는 생각을 '혼자만' 한다. ^^


시부모님에게도 암 소식을 전해야 한다. 현재 평일 육아는 전적으로 시어머님이 케어해 주시는데, 수술을 하게 되면 시아버님에게까지 손길을 요청해야 한다. 시부모님에게는 5월 중순 즈음 천천히 말씀을 드려볼까 한다. 너무 놀라실까 봐 앞이 깜깜하다. 우리 아버님 엄청 호들갑스러우신데, ㅎㅎㅎ


처음에는 내가 갑상선암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아서, 친한 몇 명에게 "야 나 암 이래"라는 식으로 농담 던지듯 이야기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암인 것을 굳이 알릴 필요가 있나?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들의 관심과 질문도 부담스러우며, 굳이 내가 지금 많이 아프지 않은데 암환자라는 프레임 속에 나를 가둘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 암병동 수술 코디에게 연락을 받았다.

수술법을 생각해 봤냐고, 5월 26일에 수술 자리가 있는데 그때 할 생각 있냐고.

나는 우선은 5월 26일은 너무 빠르고 회사에 이야기도 안돼서 어렵다 말했고 전이에 따라 수술법을 생각 중이라 말했다.


그랬더니 수술 코디는 절개를 많이 할 거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이는 곧 전이가 있다는 말이다.


전화를 끊고 "아 씨X"이라는 욕이 나왔다.

전이는 생각해봤지만 막상 전이가 됐다고 하니 앞이 막막했다.

전이가 된 이상 나는 로봇수술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12~14센티나 되는 목 부위 상처를 감내할 자신이 없다.

아무리 비용이 세도 실비처리가 된다면 로봇수술을 하는 편이 앞으로 내가 살아가는데 덜 고통스러울 거 같다.

목 부위 상처로 내가 암환자인 것을 드러내기도 싫었는데, 12~14센티나 된다면 내 눈엔 상처만 보일 거 같다.

디테일이나 회복기간에 대한 우려가 있지만 지금은 로봇수술이 최선이라 생각한다.


나는 어떤 일을 예상할 때 나쁜 일을 크게 염두하고 예상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일들은 내가 예상했던 것과는 다르게 긍정적으로 또는 덜한 결과가 나오는 일이 많았다.

그런데 이번 갑상선은 왠지 모르게 계속 내가 생각하는 최악의 상황이 되는 거 같아 마음이 불안하다.


물론 한편으로 조기 검진을 통해 더 악화되기 전에 발견한 것은 행운이며,

전절제가 아닌 반절제를 하게 된 것도 행운이다.

그리고 예후가 좋은 유두암이니 그것도 행운이다.

암보험도 있고, 실비 보험도 있어서

경제적 고통에서도 일부 해방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행운 속에서도 왜 하필 내가 암환자가 됐는지에 대해 생각하면

마음속 깊은 곳에 응어리가 나의 숨통을 조여 온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갑상선암을 앓고 있는 사람이라는게 자꾸 실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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